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는 이렇게 퇴고한다(퇴고의 기법) 제 18 강 - 이상한 웃음소리 / 윤종대

문근영 2014. 4. 28. 11:34

이상한 웃음소리/윤종대


내가 중학교 이학년 때의 일이었다. 겨울밤 산길을 아버지와 걷다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우리 동네에서 산길로 시오리가 떨어진 면 소재지에 중학교가 있고 오일장이 섰다. 그 시오리 산길에는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의 현장이 중간중간에 있다. 그날 아버지는 장을 보시고 귀가중이셨고 나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해가 짧은 겨울 그믐밤의 깊은 어둠을 두 사람이 천천히 더듬듯이 걷고 있었다. 멀리 우리 동네의 희미한 불빛이(그 당시까지 우리 동네에는 전깃불이 없었다) 비치는 것이 보일 때였다. 갑자기 두 사람의 오른쪽에서 “우 하 하” 하는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신에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본능적으로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이 깊은 밤에 누가 이런 미친 장난을…. 그러나 오른쪽 숲도 깊은 밤의 정적에 묻혀 있을 뿐이었다.
둘러보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더욱 무서운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그때 또 “우 하 하”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희미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숲 중에서 가장 키가 큰 소나무에서 났다. 이 깊은 밤에 소나무 위에서 사람의 웃음소리라니! 나는 얼른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소나무 위엡니더.”
아버지께서도 나지막하게 대답하셨다.
“나도 안다.”
그 순간 소나무 위에서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무섭게 큰 날짐승이 희미한 밤하늘을 가로질러 맞은편 산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날아간 쪽에서 “부엉 부엉” 하고 쓸쓸한 겨울밤의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전에도 부엉이 웃음소리 들어본 적이 있습니꺼”?
“없다.”
“…….”
지금까지 아버지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으신 눈치시다. 아무도 그 사실을 믿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아시기 때문이리라. 나는 철이 없으니까 친구에게 두어 번 이야기한 적이 있으나 아무도 믿지 않고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 뒤로 나도 누구에게 그 일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시를 어떻게 고쳐 쓸 것인가 하는 내용에 전혀 관계 없는 것같은 이야기로 서두를 때운 것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영락없는 인간의 웃음소리를 우렁차게 토해내는 부엉이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상상력이 좋다는 어느 시인이 만약 이런 상상을 하여서 부엉이가 웃는다는 시를 썼다고 하면 그 시는 좋지 않은 시로 평가받을 게 틀림없다.
부엉이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어둡고 쓸쓸하고 검은 밤을 꿰뚫는 커다란 눈 정도라서, 웃는다는 것과 전혀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리고 싶은 시인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독자들이 인정할 수 있게 전체적인 상황을 조성하고 적당한 사실을 예시하며 독특한 수사법으로 자기의 주장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새롭고 신선한 사실을 설득력있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지구상에만 해도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의 시인이라고 해도 이러한 실상의 모습을 다 보아내기란 어렵다. 보았다고 해도, 느꼈다고 해도 그 자체를 생생하게 표현하기란 어렵다. 이 과정에서 고쳐쓰기는 거의 필연적인 통과의례가 아닐까.
이야기를 바꾸어 내 개인적인 시작 과정을 더듬어 보자. 일반적으로 시작에 있어서 상상력은 대단히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 상상력의 방향, 색깔, 넓이, 깊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면에서 나는 기상론자(氣象論者)에 가까운 것 같다. 가능하면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려고 주의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피동으로 획득된 나의 정보는 능동적인 수용 자세, 즉 관찰, 해부, 분해, 응용, 재결합 따위의 과정을 거쳐서 내 체온과 느낌이 융화되어야 참된 나의 정보가 되는 것이다. 입력된 내용이 수용 과정을 거치는 사이에 엉뚱하게 다른 이미지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시를 쓰는 것은 마음이다. 정리하는 것은 머리이다. 표현하는 것은 손이다. 고쳐 쓴다는 것은 손가락을 조금만 부드럽게, 혀를 조금만 부드럽게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실례를 들어보자.
나의 마음은 부서지고 나누어지고 찢어지고 파괴되어가는 현상에 혐오감을 느낀다. 보다 나은 현상으로 진화를 전제로 한 이합집산은 이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지만 막무가내의 파괴는 싫다. 그래서 가능하면 부드럽게 맞대어 주고 이어 주고 싸안아 주는 공존의 화해 세계를 갈망한다.
얼마 전에 태종대 썰물의 바닷가에서 자잘한 빨강 무늬가 아름다운 달팽이같은 생물을 보았다. 처음 본 생물이어서 그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바다달팽이라고 이름지었다. 나의 머리는 육지생물의 이름 앞에 바다라는 글자를 붙여서 바다생물의 이름으로 삼고 있는 것들을 떠올렸다.
바다표범, 바다가재, 바다개, 바다뱀, 바다솔 등등….
7:3의 비율로 넓은 바다라면 지상의 모든 생물의 닮은 꼴이 바다에 다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인어가 언제나 암놈밖에 없으란 법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한한 우주쪽은? UFO 사건, 우주인 해부 기사 등이 접수되어 있으니 나와 같은 우주인이 있을 확률은 바다보다 더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늘 바다와 하늘에 이유없이 끌리고 있지 않는가! 결국 내 손가락은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한 몸인 듯

