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

문근영 2015. 7. 11. 07:01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






지정 번호; 사적 22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산56, 탑동, 남산동, 배반동, 배동 남산

지정일; 1963121

시대; 신라 진평왕

분류; 성지[성곽]

내용; 경주 남산신성은 경주시 남산(사적 311)의 북쪽에 있는 신라 산성으로 신성(新城)’ 혹은 남산성(南山城)’이라고도 불렸다. 남산의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쌓은 석성이지만 특별히 신성이라 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남산신성이라는 명칭은 1934년 이래 발견된 남산 신성비(南山新城碑)’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663(문무왕 3)남산신성에 장창(長倉)을 세웠다는 기록에 보인다. 이 장창은 길이가 50보이고, 너비가 15보의 규모였다고 하는데 이곳에 곡식과 병기를 저장하였다. 591(신라 진평왕 13)에 쌓았다고 전하며, 679(통일신라 문무왕 19)에 성을 크게 고쳐 쌓았는데 지금 성벽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이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서쪽의 서형산성(西兄山城)과 동쪽의 명활산성(사적 47),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하는 나성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산의 북쪽에 있는 봉우리인 해목령(蟹目嶺)과 여기서 동쪽과 서쪽으로 이어진 두 계곡을 포용하고 있어서 수량이 풍부하고 경주 평야 일대를 훤히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지정 면적은 7094,579[2149,872]의 광대한 지역이다.

  남산신성삼국사기에 의하면 591(진평왕 13)에 주위 2,854보의 성을 쌓았다고 하였고, 남산 신성비에는 신해년 226남산신성을 법에 따라 축조한다는 것으로 시작되어 있어서 이 신해년은 바로 남산신성을 쌓은 진평왕 13년에 해당되며, 성의 명칭을 남산성과 남산신성을 혼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 안에는 좌창(左倉)우창(右倉)중창(中倉)의 세 개의 창고 터가 있어 동쪽의 우창은 길이 50m에 너비가 17m의 장방형 석축 위에 있고, 정면 17칸이고, 측면 5칸의 대규모 건물인 좌측의 서창과 정면 58칸이고, 측면이 5칸인 중창 터가 남아 있다. 지금도 큰 창고 자리에서 불에 탄 쌀이 나온다고 한다. 이 밖에 건물 터와 망루 터 5개소, 문 터 2개소 및 북수문의 터가 있다. 679(문무왕 19)에 성을 크게 수축하였다고 하며, 지금 성벽이 잘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가 이때에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성의 길이는 약 3,750m이며, 거의가 무너졌으나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을 보면 가로 50, 세로 20정도의 잘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현재 성벽의 높이는 약 2m이다. 이 성 부근에서 남산신성 안에 세워졌으리라 추측되는 남산 신성비가 발견되고 있는데 2000년까지 10기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맡아 쌓았으며, 만일 3년 이내에 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관계한 사람들의 벼슬성명출신지를 새겨져 있다.

특기 사항; 우리나라 고고학의 선구자로 신라 문화 지킴이였던 석당(石堂) 최남주(崔南柱; 1905~1980) 선생은 1926서봉총(瑞鳳塚) 발굴과 1957년 봄 경주시 안강읍의 어느 왕릉에서 아들 최정채와 興德(홍덕)’ 두 글자가 새겨진 비 조각을 찾아내어 흥덕왕릉(사적 30)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다. 이 남산 신성비 또한 선생에 의해서 19341031일에 최초로 밝혀진 바 있다. 선생의 수많은 업적 중 첫 손에 꼽는 것은 역시 당시 헌강왕릉(사적 187)의 묘지기가 자기 집 앞 돌다리에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해서 선생이 조사해 보니 바로 옛 비석 글귀는 209행의 육조 서체(六朝書體)의 이두문, 591(진평왕 13) 남산신성의 축성비였다. 내용은 서약서로 공구 담당자들의 관등, 성명, 거주지명 등이 적혀 있어 신라의 공권력과 신라인의 책임감이 잘 나타나 있다. 더욱 삼국사기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과 합치하고 신라 금석문 중에서는 연대가 진흥왕 순수비(국보 3) 다음가는 것이며, 이두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산신성은 찾기가 힘들며 포석정지(사적 1)에서 올라가고 해목령 부근이며 30분 소요된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