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헌강왕릉(憲康王陵)
전경
전경
전면
능 입구
호석 둘레
표지석
•지정 번호; 사적 187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55 남산
•지정일; 1969년 8월 27일
•시대;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
•분류; 능
•내용; 경주 헌강왕릉은 경주시 남산동의 남산(사적 311호) 동쪽 기슭 통일전(統一殿) 북쪽 가까이에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로 남쪽에 정강왕릉(사적 186호)이 있다. 신라 49대 임금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본명이 김정(金晸)이고 경문왕(景文王)의 큰 아들이며, 왕비는 의명 부인(懿明夫人)이다. 백성의 집은 지붕을 갈대로 덮지 않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짓는 데는 나무를 쓰지 않고 숯으로 지었으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본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등을 바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886년 7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강(憲康)’이라 하고,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다. 지정 면적은 6만 9,626㎡[약 2만 1,098평]이다.
헌강왕릉의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 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봉분의 밑부분에는 길이 60~120㎝, 너비 30㎝ 내외의 가공한 장대석(長臺石; 길게 다듬어 만든 돌)을 4단으로 쌓은 호석(護石; 둘레돌)을 둘렀다. 가장 아랫단 장대석은 지대석(地臺石; 바닥돌)처럼 약간 밖으로 내밀게 놓았으나 갑석(甲石)은 덮이지 않았다. 이런 호석의 구조는 이 능 남쪽에 있는 정강왕릉과 같은 형식이다. 능 전면에는 장대석으로 짠 석상이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놓이지 않았다. 이 능은 일찍이 도굴의 피해를 입어 1993년 장마철에 석실의 개석과 벽 일부가 내려앉아 내부의 긴급 수습 조사를 거쳐 복원되었다. 조사 결과 석실은 평면 사각형에 궁륭식 천정[활 모양으로 된 천정]이었으며, 남쪽으로 난 연도(羨道; 널길)는 석실 동쪽으로 편재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ㄱ’자형이다. 석실 서벽에 붙여 1대의 1인용 시상(屍床)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석제 두침(頭枕)과 족좌(足座)가 출토되었다. 부장품(副葬品; 껴묻거리)은 모두 도굴되었으나 인화문(印花文) 토기편이 약간 수습되었다. 그런데 석실의 구조나 토기는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 시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특기 사항; 무덤 보호를 위해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은 형태는 신라 왕릉에서는 특이한 형식으로 정강왕릉에서도 보인다. 그러나 내부 구조나 출토된 토기는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 기간이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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