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개성의 세계들
―허만하, 『바다의 성분』, 솔출판사.
―강인한, 『입술』, 솔출판사.
―문무학, 『낱말』, 동학사.
―신덕룡, 『아주 잠깐』, 서정시학.
이은봉(시인, 광주대 문창과 교수)
지성으로 정제해낸 풍경들 : 허만하
시인 허만하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1957년의 일이다. 따라서 40년을 넘게 시를 써온 것이 그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간행된 『바다의 성분』(솔, 2009)은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海藻』가 간행된 것은 1969년의 일이고,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등 나머지의 시집이 간행된 것은 1999년 이후의 일이다. 부산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있다가 1997년에 정년퇴임을 했으니 나머지 네 권의 시집은 모두 정년퇴임 이후에 간행된 셈이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그의 시집도 이들 네 권의 시집이 전부이다. 이들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시의 특징은 풍경의 선택과,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풍경이 단순한 경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에게 경치는 거의 대부분 풍경의 질료로나 존재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함유되어 있는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그의 의지나 세계관에 의해 재창조되어 있는 심미적 형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러한 뜻에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할 말은 인생에 대한 각성된 진리나 지혜일 수도 있지만 우발적인 심미적 정서일 수도 있다. 그의 시에 선택되어 있는 풍경이 그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보다 그다지 전경화되어 있지 않는 것도 정작은 이에서 연유한다. 그렇다. 때로는 선택된 풍경이 전경화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가 전경화되기도 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다음은 상대적으로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보다 선택된 풍경 그 자체가 전경화되어 있는 시의 예이다.
마지막 철새 사라진
썰렁한 하늘에서
무게도 없이 발치에 떨어진
기러기 울음소리
사람 발자국 모르는
태고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을 건너던
눈바람소리
자욱한 눈보라를
피로의 극한까지
날개 젓던 한 마리 기러기
생명이 한 번도 그곳에 이른 적 없는
인식의 바깥
아득한 구름 위에서
구성지게 한 번 울렸던
최초의 기러기 울음소리
땅에 떨어지기 직전
기러기가 보았던 것이
먼 노을 저쪽인지
어둠의 이쪽인지
아득한 높이에서
마른번개처럼 번득였던
최초의 기러기 울음소리
―「주남저수지의 어느 날」 전문
엄밀하게 말하면 이 시도 선택된 풍경 그 자체가 전경화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객관적이고 표면적인 현상 자체를 투사해 순간적으로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본질을 포착해내는 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3연의 “생명이 한 번도 그곳에 이른 적 없는/인식의 바깥” 등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시인 허만하의 주관적 의식이 일정하게 개입되어 있는 것이 이 시라는 뜻이다.
따져보면 주관적인 본질과 객관적인 현상이 엄밀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객관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의 산물이고, 모든 주관적인 것은 객관적인 것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상징주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구체적인 지혜나 진리보다 리듬과 이미지 위주의 몽롱하고 혼몽한 분위기를 전경화시키고 있는 것도 얼마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의 풍경에 주관적인 의식이 거듭 작용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특성, 곧 그의 지성이 거듭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에서 지성은 때로 지식의 차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자연과학도로서 쌓아온 교양이 불현듯 그의 시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관찰되거나 창조된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투사하기보다는 풍경으로부터 획득한 정서나 의식을 진술하거나 고백하는 것이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언술특징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풍경으로부터 얻은 의식을 진술하거나 고백하는 언술특징이 다 나쁜 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 시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갖지 않는 만큼 형상의 완미성을 획득하기가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낭만적 정서가 남아 있는 다음의 시는 일정한 미학적 성취가 드러나 있어 더욱 주목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인의 주관적인 참여와 해석이 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살쾡이가 산토끼 노려보듯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
하늘은 별밤이다
낙엽처럼 땅바닥에 깔려 있는
가로등 불빛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
그는 잎 진 한그루 나무다
―「겨울 밤 한 나그네가」 전문
모두 11행에 불과한 이 시에 함유되어 있는 풍경은 매우 사실적이다. 적어도 9행까지는 주관적 화자의 특별한 개입 없이 “겨울 밤 한 나그네”라는 인물형상과, 그 인물형상이 처한 상황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10행이 이르면 나그네라는 인물형상과,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그는 잎 진 한그루 나무다” 등의 구절에 함유되어 있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시인의 주관적인 참여나 해석이 덜한 것이 위의 시라고 했지만 이 구절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듯싶다. 도저한 과장이 하나의 은유로 자리해 있는 것이 이 구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구절의 내용은 의식 있는 시인의 주관적 개입이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시인 허만하 자신의 의식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의 의식에는 당연히 그의 세계관이나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 선택된 풍경에서 자신의 의식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의식으로 선택한 풍경을 투사하는 것이 시인 허만하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가 이 땅의 풍경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때로는 그것이 한갓 경치로 존재하거나 경치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때가 되면 충분히 유의미한 풍경으로 성숙할 수도 있는 것이 이들 경치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시인 허만하는 풍경 속에 자리해 있는 진실 혹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시인, 흔히 말하는 기행시인이라고 해도 좋다.
