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7년 세계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4. 1. 08:38

심사평 : 유종호 , 신경림


응모작들의 수도 많았지만 수준도 높았다. 당선권이라고 생각되는 새얼굴도 서넛을 웃돌았다.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는 시정의 소동과는 달리 씩씩하게 자기세계를 세우고 있는 재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눈에 뜨이는 것은 터놓고 산문을 지향하는 성향이 무자각적으로 퍼져 있다는 것이다. 산문은 짤막하다고 해서 산문임을 그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별장을 지을 수 있다' 외 5편을 보여준 김영남 씨를 당 선자로 정하기로 생각을 같이했으나 무엇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약간 망설였다. 시적 개성도 뚜렷하고 시행도 당당하게 직설적이다. 신춘당선시의 뼈대를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독자를 갖는 신문에 실림을 참작하여 작자로서는 모험성이 엷은 '정동진역'을 당선작으로 하였다. 정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건다.
 

당선시 : 정동진 역


 
 
김영남
1957년 전남 장흥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대학원 졸업

 
정동진 역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 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 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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