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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리뷰]“저수지”가 된 남자가 들려주는 속삭임 - <권정우 시집>허공에 지은 집

문근영 2014. 5. 8. 09:25

[북리뷰]“저수지”가 된 남자가 들려주는 속삭임
<권정우 시집>-허공에 지은 집
 
서대선
자기 안에 발 담그는 것들을
물에 젖게 하는 법이 없다
 
모난 돌맹이라고
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검은 돌맹이라고
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산이고 구름이고
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
겹쳐서 들어가도
어느 것 하나 상처 입지 않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수면 위의 줄글을 다 읽기는 하는 건지
하늘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
바닥이 깊고도
높다
 
 -저수지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등단한 권정우 시인이 처녀시집 <허공에 지은 집>을 상재 하였다. 권 시인의 시적 자아는 여성적이다. 그의 아니마(anima)가 시 전편에 부드럽고도 따스하게 사물을 끌어안는다. 마치 아기를 낳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그의 시에는 객기도 독설도 요설도 없다. 그러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시 전편에 흐르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절제가 눈부시다.  
 
권 시인이 “저수지”가 되어 세상의 사물들을 담아 낼 수 있는 것은 젊은 날 한때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흘러보았기 때문이다. 바위에 부딫 치며, 무릎도 깨져 보았고, 낙차 커다란 벼랑에서 전신에 멍이 들도록 구르기도 했으며, 다른 계곡에서 흘러온 물들과 어깨동무하고 시대의 고난을 무겁게 무겁게 안고 흘러보았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꾸려는 것이 아냐/세상을 바꾸려면/나부터 변해야 한다고/마음먹은 것 아냐/수 만개나 되는 꽃송이를 한꺼번에 터트려/혁명의 불씨가 되려는 것 아냐/ 반도의 끝에서 시작된 반란의 기운이/일부는 산맥을 타고,/일부는 도로를 따라/수도로 번져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불길에 휩싸인 것 아냐(벗 나무도 봄이 되면 중 일부)”에서 보듯 반어법으로 속삭이고 있는 그의 말 속에 권 시인은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잠 못 이루며 몸살을 앓던 청춘이었던 그 시절, “혁명을 꿈꾸며” “나부터 변해야 한다며” “혁명의 불씨가 되려” 최류탄과 몽둥이와 화염병이 난무하던 그 중심에서 불이되어 서울 한 복판에서 도도히 흘렀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장과 구치소를 들락거리던/청년 시절의 나는/어머니의 아픈 곳 이었다/그때마다 어머니는/당신의 몸에 난 상처를 쓰다듬듯이/부드러운 손으로/나를 쓰다듬어 주셨다(어린 아들을 울리고 중 일부)” 그렇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권 시인이 도도히 흐르며 세상의 모든 벽이란 벽은 모두 허물리라며 세상에 온몸을 던져 소용돌이치던 그 흐름을 조용히 “저수지” 안에 담아둘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때문이다.
 
“연애에, 혁명에/눈이 멀어 있는 동안/어머니의 생이 지고 있었듯이(개나리 중 일부)” 젊음의 한가운데 있었을 때에는 질풍노도의 성난 파도가 되어 흔들리면서 그 뒷바라지로 권 시인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계시던 “어머니”도 잊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내달으며 오로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넘실대던 그 시절엔 “어머니의 눈물”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군대를 다녀오고 이제 보다 더 젊은 후배들에게 흘러야 할 것을 넘겨준 늙은 청년이 가야하는 길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안으로 품고 정체성을 찿아 가는 길이었으리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사랑을 하고, 흐르는 걸 잠시 접고 스스로 “저수지”가 되어 놓았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생을 참고 계시던 “어머니의 울음”을 멈추게 해드리는 일이기도 했으리라.
 
"저수지“가 되어 조용히 주변의 사물을 담으니 보인다. 어머니가 보이는 것이다. 흘러갈 땐 담아내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보이는 것이다. ”엄마는 우물처럼/울음을 참고 살았다/들여다봤으면 가슴까지/눈물이 차올라 있었을 것이다/엄마가 매 맞은 날/어린 자식들의 눈물을 씻어 주려고/깊은 곳에서 눈물을/길어 올린적은 있다(우리 엄마 중 일부)‘에서 매 맞은 엄마를 보고 무서워서 우는 어린 자식들 앞에서 엄마는 자신의 고통과 통증을 숨기고 오히려 어린 자식들의 눈물을 씻어주시던 어머니를 내재화한 권 시인이다. 그의 시정신의 강인한 절제력과 외유내강의 정신이 어디서 오는 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물이 있었으면 좋겠다/안 그래도 좁은 아파트에/어디다 들여놓을 거냐고/아내가 불평할지라도/어릴 적 이사하며/두고 온 그런 우물을/거실과 부엌사이 어디쯤/놓아두고 싶다(대보름 달을 보며 중 일부)”에서 “우물”은 내재화된 어머니의 이미지와 동일시된다. 권 시인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어머니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어머니에 목마르지 않도록, 그리울 적마다 좁은 아파트일지라도 거실과 부엌사이 어디쯤 어머니의 사랑이 항상 머물러 주기를 희망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권 시인 자신이 내재화 시킨 어머니의 마음이 되기로 하고는 “저수지”가 되어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왜 “우물”이 아니고 “저수지”일까? 우물은 떠나지 못하고 흐르지 못하는 고정된 이미지로서 항상 베풀기만 했던 어머니, 언제나 희생만 하셨던 어머니의 슬픔과 쓸쓸함의 이미지 이다.그런 “우물”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기엔 너무도 통증이 컸으리라. 그리고 인텔리겐챠인 권 시인은 잠간 삶의 도정에서 필요에 따라 자신의 흐름을 가두어 둔 것이지,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우물”대신 “저수지”의 이미지를 차용 했으리라.
그러나 “저수지”에서 담아내는 그의 시적 아니마는 그의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아 있다. “자기 안에 발 담그는 것들을/ 물에 젖게 하는 법이 없다/모난 돌맹이라고/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검은 돌맹이라고/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산이고 구름이고/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겹쳐서 들어가도/어느 것 하나 상처입지 않는다(저수지 중 일부)”에서 보듯 얼마나 푸근한가. “어느 것 하나 상처 입히지”않으려는 권 시인의 마음을 보며 상처입고 아파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권 시인의 “저수지”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비추어 보며 알게 될 것이다.
 
세상살이에 너무 젖어 있어서, 모난 것에 더 모나게 대한 것은 아닌지, 주먹에는 주먹 칼에는 칼로 대적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지나친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타인과 겹쳐지는 것이 싫어 상처주고 상처 받아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지 “바닥이 깊고도 높은 저수지”에 비추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람이 불면 “저수지”에 잔물결이 일면서 나즉나즉 들려주는 권 시인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권정우 시인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석. 박사과정을 졸업 하였다. 1993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애지] 값,9,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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