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포석정지(鮑石亭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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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구
석구
석구
석구
1910년의 모습
•지정 번호; 사적 1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남산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시대; 통일신라
•분류; 기타 유적지
•내용; 경주 포석정지는 경주시 배동의 남산(사적 311호)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 장소로 젊은 화랑(花郞)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王羲之)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세 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 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 따서 만들었다. 만들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 望海寺條)’에 보면 ‘헌강왕(875~886)이 포석정에 놀러 나와 남산신(南山神)의 춤을 보고 왕이 따라 추었는데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했다.’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927년(경애왕 4) 11월에 왕이 포석정에 나가서 잔치를 하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甄萱)의 기습을 받아 왕은 죽고 왕비와 신하들이 모두 함몰되는 비극의 기록이 실려 있다. 지정 면적은 7,445㎡[약 2,256평]이다.
포석정지의 유배거(流盃渠)는 굴곡진 타원형인데 긴 지름이 6.53m, 짧은 지름이 4.76m이며 타원형 수로의 높낮이 차는 5.9㎝이다. 수로의 너비는 약 30㎝, 깊이는 20㎝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이 유배거에 물을 담아 술잔을 띄워 본 결과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다르며, 절묘한 수로의 굴곡진 곳에서 물이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 타원형의 수로를 술잔이 흐르는 시간은 약 10여 분이 걸리었다. 이 시간이면 5언시나 7언시 한 수는 쓸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유배거의 머리 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뿌리가 물이 들어오는 입구 쪽을 밀어 올려서 높아진 상태이며, 흘러나가는 배수구 쪽은 포석계의 개울에 유실되면서 급속히 낮아져 있다. 포석정지의 전복같이 된 유배거는 그 간에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유배거에 인수한 물은 남산 포석계의 개울물을 나무 홈대로 연결하여 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5월 포석정지에서 발견된 ‘砲石(포석)’ 명문와(銘文瓦)는 《삼국사기》와《동경통지(東京通志)》 등 기록에서 ‘물고기를 말린 형상의 석물(石物)이란 뜻’에서 ‘포석정(鮑石亭)’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기와에 새겨진 ‘砲(포)’자는 당시 기와 제작자들이 ‘鮑(포)’자를 약자화해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기와는 당시 포석정이 운영되던 시기의 건물에 쓰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기 사항;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 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 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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