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
이동호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복도에게 사표를 낸다는 것은
극빈(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조등(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 앉아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1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종파(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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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경북 김천 출생. 2004년 〈매일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대구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부산 신라중학교 교사. 시집 『조용한 가족』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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