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김종해 , 정현기
예년에 비해 올해 투고된 작품들의 경향은 대체로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 대상과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선자들의 소감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고두현의 '유배시첩'은 격이 있고 전통적인 운율과 동양적 정조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신인으로서의 새로움과 당돌함 대신 노련함과 달관된 화법이 있다. "잘익은 시"로서의 깊은 맛이 있다. 유배된 인물 김만중의 감정에서 화자의 시법은 전통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보여준다. 그러나 선자들은 기왕에 발표된 "유배시"류들의 아류를 지적하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음을 첨언한다.
당선시 : 유배시첩
고두현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유배시첩
남해 가는 길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울타리 밖에 채마밭을 짓고
흐린 날에 텃밭에 나가
익모초잎을 딴다
초막 뒤로 지는 노을
시린 팔목도 굽은 어깨도
진눈깨비에 젖어 흐르다 보면
못다한 이승의 아름다움
꽃대궁 뿌리마다 단단히 박아두고
어즈버 내가 없는 날
봄 푸른 들판 되어
꽃피고 새움이 돋듯 그렇게
다시 살았거라 두고온 것들도 수런대며
돌아와 뒤뜰 동백잎 함께 아물어 갈 때
일어나 터지거라 터지고도 모자라면
또 다시 누워 채마밭이 되고 새암이 되고
먼 데서 오는 한 벗 구름 뿐인 고요가 되고
슬픔이 되어 내 묻힌 노지나 묘등에
땅만 보고 섰을 풀줄기 되라
*앵강: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남해 앞바다 이름
예년에 비해 올해 투고된 작품들의 경향은 대체로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 대상과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선자들의 소감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고두현의 '유배시첩'은 격이 있고 전통적인 운율과 동양적 정조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신인으로서의 새로움과 당돌함 대신 노련함과 달관된 화법이 있다. "잘익은 시"로서의 깊은 맛이 있다. 유배된 인물 김만중의 감정에서 화자의 시법은 전통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보여준다. 그러나 선자들은 기왕에 발표된 "유배시"류들의 아류를 지적하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음을 첨언한다.
당선시 : 유배시첩
고두현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유배시첩
남해 가는 길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울타리 밖에 채마밭을 짓고
흐린 날에 텃밭에 나가
익모초잎을 딴다
초막 뒤로 지는 노을
시린 팔목도 굽은 어깨도
진눈깨비에 젖어 흐르다 보면
못다한 이승의 아름다움
꽃대궁 뿌리마다 단단히 박아두고
어즈버 내가 없는 날
봄 푸른 들판 되어
꽃피고 새움이 돋듯 그렇게
다시 살았거라 두고온 것들도 수런대며
돌아와 뒤뜰 동백잎 함께 아물어 갈 때
일어나 터지거라 터지고도 모자라면
또 다시 누워 채마밭이 되고 새암이 되고
먼 데서 오는 한 벗 구름 뿐인 고요가 되고
슬픔이 되어 내 묻힌 노지나 묘등에
땅만 보고 섰을 풀줄기 되라
*앵강: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남해 앞바다 이름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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