세련된 현실비판 혹은 섬세한 연민 : 강인한
시인 강인한은 첫 시집『異常氣候』(1966)을 간행한 후인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자신의 위치를 좀 더 확고히 한다. 이 무렵의 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당대의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정신이다. 이는 『異常氣候』에 실려 있는 좋은 시 「異常氣候」 및 「1966」 등은 물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大運動會의 萬歲소리」에서도 익히 알 수 있는 그의 시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초기시 「異常氣候」, 「1966」, 「大運動會의 萬歲소리」등에는 강제로 베트남에 파병되는 젊은이들의 울분이 고스란히 내화되어 있어 크게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러한 비판정신은 두 번째 시집 『불꽃』(1974)은 물론 그 이후에 간행된 시집 『전라도 시인』(1982),『우리나라 날씨』(1986),『칼레의 시민들』(1992),『황홀한 물살』(1999), 『푸른 심연』(2005)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물론 이들 시집에 드러나 있는 그의 시의 비판정신은 기본적으로 반독재민주화라는 당대의 시민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광주항쟁의 피를 덮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향해 그가 끊임없이 시의 비수를 들이댔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때 좀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시와 함께 하고 있는 이러한 비판정신은 참여정신의 구체적인 현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학의 현실참여를 강조한 것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이지만 사르트르도 시의 현실참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인 강인한의 경우에는 시의 현실참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싶다. 끊임없이 우리사회의 다양한 현실에 세련되고 단련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돈을 치른 개장수들이
목줄을 대문 밖에서 끌어 올리자
발버둥치다가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처럼,
결사 반대를 외치며 머리띠를 두르고
일사불란하게 주먹을 치올리는 젊은이들,
저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
호루라기에 쫓기는 노인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노인은 파업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
생각 중일뿐.
―「파업」 전문
이 시에서는 세 개의 대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세 개의 장면이 겹쳐지고 있다.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와“일사불란하게 주먹을 치올리는 젊은이들”과“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생각 중”인 노인이 만드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이들 존재는 호루라기로 상징되는 어떤 힘과 관련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하나는 죽음과 함께 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과 함께 하는 태도이다. 물론 화자로서 시인의 마음이 상대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싸움과 함께 하는 태도가 아니라 죽음과 함께 하는 태도이다.
이 시에서 죽음과 만나는 개와 노인은 비유의 보조관념과 원관념으로 존재하며 상호 비교ㆍ대조되고 있다. 이 시에서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처럼”의 원관념이 실제로는 노인이라는 얘기이다. “저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호루라기에 쫓기는”노인은 노점상이거나 일용직 근로자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노인은 파업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은 지금 “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생각 중일뿐”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시인이 자신의 연민을 직접 부여하는 대상은 노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리어카를 끌고/호루라기에 쫓기는” 노인에 대한 시인 나름의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라는 뜻이다.
물론 그의 시에서 연민의 대상이 매번 이처럼 구체적인 인물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간접화되어 있는 연민의 대상도 적잖기 때문이다. 이때의 연민의 대상도 위의 시와 같이 소외되고 버려진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의 시에는 일종의 객관상관물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연민의 대상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먹물이 번지는 하늘에서
하늘에서 검은 쇠못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은빛 강철의 손들이
무수한 손들이 아우성치며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찢겨져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나뭇가지
검은 바람이 달라붙어서
거칠게 이파리를 뜯어먹는다
소리가 소리를 지우는
거대한 침묵 속에.
