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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상중계] “시는 이성의 가장 간절한 결정체” - 장석남

문근영 2014. 4. 17. 20:38

 

[지상중계] “시는 이성의 가장 간절한 결정체”
[49호] 2011년 03월 10일 (목) 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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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가장 미당상에 부합하는 시인이 상을 받았다는 찬사와 함께 한국 서정시의 현재를 상징하는 ‘바로미터’로 꼽히는 장석남 시인. 그가 신묘년 새해, 1이라는 숫자가 다섯 번 겹치는 날, ‘유심 문학의 현장’의 첫 손님으로 찾아왔다. 격조 있는 서정시의 전형을 제시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장석남을 사람들은 왜 가장 시인다운 시인으로 부를까?

■ 일시 :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 장소 :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

  ■ 장석남
   -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서쪽에 뺨을 빛내다》 등과 산문집 《물의 정거장》 《물긷는 소리》 등이 있다.
   -  김수영문학상(1992년), 현대문학상(1999년), 미당문학상(2010년) 수상.
   -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겨울 풍경 1

   
저녁 여섯시. 어둡고, 어제 내린 눈이 길 곳곳에 그대로 쌓여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 초행이어서, 길을 세 번 묻고서야 어렵사리 ‘문학의 현장’을 찾았다. 강연 장소에 들어서 보니 50여 명 정도가 편하게 앉아서 초청 문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크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예쁜 공간이다. 일곱 시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십여 명의 부지런한 청자(聽者)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유심 편집실에서 홍성란 시조시인, 시인 신달자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녹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자잘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낸다.

 

출입문을 열어 놓은 편집실 밖이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사이 사무실로 지방에서 올라오는데 차가 많이 막힌다는 초청 문인 장석남 시인의 전화가 왔다. 가까이 왔는데 길을 못찾나 봅니다. 마중을 나가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나가지요. 장석남 시인과 아는 사이인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외투를 집어든다.

 

 

 

겨울 풍경 2

시간이 되었다.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해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잠깐 앉았던 장석남 시인이 진행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문학의 현장’에 들어선다. 자리가 꽉 찼다. 이런 날씨, 따스한 방에서 사과 깎아 놓고 티브이나 보면서 시간 때우려 하기가 십상일 텐데, 시인의 시 이야기를 들으려고 먼 길을 지나와 한데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전면 의자에 나와 앉은 장석남 시인을 소개한다. 박수 끝에서, 시인의 시를 두 사람이 한 편씩 낭송한다.

나의 첫 울음터는 어머니의 품이었겠지
그리고 그 울음은 그저 목화꽃 같았을 거야
품속이었을 테니까

나는 내가 울던 장소를 떠올려보네
열아홉 울음터는 어느 축대 밑이었지
그 울음은 축대처럼 가파른 스무 살 때문이었지

해변의 어느 바위가 울기에 좋았지
한도 없이 밀고 오는 파도소리 때문은 아니었지
사랑이 그렇게 어찌할 수 없이 밀려온 때문만도 아니었지
늘 내 울음은 사사로운 것이었고
한 번도 큰 울음을 품어본 적 없지

연암 선생 울음터를 가보고 싶네
나의 보잘것없는 울음터를 지나
광활한 그 울음의 넓이를 보고 싶네

하는 수 없이 지금 내 울음은
맨드라미 피어난 여름 뜰 앞에 두었네
뜰 모퉁이 봉숭아 그늘에 두었네
한 송이씩 한 송이씩 가꾸네

허나 어쩌나, 늙은 어머니는 그 앞에 더 오래 앉아 계시네

 ―장석남 〈나의 울음터〉 전문(낭송, 김윤 시인)


함박눈 휘날리는데 나는
널따랗게 펼쳐진 대로변을
큰 황소나 너댓 마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워 끌고서는
느릿느릿 어떤 굶는 여자(女子)나 많은
마을을 지나가고 싶다

그대로 움직이는 커다란 절간인 거야
그 대가람(大伽藍) 배치 좀 봐
그렇지? 그렇지?
오, 바람 속 꽃송이야
전각마다 촛불 발갛게 타는
본 말사 천 간
풍경소리 찬란하다

퇴계로 지나 어느덧 테헤란로 지나간다
출장 안마 가던 아가씨 눈물 그렁그렁 바라보네

 ―장석남 〈대설(大雪)〉 전문(낭독, 오승근 시인)

 

박수. 그리고 이어지는 장석남 시인의 이야기.

