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김종길 , 박성룡
박종명의 '꽃피는 아버지'가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는데 이 작품도 많은 응모작품들처럼 노동현장에 관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전자부품 공장에서 납중독으로 불구가 되었다가 돌아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첫머리와 끝부분에서 풀꽃을 도입함으로써 시적 서정성을 무리없이 확보한 솜씨가 돋보인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처절함으로만 일관되는 것이 아니라 승화된 슬픔으로 끝맺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처럼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이 상투성을 면하려면 작품마다 그 나름의 시적 장치와 서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선시 : 꽃피는 아버지
박종명
1968년 인천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
꽃피는 아버지
그날, 아버지가 앉았던 풀밭 주위에는 풀뿌리들이 하얗게 녹이 슬었다
내디딜수록 풀 길 없이 조여지는 어둠 속에서 지상은 비틀거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지하영세 전자부품공장 안,
온몸에서 흘러내린 땀내와 함께
납이 타는 냄새로 통풍되지 않는 공장은
더 이상 썩지 않는 쓰레기장 같았다
하루종일, 납땜 인두만 만지고 계시는 아버지ㅡ
소화가 잘 안되신다며 빈 속만 자꾸 게워내셨고
가끔 머리카락이 힘없이 빠지곤 했다
식구들이 잦은 빈혈의 조각들처럼 구석에 쌓여 있는
전자부품들 위를 이빠진 선풍기가
심한 요동을 치며 어지러운 세상살이와 함께 돌아간다
끝내, 저녁이 되면
납땜 인두공 아버지 손은 오그라들고 펴지지를 않았다
가랑잎처럼 삭은 어머니의 손이 아무리 펴보려 해도
아버지의 굳은 손은 더욱 펴지지를 않았다
강물 쪽으로 외롭게 내린 뿌리들이
속살 찢어 서러움 빚어내고 우리 식구들은
별빛이 흐려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오그라든 손을 두고 밤새 울었다
납빛 십자가, 풀밭 속에 파묻혔다
어둠이 절뚝절뚝 사라진 풀밭 속에서
무언가 물을 수 없는 말을 던져 놓으며
꽃잎들이 피어났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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