―「폭우」 전문
이 시에는 폭우의 이미지와 이파리의 이미지가 상호 대립되어 있다. 우선 폭우의 이미지는 “검은 쇠못”, “강철의 손들”, “검은 바람” 등의 이미지로 변주되는 가운데 억압자, 핍박자의 내포를 갖는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존재, 즉 억압자, 핍박자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 존재를 수식하는 “검은”, “강철의”등의 말이 자못 부정적인 내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이 시에는 무엇보다 이들 존재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 담겨 있다. 물론 이때의 비판정신은 그의 참여정신에서 비롯된다.
이 시에서 이들 존재에 의해 억압받고 핍박받는 대상은 이파리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있다. 따라서 시인이 정작 연민을 갖는 것은 억압받고 핍박받는 대상인 이파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검은 바람”에 의해 거칠게 뜯어 먹히는 이파리, “찢겨져 바닥에서 몸부림치는”이파리가 여기서 상징하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나날의 삶에서 착취를 당하는 모든 존재를 뜻하는 것이 바로 예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연민은 비판정신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어 한층 주목이 된다. 연민은 본래 변형된 사랑이다. 사랑이 측은지심의 모습으로 변형될 때 붙이는 이름이 연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민을 포함한 사랑은 시의 화자가 대상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정서 및 심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사랑의 대상과, 그에 따른 정서 및 심리는 바뀔 수밖에 없다. 시인에 의해 그려지는 객관적인 풍경이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진술의 주체로 드러나는 시인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시집에서 전자의 예로는 「밤의 메트로」,「사당역 레일아트」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한방울의 물」,「입맞춤, 혹은 상처」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시에 이르면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인 현실참여와 함께 하는 비판정신은 곧바로 의미를 잃는다. 비판정신과 짝을 이루고 있는 연민이 이미 시 본연의 차원으로 전화(轉化)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시 본연의 차원으로 전화해 있다는 것은 예의 연민이 시에 포착되는 존재들 사이의 근원적인 친화, 그리고 그것들이 화자(시인)와 이루는 근원적인 친화의 질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문장부호, 낱말, 그리고 품사의 시조 : 문무학
이번에 간행된 문무학 시인의 시조집의 제목은 『낱말』이다. 이 시조집으로 그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제25회 윤동주문학상을 받는 등 두루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이 시조집이 그만큼 의미 있는 세계를 담고 있다는 증표가 된다. 『낱말』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이 시조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한글의 문장부호나 문자(글자), 그리고 품사가 갖고 있는 상형적 특징 및 철학적 특징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첫 번째 것은 한글의 문장부호나 문자(글자) 등이 순수하게 표음적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한글문자에는 부분적으로 표의적 기능이 자리해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한자처럼 완벽한 상형의 기능을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글문자도 다소간은 상형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재야의 학자 중에는 실제로 한글의 상형성과 관련해 일정한 논리를 펴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
가령 ‘꽃’이라는 한글문자는 때로 그 자체가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어찌 보면 한글문자의 상형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언어감각의 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수준의 언어감각을 갖지 않고서는 소리글자인 한글문자에서 상형성을 발견하거나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문자의 상형성에 대한 관심은 한글낱말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한글문자에 대한 관심 없이 한글낱말의 상형성을 발견하거나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한글문자의 상형성에 대한 관심은 한글낱말이 지니고 있는 심미성을 옳게 깨닫고, 그에 심취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낱말이 지니고 있는 심미성을 바르게 깨닫고, 그에 심취하는 과정이야말로 문학의 세계, 나아가 시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창작의 절차와 단계라는 관점으로 보면 맨 처음 도달하는 각성이 다름 아닌 낱말이 지니고 있는 심미성에 심취하는 일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제대로 된 시인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모국어의 단어, 이른바 한글낱말의 아름다움을 바르게 깨닫고, 그에 심취하는 체험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대로 된 리듬과 어조,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서와 함께 하는 시인이 되기는 힘들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때 좀 더 깊이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문무학의 이번 시조집 『낱말』이다. 이 시조집은 세 개의 커다란 연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장부호 시로 읽기〉, 〈낱말 새로 읽기〉, 〈품사 다시 읽기〉가 바로 그것이다. 〈문장부호 시로 읽기〉는 모두 11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낱말 새로 읽기〉는 모두 61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품사 다시 읽기〉는 모두 9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 시조집에는 한글의 문장부호와 문자, 품사를 소재로 한 작품 81편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연작시조 〈문장부호 시로 읽기〉중의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느낌표는 흐느낌
눈물
뚝, 떨구는
그 눈물 흘러내려
가슴에 철렁하면
가만히
눈감지 않고
그 어이 견디랴.
