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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리뷰] 아버지를 찿아 떠도는 일렉트라(Electra)의 여정(旅程) - <문정희 시집>다산의 처녀

문근영 2014. 5. 8. 09:25

아버지를 찿아 떠도는 일렉트라(Electra)의 여정(旅程)
[북리뷰] <문정희 시집>-다산의 처녀
 
서대선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 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쓸쓸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문정희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다산의 처녀>를 상재 하였다. 문 시인이 이렇듯 열정적으로 시를 낳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매번 처녀가 되어 시를 출산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문 시인이 이토록 시를 낳으며 찿고 있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다. “아버지의 부재”가 그녀를 길 위로 불러내고 있으며, 세상의 많은 남성들 속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를 찿아 떠돌며 아버지를 찿으려는 일렉트라(Electra)이다.  그러나 문 시인은 매번 아버지 찿기에 실패한다. 유년의 시기에 해결되지 못한 그녀의 일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는 이미 열네 살 소녀일 때 깊은 트라우마(trauma)로 그녀의 무의식 속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현실에선 이미 작고 하셨고, 그녀의 무의식 속에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버지의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에선 결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늙어 버린 오빠가 큰 수술을 앞두고/이역에서 보내온 소포를 푼다/박명의 햇살 속에/파르라니 나신을 드러내는 출토품을/오도도! 떨리는 손으로 건져 올린다/수년전 죽은 아버지의 안경이/한쪽 다리를 잃은 채/내 추운 열네 살을 끌고 떠오른다 (얼음 소포중 일부)”에서 보듯 문 시인은 현실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있다. 나이든 오빠가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유품을 이역에서 이제 큰 수술을 앞둔 오빠가 보내온 것이다.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안경”을 얼음덩이 안 듯 두 손으로 “건져 올리는” 문 시인은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잠수해 들어간다. 아버지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너무도 커다란 아픔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억 하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은 “열네 살”의 나이로 퇴행해 들어간다.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서울 가는 상행선 기차 앞에/차창을 두드릴 듯/나의 아버지/저녁노을 목에 감고/벗나무들 슬픔처럼 힌 꽃을 터트리겠지/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명봉역 일부)”에서 보듯 문 시인은 열네 살 때 “명봉역”에서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다. 열네 살의 어린 문 시인은 떠나는 아버지도 떠나가는 기차도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떠나는 이유도 잘 알지 못했으리라. 열네 살의 어린 그녀의 아버지는 “명봉역”에서의 모습으로 문 시인의 무의식 속에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문 시인은 “추운 열네 살” 이라고 고백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트라우마로 무의식 속에 “고착”시킨 나이이다, 아버지에 대해 그리도 오랫동안 아니 평생을 떠돌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열네 살 소녀다. 그녀의 시 속에서, 그리고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아버지를 찿아 떠도는 열네 살의 일렉트라인 것이다.

일렉트라 컴플렉스(Electra complex)란 S. Freud가 성격발달에 대한 연구에서 성격의 발달의 단계 중 5-6세경에 형성되는 남근기에 나타나는 여아의 “남근에 대한 선망”의 개념이다. 일렉트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으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딸이다. 아가멤논이 10년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 부정을 저지른 그의 아내가 정부와 짜고 아가멤논을 살해 한다. 이를 알게 된 아가멤논의 딸 일렉트라는 그녀의 동생 오레스테스오 함께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죽이고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여인이다.
 
이러한 신화 속의 여인을 S. Freud는 정신분석학에 차용하여 여성의 “남근에 대한 선망”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를 일차적 성충동의 대상으로 느낀 5-6세경의 여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경쟁상대로 여기며 아버지를 사랑하고 동일시하려 하지만, 아버지처럼 남근이 없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 몰래 자신의 남근을 거세 하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어머니를 원망한다. 그러나 어린 자신으로서는 어머니를 대적할 수 없으므로 남근선망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 속으로 억압하고, 어머니와 동일시하게 되면서 여성적으로 성장 하게 되며 사춘기를 겪어나가게 되면서 이런 갈등과 충동은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시하고자 하는 어머니가 여아에게 경쟁상대로서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고착과 퇴행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문 시인의 어머니는 그녀의 남편이자 문 시인의 아버지가 떠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에겐 남성에 대한 모델이며, 기준이며 가치관의 베이스캠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모습과 말씀과 가르침과 지속적인 사랑은 여아들의 초자아에 깊숙이 정착되어 사춘기를 지나게 되면서 남자를 판단하게 되는 참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열네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의 부재”는  어린 문 시인에게 남성에 대한 모델의 부재와 남성을 판단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완성시켜주지 못한 채 트라우마로 고착되어 버렸다.
 
