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4년 경향신문 당선작

문근영 2015. 3. 20. 08:07

심사평 : 박재삼 , 김광규


김민형씨의 '강에서' 외 4편은 향토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다. 특히 강에 대한 관찰과 명상이 감각적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다.
공적으로 언급되어 마땅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감정의 섬세한 흔들림이 강물에 투영된 것이므로 시로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대상을 다룬 셈이다. 나날이 소란스럽고 혼잡해지는 시대현실 속에서 자아와 사물의 내면을 이만큼 정관하고 투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신적 성취를 보이며, 그것이 부드럽고 형이한 언어를 통하여 잔잔한 공감을 불러 일으켜 당선작으로 뽑았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
 

당선시 : 강에서

 
 
 
김민형
1968년 충북 청원 출생, 충북대 국문과

 
강에서

 
한짐 가득 모래를 퍼담고 강둑을 탈탈거리며 오르는 경운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갈대를 꺾다가 그대를 생각했습니다. 모래야 잠시 옮겨 놓을 수 있을 뿐 제자리를 찾아주지는 못하고 말라버린 갈숲의 기억 속으로 송장메뚜기도 펄쩍펄쩍 튀어 오릅니다. 갈대는 죽어서도 물을 움켜잡고 있을까요.
 
강심으로 오래도록 돌을 던졌습니다. 물 위로 뛰어오르던 피라미의 은비늘, 이름 지을 수 없는 세상을 꿈꾸다 들켜버린 듯 급히 달아나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대를 믿지 않은 건 아닙니다.
 
돌멩이를 던지면 물은 둥글게 파문을 그려 뭍을 흔들고 나는 돌을 던진 힘보다 무겁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물고기의 길도 나의 길도 흔들릴 때, 팔이 뻐근해질 쯤에서야 알았습니다. 던진 돌에도 잠시 출렁일 뿐 아파하지 않고 돌마저 흐르게 하는 강. 쌓이기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마른 홍수라도 질 듯 강은 온통 푸르게 하늘에도 떠 있습니다.
 
새들이 강을 날아올라 내려앉는 동안 나는 그대의 이름 부르지 않으며 강가를 떠납니다. 더 깊이 흐를 수 있다면 이젠 가까이 가도 되겠지요.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강과 강으로 갈꽃 무더기 떠내려 갑니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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