―「문장부호 시로 읽기ㆍ3―!」 전문
이 시조는 문장 부호 중의 하나인 느낌표, 즉 !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느낌표, 즉 !에서 발견하고 깨닫는 형상성을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이 시조라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느낌표, !에서 “눈물/뚝, 떨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이 시조인 셈이다. 그것이 이 시조의 초장을 이루고 있거니와, 중장과 종장은 느낌표, !가 갖는 예의 발견과 깨달음에 대한 시인의 반응을 담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눈물 흘러내려/가슴에 철렁하면//가만히/눈감지 않고/그 어이 견디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그라는 뜻이다.
〈문장부호 시로 읽기〉라는 제목의 연작시조 11편에는 온점, 반점, 물음표, 따옴표 등 한글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문장부호가 노래되어 있다. 물음표, ?에서는 “사람의 귀”와 “낚싯바늘”(「문장부호 시로 읽기ㆍ2―?」)을, 나아가 “문명의 근원”을 연상하고 있고, 따옴표, “ ”에서는 “따뜻하게 안는 것”을, 나아가 “손 모으는 겸손”(「문장부호 시로 읽기ㆍ5―“ ”」)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 그이다. 물론 이들 시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장부호에서 그가 상상하는 삶의 모습이 매번 완벽하게 상형적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형상보다 다소간 의식이 개입된 채 상상되는 문장부호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면은 또 다른 연작시조 〈낱말 새로 읽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선은 좀 더 정밀한 형상을 담고 있는 낱말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조부터 살펴보자.
‘땅’이란 글자는 땅을 잘 그려 낸다
들과 들 평평하다
솟구쳤다 다시 흘러
끝내는
둥글다는 것
그려내고 있잖은가.
―「낱말 새로 읽기ㆍ14―땅」 전문
이 시조에서 시인은 ‘땅’이라는 글자가 ‘땅’이라는 형상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ㄸ’에서 “들과 들”의 모습을 연상하고, 다음 그는 ‘ㅏ’에서 그것들이 “솟구쳤다 다시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상한다. 그리고 ‘ㅇ’에서 땅이 “끝내는/둥굴다는 것”을 상상한다. 이처럼 이 시조는 한글문자, 곧 한글낱말인 ‘땅’의 상형성에 대한 시인의 상상을 담고 있다. 물론 이는 <시인의 말>에서 그 자신이 강조하고 있듯이 “낱말의 짜임새를 살피고, 중얼거려 보고, 뒤집어 보기도 하고, 한 글자가 가진 여러 의미를 엮어 보기도” 하는 과정에 획득된다. 그러한 과정에 “소리글자인 한글이 가진 상형성과 철학성에 매료되어” 얻어낸 결과가 위의 시조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성에 매료되어” 얻어낸 결과는 아마도 한글낱말이 함유하고 있는 보편적 진리를 가리키는 듯하다. ‘땅’이라는 한글낱말의 ‘ㅇ’으로부터 그것이 본래 둥근 것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물론 이에도 가시적인 형상과 함께 하는 시인의 의식이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글낱말인 ‘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러한 철학성은 다음의 시조에 강조되어 있는 ‘새’라는 한글낱말에서도 익히 확인이 된다.
‘새’는 ‘사이’를 줄인 말일 것이다
땅과 하늘 사이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
날 수 있는 것은
새뿐이지 않은가.