이 모든 원인이 무기력한 어머니에게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린 문 시인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문 시인은 아버지를 무기력하게 떠나보낸 어머니에게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나처럼 시를 쓰지 못해/ 천둥과 번개를 침묵으로 만들어/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고 살았다/그, 리. 고,/고층 아파트에서 혼자 죽었다 (어머니의 시 일부)”에서 보듯 문 시인은 어머니에게 가엾음과 무기력함을 일찍이 간파하였고, 어머니가 거세했다고 믿는 “남근”을 자기 스스로 찿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여성의 경우는 거세되었다고 믿는 ‘남근에 대한 선망“은 결혼을 통해서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거세되었다고 믿었던 남근을 되 찿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은 바로 여성의 자신의 남근인 것이다.
 
떠나가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던  무기력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남겨진 어린 문 시인의 좌절과 슬픔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어린 시절을 혼란과 통증으로 아프게 하였으리라. 그러던 그녀는 자신의 시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로 세상을 향해 분출하게  된다. 그녀가 아버지처럼 힘을 갖게 되는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나의 유일한 권력은/나는 쓴다! 였다(나의 의자 일부)”. 그렇다. 시를 씀으로서 그녀는 세상에 자신을 알릴 수 있었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고 “시”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상 어디선가 자신을 알아보고 돌아와 줄지도 모를 아버지를 향해 던지는 그녀의 노래이며 간절한 호소였던 것이다.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깨니 하코네* 이다/푸른 숲 사이로 당꼬 바지 입은 젊은 아버지가/사냥총을 메고 서 있다/식민지의 사내, 나 태어나기 전/하늘을 응시하던 눈이 지금 내 앞에 있다/그가 겨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짐승이었을까?/앨범 속에 그는 영원한 유민이다(새벽 비 일부)‘에서 보듯, 무기력 했던 어머니 대신 동일시하고 싶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단편적인 기억과 앨범 속의 사진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영원한 유민“이었던 것이다. 문 시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그녀를 충동질 했으리라. 떠나라! 떠나라고. 문 시인도 유민이 되어 떠돌면서 길 위에서 아버지를 느끼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의 속삭임에 이끌려 그녀는 현실의 세계와 시의 세계를 떠돌게 된 것이리라. 아버지를 찿아 헤메는 일렉트라의 끝나지 않는 여정 속에서 그녀는 ”쓸쓸“하다.
 
문 시인의 무의식 속에 단편적인 기억으로 이상화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문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열네 살에 떠나버린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많은 남자들을 만나보는 일이다. 우리 문화권에서 여자가 다른 남자를 윤리나 도덕에 얽메이지 않고 만나보는 일은 “창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 문 시인은 “나 요즈음 창녀에 실패하고 있는 는 것 같다(창녀와 천사의 일부)”고 고백한다. 그렇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아버지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 시인이 이상적으로 그려 놓은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 비슷한 사내들을 만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 시인은 결코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없는 그들에게 실망하고 한없이 쓸쓸했으리라.
 
“아버지의 부재”로 생긴 열네 살 의 트라우마로 고착되어 있는 문 시인은 영원한 처녀일 수 밖에 없다. 잃어버린 남근을 찿아 헤메이는 그녀는 다산하고 싶은 처녀인 것이다. 가능한 많은 아이를 낳아서 그 속에 아버지를 닮은 거세된 남근을 되 찿을 수만 있다면, 많은 아이를 낳고 싶은 “다산의 처녀”이고 싶은 것이 문 시인의 무의식이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지 않다는 현실인식과 성숙한 그녀의 시적 자아는 현실에서는 아버지를 닮은 남근을 갖을 수 없다는 것을 깊이 통찰하고 있다. 문 시인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트라우마를 시로 승화(sublimation) 시킨 이시대의 영원한 “다산의 처녀”이다.
 
최근 한국 시단에 “시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버지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로 오늘도 거리를 떠돌며, 아버지를 찿으려 남자들 사이를 헤메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방황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 “쓸쓸”하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만큼 쓸쓸함을 느껴보시라. 이 세상에 아버지를 대신할 남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고” 문 시인의 시 한편 읽어보길 권한다. 뜨거운 눈물과 따스한 위로가 당신의 쓸쓸한 알몸과 마음을 덮혀 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하였다.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문정희 시집>, <새때>,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대>,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를 머리에 꽃고>, <나는 문이다>,등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영역시집<Wind flower>,<Woman on the terrace>,가 출판 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소개되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등을 수상하였다.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민음사] 값.8,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 '문화저널21'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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