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2년 동아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3. 7. 01:37

심사평 : 신경림 , 김주연


당선작 '갈 수 없는 그곳'은 인간의 정신적 지향을 추구한, 우리 시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가꾸어져야 할 작품이다. 세속과의 초월 관계를 노래하고 있는 이 시에는 세속에 대한 따뜻한 긍정과 함께 결국은 가야 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소박한 두려움이 있다. 이 시는 시 전체가 소박하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어리숙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뽑힌 다른 작품 '가뭄'에는 놀라운 달관과 예리한 감수성이 잠복해 있다. 보다 성실한 훈련을 계속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당선시 : 갈 수 없는 그곳 / 가뭄

 
 
반칠환
1963년 충북 청주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갈 수 없는 그곳
그렇지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습니까. 새벽이 되기 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지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 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 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때리며 병든 부모 손수레에 싣고 길 떠나는 사람들, 오기도 많이 왔지만 아직 그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도복을 입은 도사들 그곳에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그곳, 그러나 바늘귀도 오랜 세월 삭아 부러지고 굳이 더이상 통과할 바늘귀도 없이 자가용을 가진 많은 사람들, 벌써 그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건너가야 할 육교나 지하도도 없는 곳, 도보자들이 몰려 있는 횡단보도에 연이은 차량, 그들에게 그곳으로 가는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오랜 기간 지친 사람들, 무단 횡단을 하다가 즉심에 넘어가거나 허리를 치어 넘어지곤 합니다. 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모두 떠나면 누가 이곳에 남아 씨 뿌리고 곡식을 거둡니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둘 돌아옵니다. 모두 떠나고 나니 내가 살던 이곳이야말로 그리도 가고 싶어하던 그곳인 줄을 아아 당신도 아시나요.
 

 

가뭄

 
저 소리 없는 불꽃 좀 보아.
 
감열지처럼 검게 타오르는 들판,
그 위로 날던 새 한 마리
한 점 마침표로 추락한다.
 
하! 삼도내마저 말라붙어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없어졌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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