―「낱말 새로 읽기ㆍ9―새」 전문
이 시조는 “땅과 하늘 사이 하늘과 땅 사이”를 나는 ‘새’가 “‘사이’를 줄인 말”이라는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새’가 “땅과 하늘 사이 하늘과 땅 사이”의 ‘사이’가 준말이라는 상상은 그야말로 기발하다. 이 시조가 충분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에서 기인한다. 물론 “그 사이”를 “날 수 있는 것은//새뿐이”라는 구절에는 시인의 깊은 자유의지가 들어 있다. 언제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 ‘새’의 이미지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이 시조에서 ‘새’라는 한글낱말의 상형성에는 얼마간 시인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은 당연히 시인에 의해 ‘새’라는 한글낱말이 새롭게 풀이되는 과정에 작용된다. ‘새’라는 한글낱말이 그에 의해 새롭게 풀이되면서 일종의 희망이나 의지의 형태로 자리해 있는 것이 예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시인이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낱말 새로 읽기ㆍ13―바다」)라고 상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글낱말로부터 그가 포착해내는 상형성이 오직 객관적인 모습만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그의 시조에 나타나 있는 한글낱말의 상형성의 경우 완벽하게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의식이 작용하는 가운데 구체화되는 한글낱말의 상형성도 적잖다는 뜻이다. 그의 시조의 “내 삶이 문장 속에 놓여져야 한다면” “관형사,/네가 되고 싶다. 너 없으면 빛 없나니.”(「품사 다시 읽기ㆍ7―관형사」)에 드러나 있는 시인의 의식도 실제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의 시조에 의해 발견되고 각성되는 한글낱말이나 한글품사 등의 상형성 혹은 철학성의 경우 충분히 객관적인 내포를 갖기도 하지만 충분히 주관적인 내포를 갖기도 하다는 뜻이다.
어조와 화법, 그리고 종결어미 : 신덕룡
신덕룡은 우리 문단에서 익히 찾아볼 수 있는 늦깎이 시인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의 문단 데뷔 자체가 늦은 것은 아니다. 그가 맨 처음 문단에 선을 보인 것은 1985년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평론가로서 그는 이미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이룬 바 있다. 『환경 위기와 생태적 상상력』(1999), 『생명시학의 전제』(2002) 등의 저서를 통해 생태시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한 것이 그이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그가 맨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시와시학》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등단을 한 후 그가 첫 시집 『소리의 감옥』(천년의시작)을 간행한 것은 2006년 10월의 일이다. 그러니 만큼 2009년 9월에 간행된 이번 시집 『아주 잠깐』(서정시학)은 만 3년만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 있는 한국의 시인들이 보통 3년을 주기로 시집을 내는 만큼 이는 무엇보다 그의 발걸음이 결코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아주 잠깐』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첫 번째 인상은 어조와 화법, 그리고 종결어미에 대한 배려이다. 물론 그것들이 만드는 리듬과 속도에 대한 집착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이러한 인상을 좀 더 집중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은 제1부의 시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상이 단지 제1부의 시들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는 그의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시집 전체의 특징이 리듬과 속도,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어조와 화법과 종결어미에 대한 관심에 있다는 것이다.
리듬은 시와 시 아닌 것을 변별하는 가장 일차적인 기준이다. 리듬에 대한 감각이나 각성 없이 좋은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신덕룡은 이미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그가 이미지나 이야기보다는 리듬이 만드는 정서를 바탕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특징, 곧 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리듬에 대한 감각과 각성은 그 나름의 개성 있는 속도감을 만드는 일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속도감은 시의 리듬이 수시로 끊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지금 리듬을 끊으면서 잇는 기법, 곧 꺾으면서 젖히는 기법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의 리듬은 얼마간 단속(斷續)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리듬을 끊으면서 잇기 위해, 꺾으면서 젖히기 위해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은 시행의 이월 기법 및 반점(쉼표)의 기법이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수식관계가 명확하고 분명한 짧은 문장을 쓰는 것도 그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조사나 어미를 생략해 리듬의 촉급한 느낌을 살리려고 하는 것도 동일한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일을 알 수 없다. 이십여 년
눈 뜰 때마다 곁에 있던, 꼼짝없이 붙어 병수발하던
여든 넘은 아내가 떠났다.
함께 가지 못해 끙끙 앓다 돌아선 수인(囚人)이
마지못해 한 발 앞서 갔다.
