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9년 대한매일신문 당선작

문근영 2015. 4. 5. 08:41

심사평 : 김규동 , 송수권


속이 시원해지는 글이 기다려진다.시와 예술은 이 때에 발맞춰 경이로운 자기발견이 필요하리라.이것은 무슨 우연이나 기적에 의함보다는 깬 정신과 열도에 의해서만 성취될 것으로 이해된다. 시가 가장 진실한 이 시대의 말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려면,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우리는 역사의 쇄신이 바로 시에 의해 감행되어야 한다는강한 염원을 품고 있다.

정영주의 ‘어달리의 새벽’은 이 염원에 관련을 가진 작품으로 소재(현실)에 대한 감동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있게 운신하는 모습이 든든하고 재미있다. 우리 두 사람은 만장일치로 어달리를 취한 것이다. 아직은 외계와 내부를 혼연일체로 형상화하는 안목이 약간 불안한 구석이있어도 이만한 기능일진댄 이 나라 시의 대도에 감히 뛰어들 만하다.

당선시 : 어달리의 새벽

 
 
정영주

어달리의 새벽
 
 
 
 
묵호는 검은 고래다
새벽마다 허옇게
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
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 놓으면
 
고래입같은 아가리 배에서는
온통 욕지기질로 헐떡이는 생선들
 
경매가 시작되면
선창가는 거대한 고래 뱃속이다
부시시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퍼덕거리다 뒤로 나자빠지는 그네들의 흥정
 
독한 비린내까지 경매로 팔려나가면
묵호는 체증에 걸린 고래 뱃속을 빠져나간다
 
오징어처럼 먹물을 뒤집어쓰고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파장의 도시-
하루를 새벽에 몽땅 떨이해 버리면
그제서야 졸음은 해일처럼 몰려온다
 
지난밤
오징어 배에 수없이 켜 놓은 알전구로
눈이 먼 어부들,이제
눈꺼풀 안쪽에 비친 햇덩이가
200촉짜리 집어등 만큼 뜨겁다 같은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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