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이승훈 , 감태준
김종욱의 '민들레 홀씨'는 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미적으로 비판하면서 아울러 우리 민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형상화 하고 있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고 현실인식도 강렬하다. 오늘 이 시대에 시를 쓰는 행위는 단순한 자연예찬이나 일상적인 삶의 넋두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상실한 미적 가치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잃어버린 삶의 토대를 찾아가는 고통스런 길이다. 김종욱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두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당선시 : 민들레 홀씨
김종욱
1963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물리학과 졸업
민들레 홀씨
새 학기가 시작되고 우리들 가슴마다
설레이는 5월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교실 창밖에서 떠돌던 홀씨 하나
살포시 날아들었네
어느 바람의 손길이
널 이리로 보냈니
오그린 손옹당이 안에서 파르르 몸을 떤다
가도가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너의 기나긴 고통의 여정을 생각하면
정직한 노동이 어느 한 곳 뿌리내리지 못하고
멸시와 착취와 탄압이 샌드백이 되는
멍든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네 종족의 대이동을 가리키며
떠남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운동이라고
말씀하시네 봄날 푸른 하늘에
혁명군처럼 자욱히 떠올라 날아가는 저들을 보면
어찌 믿음을 갖지 않으랴
너의 선조들이 절정의 꽃으로 피어났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처럼 너희 또한
수많은 씨앗이 씨앗인 채로 남아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을 맨몸으로 뒹굴거나
시커먼 차바퀴나 구두 뒷굽에 밟혀 이름도 없이 죽음을 맞더라도
끝끝내 살아남은 동지들이
이 땅 곳곳에 질긴 뿌리를 뻗어내려
새봄에 관한 꽃망울을 터뜨리리라는 것을
호오!
하고 입김을 부니
홀씨는 보송한 솜털을 흔들며 주저없이 햇살 속으로 날아오른다
가거라
힘찬 네 동지들의 대열로.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메모 :
'다시 보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992년 한국일보 당선작 (0) | 2015.03.12 |
---|---|
[스크랩] 1992년 중앙일보 당선작 (0) | 2015.03.12 |
[스크랩] 1992년 서울신문 당선작 (0) | 2015.03.07 |
[스크랩] 1992년 동아일보 당선작 (0) | 2015.03.07 |
[스크랩] 1992년 경향신문 당선작 (0) | 2015.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