없다는 사실, 딸에 집에 다니러 갔다는
지금 없다는 사실이
남겨진 노인에겐 캄캄한 비애다. 초점이 흐린 눈에
벼랑 하나 솟아올랐다.
마주보며 한삽 한삽 퍼 올리던 무덤의 흙처럼
더 말라 푸슬푸슬해지기 전에
무거운 몸 털썩, 내려놓는 게 상책이겠다.
생각이 있다면 그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잿더미로 꽉 채워진 아궁일 게다.
깜박깜박 끊겼다 이어지는
기억이 증거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주치는
첩첩 쌓인 어둠의 깊이만큼 푹, 패인 눈빛일 터
적적성성(寂寂醒醒)
온전히 혼자 몫으로 남았다.
―「접촉불량」 전문
이 시는 배역을 화자로 선택해 언술구조를 펼치고 있다. 배역으로 등장하는 화자는 “꼼짝없이 붙어 병수발하던/여든 넘은 아내”를 “한 발 앞서” 보낸 홀아비 노인이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잿더미로 꽉 채워진” 노인은 지금 기억이 “깜박깜박 끊겼다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내일을 알 수 없”는 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인물형상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를 택해 논의를 하는 정작의 이유가 이러한 것을 밝히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속도감을 만드는 이 시의 리듬을 살펴보려는 데 정작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선 리듬을 꺾으면서 젖히기 위해 1행과 8행에서 시행을 이월시키는 기법을 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일을 알 수 없다. 이십여 년”, 그리고 “남겨진 노인에겐 캄캄한 비애다. 초점이 흐린 눈에” 등의 구절이 그 실제의 예이다. 뿐만 아니라 2행과 6행, 그리고 12행 등에 쓰인 반점(쉼표)도 리듬을 끊으면서 잇는 기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것은 속도감 있는 리듬이 만드는 특유의 정서를 산출하기 위해 그가 어조와 화법에 깊이 집착해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예의 리듬을 통해 유추, 짐작, 추측 등의 음상과 어감을 살리려고 하는 노력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위의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책이겠다.”, “―아궁일 게다.”, “―눈빛일 터” 등의 종결어미이다. 그렇다. 그의 이 시집에는 이들 종결어미를 이용해 어조와 화법의 멋을 살리려는 노력이 십분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의 매 편의 시에 응용되어 있는 그의 이러한 노력이 매번 심미적 상승효과를 산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요컨대 너무 자주 응용되다 보니 얼마간은 진부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기침하듯 내뱉은 비명이겠다
―「사월」 부분
늘 종종거렸던 몸 들쑤시겠다.
―「낡은 유모차」 부분
주린 배를 달래주던 꿈속같구나.
―「만월」 부분
칼바람 스쳐간 곳곳마다 상처가 문신처럼 남았을 터
―「모닥불」 부분
뜯어가며 목을 축인 흔적일 터
―「서면 지하철역에서」 부분
앞으로만 치달리던 생의 관성일 터
―「처음이 없다」 부분
잔뜩 물먹은 집이라는 걸 알겠다.
―「물속에서 하룻밤」 부분
위의 인용문들은 그의 이번 시집 『아주 잠깐』의 제1부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의 종결어미를 간추려 제시해본 것이다. “―겠다.”, “―게다.”, “―것이다.”, “―같다.”, “―터” 등으로 요약되는 그의 시의 이들 종결어미는 기본적으로 유추, 짐작, 추측 등의 내포를 갖는 미래시제로 기능하고 있다. 미래시제로 기능하는 이들 종결어미에 대한 집착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 있는 무의식의 실재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이들 종결어미에 대한 집착을 통해 남다른(?) 말맛, 즉 개성 있는 어감과 음상의 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종결어미를 활용해 시의 정서적인 아우라를 산출하는 기법은 일정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자각하기도, 실행하기도 힘들다. 특히 미래시제의 종결어미를 집중적으로 선택해 개성 있는 말 맛, 즉 어조와 화법의 미의식을 탐구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각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의 시에 좀 더 많이 좀 더 자주 사용되어 있는 시제는 과거가 아닌가 싶다. 추측컨대, 그의 무의식이 과거시제를 취하고 있어 그의 의식이 미래시제를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와시학》 2009년 겨울호
-'이은봉-돌과 바람의 詩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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