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자 김미정 시인
투명한 대화
김미정
어항의 입구가 벌어진다
그 넓이만큼 퍼진 귀의 식욕이 수면을 바라본다
물고기가 투명한 소리를 뱉는다 ; 삼킨다
언젠가 말하지 못한 고백처럼
우린 어항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항이 꿈틀거린다
투명한 울림, 소리의 본적이다
입술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힘껏 던져도 깨지지 않는 혀를
너는 내민다 ; 넣는다
입 모양만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당신의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어항을 채운다
사다리가 늘어나고 큰 자루가 필요하다
소리가 움직인다 아래 ; 위
잎사귀들이 함께 넘친다
이제 귀는 떠난 소리를 그물로 떠올리고 있다
물고기들이 강을 따라 흘러간다
어항의 침묵이 시끄럽게 들리는 오후
누군가 유리컵을 두드리고
헐거워진 귀가 바닥에 떨어진다
계간 『시와 세계』 는 제3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자로 김미정 시인이 선정되었다고 여름호를 통해 밝혔다.
선과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계간 『시와세계』는 2010년 <시와세계작품상>을 제정한 이래 올 해로 3회째를 맞고 있다. 그간 패기 있는 젊은 수상자를 내며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대상자는 2001년~2006년에 등단하여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해마다 실시하는 <시와세계작품상> 에서 대상 작품은 최근 1~2년간 『시와세계』에 실린 작품 2편과 다른 문예지에 실린 작품 2편을 더하는데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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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은 전년도와 같이 『시와세계』 편집부에서 하였으며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오후 6시, 『시와세계』사무실에서 본심이 이뤄졌다. 본심은 발행인 겸 주간인 송준영 시인과, 김영남 시인, 이재훈 시인이 심사했다. 제3회 <시와세계작품상>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강윤순 「발라드」 외 3편
2. 김미정 「투명한 대화」 외 3편
3. 박장호 「허공의 개미집」외 3편
4. 서승현 「편백나무 숲의 연리지처럼」 외 3편
5. 심언주 「소통의 안과 밖」 외 3편
6. 유금옥 「나무와 나의 공통점」 외 3편
7. 유현숙 「불의 원죄」 외 3편
8. 최금진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외 3편
9. 한미숙 「너의 담배는 어디 갔니?」 외 1편
10. 홍재운 「연금술사의 환상여행」 외 3편
본심은 미리 배부한 작품을 검토하고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송준영 주간은 강윤순,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을 김영남 시인은 김미정, 유금옥, 홍재운 시인을 이재훈 시인은 박장호,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을 추천하여 결국 수상 후보는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으로 좁혀졌다.
가장 먼저 논의된 최금진 시인의 경우, 작품이 다소 장황하고 변신에 대한 노력이 아쉬울 뿐 아니라 『시와세계』가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와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그간 최금진 시인이 보여준 문명에 대한 자의식, 도시인의 고투 등 본인만의 차별화된 서정을 보여준 점, 지속적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점 등은 높이 평가되었다.
두 번째로 유금옥 시인의 경우, 밝고 경쾌한 표현과 발상 리듬 등이 장점이나 작품이 다소 평면적이며 깊이가 약하여 당선작으로 꼽을 만 한 작품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미정 시인의 경우, 본질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며 경제적인 언어, 새로운 언어를 추구하는 태도 및 현대시가 나아갈 방향과 관련지어 볼 때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김미정 시인의 「하드와 아이스크림」을 제3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올해로 3회째인 <시와세계작품상>은 제1회 김이듬 시인 그리고 지난해 제2회 이근화 시인이 수상한 바가 있다.
수상자인 김미정 시인은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2009년 《시와 세계》 여름호에 평론부문에도 당선되어 시인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 201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에 있
다
.
한편 시상식은 오는 8월11일 토요일 만해마을에서 가질 예정이다.
다음은 김미정 시인의 수상소감이다.
【수상소감】별 맛도 나지 않는 시간 속으로
김미정
입 안 가득 고여 오는 오늘의 맛, 또 어제의 맛, 하늘 속에 박혀있는 구름의 맛이 숙성되어가는 시간들이다. 착각과 오해로 뒤엉킨 이름다운 혼동이 사랑이라면 내 시는 사랑의 오독이다. 구름의 낱말들이 얼굴로 쏟아진다. 몸에서 둥글고 단단한 것들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실루엣 가득한 창들이 우리를 마주하는 밤, 별 맛도 나지 않는 시간이 별처럼 걸려있다. 입 안 가득 고여 오는 그 시간들이 詩가 되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깃발을 보여준다. 나의 손과 발과 혀가 닿고 싶은 곳이며 일상의 표면을 뚫고 불현듯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언어로 꽃피워낸 시편들이 일상 속에서 경계의 능선을 그린다. 세상의 껍질이 조금 열린 듯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아니 웅크리고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를 찾고 있다. 그것이 발밑에 가라앉은 먼지인지, 보도블록사이 고개 내민 잡풀인지 모른다. 하지만 난 웅크린 자세다. 태초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웅크린 자세로 연약함을 무기로 하여 지금껏 버티어 왔다. 나 자신이 어떤 대상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 할 때, 내 안에 숨어있던 내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가까스로 알아차린다. 그 순간, 시가 태어난다. 점점 녹아 사라져가는 풍경이 내 시의 배경이다. 나를 키운 것은 사라져가는 밤바다의 불빛이고, 결핍이며, 고독과의 연대였다. 이제 ‘그 무엇’을 위해 미끄러지며 변화할 것이다. ‘그 무엇’이 곧 소멸해 버리고 말지라도 존재의 순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별 맛도 나지 않는 시간 속으로 치열하게 달려가 조금 더 깊이 손과 발을 넣어 만질 것이다.
끝으로 나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가족들과 문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항상 뜨거운 손길로 격려와 용기를 주시고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는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영원한 詩의 원천이 되어주신 이승훈 교수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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