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정강왕릉(定康王陵)

문근영 2015. 8. 4. 07:11

경주 정강왕릉(定康王陵)



전경


전면


후면


후면


지정 번호; 사적 186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53 남산

지정일; 1969827

시대; 통일신라 진성여왕 원년(887)

분류;

내용; 경주 정강왕릉은 경주시 남산동 남산(사적 311)의 동쪽 기슭 통일전(統一殿) 바로 북쪽 소나무 숲 속에 둘러싸여 있다. 경문왕(景文王)의 둘째 아들인 신라 50대 임금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이름이 황()이고, 형인 헌강왕(憲康王)에 이어 8867월에 즉위하여 887(정강왕 2)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재위 기간이 짧아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8877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정강(定康)’이라 하고, 보리사(菩提寺)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 북쪽에는 선왕인 헌강왕릉(사적 187)이 인접하여 있는데 이 두 왕릉의 북쪽 가까이에 통일신라시대의 남산 미륵곡 석조 여래 좌상(보물 136)이 있어 그 곳을 보리사라 하고 있다. 지정 면적은 35,702[10,818]이다.

  정강왕릉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를 취한 원형 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15.7m, 높이 4m이다. 봉분의 밑부분은 가공한 장대석(長臺石; 길게 다듬어 만든 돌)3단으로 쌓아 호석(護石; 둘레돌)을 돌렸다. 가장 아랫단 장대석은 지대석(地臺石; 바닥돌)처럼 약간 밖으로 내밀게 놓았고, 그 위 2단은 이보다 약간 들여쌓았다. 그러나 별도의 갑석(甲石)은 없다. 이 외에 난간 장식이나 12지신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구조의 호석을 가진 신라 왕릉으로는 이 능과 헌강왕릉이 있다. 봉분의 전면에는 얕은 석단 위에 작은 석상이 놓여 있고, 석단에서 조금 떨어진 아랫부분에 장대석이 일렬로 놓여 있다.

특기 사항; 이 능과 인접하여 있고 호석의 구조도 같은 형식인 헌강왕릉의 내부가 1993년 조사되었는데 그 석실 구조와 출토 유물은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이 왕들의 재위 시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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