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5년 조선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3. 31. 02:55
심사평 : 황동규 , 김주연


박미란씨의 '목재소에서'를 올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으로 뽑는다. 목재소의 생목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깨달아가는 생명의 환희와 슬픔을 담담하게 묘사해놓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진한 사랑이 숨어 있다. 부분적으로 너무 많이 쓰이는 상투적인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나무의 생애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어내는 알레고리적 상황제시가 신선하고, 그 앞날에 신뢰가 간다. 생목을 슬그머니 시적 자아로 만들어가는 동화적 분위기도 호감이 간다. 시인의 인생관과 언어적 표현 사이에 보다 구체적인 힘을 기른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당선시 : 목재소에서

 
 
박미란
1964년 강원 출생, 계명대 간호학과 졸업

 

목재소에서
 
 
 
고향을 그리는 생목들의 짙은 향내
마당 가득 흩어지면
가슴 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신새벽,
새떼들의 향그런 속살거림도
가지 끝 팔랑대던 잎새도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 덜 깬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 심장을 물어뜯을 때
하얗게 일어서는 생목의 목쉰 울음
 
꿈 속 깊이 더듬어 보아도
정말 우린 너무 멀리 왔어
 
눈물처럼
말갛게 목숨 비워 몇 밤을 지새면
누군가 내 몸을 기억하라고 달아놓은 꼬리표
날마다 가벼워져도
 
먼 하늘 그대,
초록으로 발돋움하는 소리 들릴 때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올리며
잘려지는 노을
어둠에도 눈이 부시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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