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길이 나를 들어 올린다 / 손택수

문근영 2015. 5. 21. 16:03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뒷축이 들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뒷축과 땅 사이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공간이 생겼다  
깨어질 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뒷꿈치를 뽈끈  
들어올려주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뒷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딛으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2007년 제9회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작>


출처 : 수천윤명수시인과함께
글쓴이 : 수천/윤명수&짝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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