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포석정지(鮑石亭址)

문근영 2015. 7. 7. 07:21

경주 포석정지(鮑石亭址)



전경


전경


전경


전경




석구


석구


석구


석구



1910년의 모습


지정 번호; 사적 1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남산

지정일; 1963121

시대; 통일신라

분류; 기타 유적지

내용; 경주 포석정지는 경주시 배동의 남산(사적 311)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 장소로 젊은 화랑(花郞)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王羲之)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세 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 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 따서 만들었다. 만들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 望海寺條)’에 보면 헌강왕(875~886)이 포석정에 놀러 나와 남산신(南山神)의 춤을 보고 왕이 따라 추었는데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했다.’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927(경애왕 4) 11월에 왕이 포석정에 나가서 잔치를 하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甄萱)의 기습을 받아 왕은 죽고 왕비와 신하들이 모두 함몰되는 비극의 기록이 실려 있다. 지정 면적은 7,445[2,256]이다.

  포석정지의 유배거(流盃渠)는 굴곡진 타원형인데 긴 지름이 6.53m, 짧은 지름이 4.76m이며 타원형 수로의 높낮이 차는 5.9이다. 수로의 너비는 약 30, 깊이는 20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이 유배거에 물을 담아 술잔을 띄워 본 결과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다르며, 절묘한 수로의 굴곡진 곳에서 물이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 타원형의 수로를 술잔이 흐르는 시간은 약 10여 분이 걸리었다. 이 시간이면 5언시나 7언시 한 수는 쓸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유배거의 머리 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뿌리가 물이 들어오는 입구 쪽을 밀어 올려서 높아진 상태이며, 흘러나가는 배수구 쪽은 포석계의 개울에 유실되면서 급속히 낮아져 있다. 포석정지의 전복같이 된 유배거는 그 간에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유배거에 인수한 물은 남산 포석계의 개울물을 나무 홈대로 연결하여 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95포석정지에서 발견된 砲石(포석)’ 명문와(銘文瓦)삼국사기동경통지(東京通志)등 기록에서 물고기를 말린 형상의 석물(石物)이란 뜻에서 포석정(鮑石亭)’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기와에 새겨진 ()’자는 당시 기와 제작자들이 ()’자를 약자화해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기와는 당시 포석정이 운영되던 시기의 건물에 쓰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기 사항;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 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 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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