바다표범 바다개 바다뱀 바다가재
며칠 전에는 바다달팽이를 보았다.

나와 같은 인어 한 마리
먼 바다 깊은 바다에 살고 있을지 몰라
자꾸 내가 끌리는 걸까.
땅위의 나를 느끼며
그 또한 나에게 끌리고 있는 걸까.

나와 꼭 닮은 별나라 사람 하나
먼 하늘 수없는 별
그 어디에 살고 있어
나는 자꾸 하늘에 끌리는 걸까
지구에 있는 또다른 그의 모습에
자꾸 마음 쏠리고 있어서.
바다 속의 나
별나라 속의 나
남천동 비치아파트 206동 211호의 나
제각각이 아니고 한 몸인 듯
한 몸인 듯

우선 형태는 쉽게 드러났다. 나의 경우에는 하나의 거리가 잡히면 오래도록 속에서 정리를 하기 때문에 쓰기 시작하면 쉽게 형태를 드러내는 편이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본다.
첫연의 예시가 많아서 산만한 느낌이고 며칠 전이라는 말은 선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둘째 연과의 연결이 부드럽지 못하다. 둘째 연과 셋째 연은 병치인데, 동일하게 각 연의 마지막 두 행이 중간쯤으로 올라와야 부드러워질 것 같다. 또 마지막 연의 ‘속’이라는 말은 빼는 것이 좀더 내포력이 클 것 같다.
이런 작업에는 혀의 느낌이 중요하다. 연결이 어쩐지 어색하다는 감은 혀가 가려내는 부분이 많다. 나의 혀는 뿌리가 깊어서 이미지의 맛도 혀로 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다듬어 쓴 모양이 아래와 같다.

한 몸인 듯

바다표범 바다뱀 바다가재
어제는 바다달팽이를 보았다.
땅에 있는 것을 닮은 것들.

나와 같은 인어 한 마리
먼 바다 깊은 바다 어디쯤에 살고 있을지 몰라
땅위의 나를 느끼고 있어
나는 자꾸 바다에 끌리는 걸까.
하늘에도
먼 하늘 수없는 별 그 어디에
나와 꼭 닮은 별나라사람 하나 살고 있어
지구 위의 또 하나 그의 모습에
자꾸 마음 쏠리고 있어
나는 자꾸 하늘에 끌리는 걸까.
바다의 나
별나라의 나
남천동 비치아파트 206동 211호의 나
제각각이 아니고 한 몸인 듯
한 몸인 듯.

어떻든 처음 것보다는 좀 부드러워지고 이미지도 선명하게 된 것같다. (윤종대)



▶ 93년 『현대시』 등단. 94년 대산 창작기금 수혜. 시집 『소금은 바다로 가고 싶다』 『내 몸은 아직도 붉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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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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