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김혜순 , 이남호
최경민씨의 작품은 모두 인상적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명징한 인상을 포착할 줄 아는 언어감각, 개성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사유능력, 자신만의 시적공간을 형성시킬 줄 아는 힘을 지녔다. 특히 사물과 세상에 대한 명료하고도 정확한 사유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증한다. [올림푸스 세탁소]와 [흑백사진] 가운데서 한 작품을 고르기 어려웠다.
[올림푸스 세탁소]에서 시인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되었으나 전체적인 안정감과 주제의 선명함, 완성도 면에서 [흑백 사진]을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최경민씨의 당선을 결정하면서 주저됨이 없다. 그만큼 최씨의 능력은 돋보인다. 즐거운 심사였다.
당선시 : 흑백사진
최경민
1970년 전남 영암 출생,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재학
흑백사진
그가 문을 열었을 때
새들은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석양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지
붉게 꽃핀 담장 너머
멀리 공장의 굴뚝 다섯, 하늘을 이고 있었네
그는 손을 들어
잘린 손가락을 들여다 보네
짧게 잘린 마디는 마치 촛농으로 덮어씌운 듯 했지
상처만이 고통을 기억하고 있네
더 이상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남아 있는 손가락을 천천히 세어보네
사진 속 친구들의 얼굴도 들여다 보네
붉은 철근 더미 위에 앉아
한순간 웃던 얼굴들이 사진 속에선 영원히 웃고 있네
또한 영원히 울고도 있네
눈을 들었을 때
키 큰 순서부터 공장의 굴뚝들은
어둠에 허리를 짤리우고 있었지
이제 그는 창문을 닫네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고
빈 새장 속으로 걸어들어가 보네
누군가 와서
그를 잊지 않았다고
모이를 주고 물을 주면,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석양의 집으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부리를 다친 새처럼 그는
가슴에 얼굴을 묻네
문은 밖으로 잠겨 있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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