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문근영 2015. 10. 20. 02:18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전경


북쪽에서 본 전경




역락문


역락문


역락문


지정 번호; 사적 154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옥산리 7)

지정일; 196738

시대; 조선 선조

분류; 서원[사적]

내용;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그의 학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2~1571)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性理說)의 선구가 되었다. 옥산서원은 이언적이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난 1572(선조 5)에 경주 부윤(慶州 府尹; 2) 이제민(李齊閔; 1528~1610)이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보물 413)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을 요청하여 그 다음 해에 임금에게 옥산(玉山)’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 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공부하는 장소인 구인당(求仁堂)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體仁廟)가 뒤에 위치한 전학 후묘의 형식이다. 16세기 영남 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 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정 면적은 26,075[7,902]이다.

  경주 옥산서원의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 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전개된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구인당은 정면 5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839(헌종 5)에 화재로 사라졌다가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 등이 있다. 체인묘는 정면 3측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을 하고 있는 맞배지붕이다. 그 외에도 정문인 역락문(亦樂門), 2층 건물인 문루,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서재인 암수재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서원 동남쪽에 1972년 후손들이 세운 청분각(淸芬閣)이 있는데 이언적의 수필고본(手筆稿本)(보물 586)과 김부식(金富軾)삼국사기(三國史記) 완본 9권 등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특기 사항;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선생의 저서와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문집이 보존되어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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