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홍윤숙 , 신경림 , 정현종
'세한도', '기타가 세워져 있는 골목'을 비롯한 박현수의 작품 7편은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세한도' '깃발의 노래' 등에서 볼 수 있는 준엄한 자기성찰은 그냥 한 번 해보는 반성들과 다른 내적 출혈이 보이고 '기타가 세워져 있는 골목', '아버지의 벽시계' 등의 작품에는 사람의 삶을 감싸안는 따뜻한 애정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적절하고 효과적인 표현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독자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박현수의 작품들은 뜻을 응축하여 효과를 배가하는 표현의 세련과 신선함도 갖추고 있어서 흔히 신인한테 바라는 요구도 충족시키고 있다. 작품들의 수준이 고른 것도 실은 마음이 든든한 점이다.
당선시 : 세한도
박현수
1966년 경북 봉화 출생, 세종대 국문과 졸업
세한도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크러진 삶을 쓸어올리며 나는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나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는 것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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