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

문근영 2015. 10. 12. 07:09

경주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



전경


전면


전면


측면


신재로 교체한 면석과 상대 갑석


호석 세부


지정 번호; 사적 24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48

지정일; 1963121

시대; 신라 진덕여왕

분류;

내용; 신라 진덕여왕릉은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28대 임금인 진덕여왕(재위 647~654)의 무덤이다. 현재 이곳의 진덕여왕릉은 조선 후기 영조 이후에 지정된 것을 1960년대에 문화재 관리국에서 전하는 바를 인정하여 그대로 사적지로 지정한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54(신라 진덕여왕 8)에 왕이 죽자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粱部)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사량부는 현재 경주 시내의 서남쪽 일대로 짐작되는데 이 무덤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무덤 형식도 성덕왕(聖德王) 이후에 발달한 형식이고, 12지신상의 조각 수법도 신라 왕릉의 12지신상 중 가장 늦은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이 무덤이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지정 면적은 9,498[2,878]으로 1975년도에 복원하였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뒤를 이은 신라의 두 번째 여왕으로 본명은 승만(勝曼)이다. 진평왕(眞平王)의 동생인 국반(國飯) 갈문왕(葛文王)과 월명 부인(月明夫人)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라의 마지막 성골(聖骨) 출신 왕이다. 7년 동안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기르고 당나라와 적극적 외교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여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진덕여왕릉은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이고, 아래 부분에는 호석(護石;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둘레 돌 사이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12개의 탱석(撐石)을 끼워 넣었는데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겼다. 그 위에는 긴 돌을 한 번 더 올려놓았는데 뒤에 보수하여 원래의 것이 아닌 것도 있다. 호석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돌난간을 세운 듯하나 지금은 거의 다 없어져 남아있지 않다. 무덤 앞에는 이외에 별다른 석조물이 없고, 최근에 만든 통로와 축대가 있다. 능의 형식으로는 기본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호석에 조각된 12지신상은 성덕왕릉(사적 28)경덕왕릉(사적 23)원성왕릉(사적 26)헌덕왕릉(사적 29)흥덕왕릉(사적 30)김유신 묘(사적 21)구정리 방형분(사적 27) 등과 비교해 볼 때 조각 수법이 가장 뒤떨어지고 있다.

특기 사항; 19978, 진덕여왕릉이 도굴을 당했는데 왕릉의 동북쪽 호석 하단부에 45도 각도로 길이 3m, 너비 1m 정도의 흙이 파헤쳐졌다. 이 왕릉은 도심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고, 순찰도 하루에 두 차례 관리인이 육안으로 잠깐 둘러보는 수준에 그쳐 항상 도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경주에는 시가 관리하는 왕릉이 36기나 되나, 이미 12기가 도굴되었고, 나머지도 도굴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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