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면서 가리켜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을 깨달아 굽어보면서 일컬어 ‘이것’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이미 얻어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닌 것이 내 원하는 바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있다면 마음은 부족함을 채워줄 만한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어, 그것을 바라보면서 가리켜 '저것'이라 한다. 이것이 천하의 공통된 근심거리이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은 평평하다. 그런즉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높은 산에 오르며 높은 것을 찾는다. 지나간 것은 쫓을 수 없고, 다가올 것은 기약할 수 없다. 그런즉 천하에 지금 누리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큰 집과 차를 갈망하고 땅을 얻으려 애태우며 즐거움 주는 것을 찾는다. 땀 흘리고 숨 헐떡이며 죽을 때까지 마음이 홀려서, 오직 '저것'만 바라보면서,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모른 지 오래다.
- <어사재기>에서 -
‘지금(현재) 여기, 내가 지닌 것’을 ‘이것’이라 한다. 다산은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에 충실했다.
다산이 천주교도라거나 나중에 배교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는 ‘피안(彼岸: 저 언덕)’보다는 ‘여기’에 관심이 있었다. 피안(彼岸)을 그리는 불교나 기독교의 종교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피안보다 현세에 더 집착하는 종교인이 적지 않지만, 다산은 분명 현세를 중시하는 유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다산은 귀양살이 할 때도 ‘현재’에 충실했다. 다산초당을 잘 가꾸어 기뻐했으며,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다산이 살았던 ‘현재,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개혁안을 내놓았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펜서 존슨의 책 <선물(The Present)>도 결국 바로 ‘현재(the present)에 충실하라’는 것이 요지다. 또 영어 단어가 같듯이 ‘현재’야말로 최상의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자신이 지닌 것을 누리고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현재를 잘 활용하는 사람,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사람이다.
글쓴이/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인용부분 원문] 物之不在我者 望而指之曰彼 其在我者 覺而?之曰斯 斯者我之所已得身至者也 然苟我之所至 有不足以滿吾願者 其志不能不慕可以滿者 望而指之曰彼 此天下之通患也 地體渾融 四嚮坤順 則天下莫隆於吾坐之處也 然民猶有陟崑崙登衡?以求高者矣 往不可追 來不可期 則天下莫樂於時受之境也 然民猶有渴軒駟焦田野以求歡者矣 汗流脅息 終身迷惑 惟彼是望 而不知斯之可享也久矣 <於斯齋記> 앞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