 

 

겨울 풍경 3

 

언젠가부터 인생이 참 짧다는 걸 느낍니다. 시는 저보다 여러분이 더 많이 알고 계시는 거고요, 사전적으로 알고 있는 시는 간단하지만, 불러주신 자리니까 제가 나름으로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여기로 오는데 눈이 와서 늦어지는 겁니다. 제시간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 속에서 생각하기에, 정시에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나, 여러분이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어느 것이 더 유익한 걸까…… 저의 얘기보다 기다리시며 시를 생각하시는 게 더 유익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들은 잊어버리세요. 시는 정답이 없다는 것…… 시라는 것이 무얼까. 제가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질문 아닌 풍경,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도 질문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각오와 색채로 질문하는 것인지, 그런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풍경들이 있을 것이고, 저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또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일이 되겠습니다.


어제인가 라디오를 들었는데…… 미얀마, 전에는 버마라고 했지요. 미얀마에는 인사말이 다양하지 않아서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하는데, 인사말이 없어서 그냥 웃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다양한 인사의 형식보다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것이 훨씬 더 진보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섣불리 얘기하면 말이 부족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시가 그런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시는 말을 벗어날 수 없으나 말이 아닌 것, 알고 보면 너무 쉬운 것인데……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하나 외국 그림책인데, 제목이 《프레드릭》이라고 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솝의 〈개미와 베짱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쥐들의 이야기인데, 프레드릭은 돌담 옆에 있는 헛간에 사는 쥐입니다. 이 프레드릭이라고 하는 쥐는, 다른 쥐들과는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늦가을이 되어 다른 쥐들은 부지런히 양식을 모으는데, 프레드릭은 양식을 모으지 않고, 태양의 온기와 여름의 찬란한 색깔, 계절에 어울리는 낱말들을 모으느라 바빴습니다. 겨울이 되어 일했던 쥐들이 먹을 것이 떨어지자, 비참해지는데 프레드릭이 나서서 친구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모았던 것을 나누어 줍니다. 쥐들은 따스한 햇볕과 색깔과 아름다운 말들에 배고픔과 추위를 잊고 행복해합니다. 먹이에 매달렸던 쥐들이 모으지 못했던 것들을 프레드릭이 이야기해 주니까, 그랬습니다. 프레드릭에게 고마워하며 쥐들이 “너는 시인 같아” 하자, 프레드릭은 “나도 알아”라고 대답합니다.

 

베짱이는 노래해야 하고, 같은 쥐들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는 여러 가지…… 먹고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색을 모으고 소리를 모으고 조화로움을 모으고 햇빛을 모으는 일은 시인이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게 먹을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상상을 또 해 본 때가 있습니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어느 단계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이 깃들었을 것이고, 마음이 처음 깃들 때 어떤 모습으로 깃들었을까를 짐작하는 방법은 시밖에 없지 않을까 했습니다. 과학으로 이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겸손하게 얘기하자면 시인으로서 우리가 질문하는 시의 방식에서는 이게 바닷가의 모래알 같지 않을까 합니다. 최초의 마음이 깃들었을 때 그것은 시였을 것인데…… 그게 우리 언어공동체가 쓰는 언어로 쓴 최초의 시의 양태로 흘러나와 한 우물을 채우고 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마음은 과학이라든가 하는 다른 형태로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시를 생각한다면 저 태초의 무엇을 불러온다는 신비로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들은 대충 이러한 개괄적인 시의 이야기인데…… 그러면 너는 어떻게 시를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작년에 낸 시집 맨 앞에 〈동지〉라는 시를 넣었는데, 동지는 말하자면 겨울의 클라이맥스인데…… 물론 나무와 같은 생명들은 동지를 기준으로 물을 머금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봄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동지를 맞기 위해 산은 물을 다 버리고, 나무도 첫서리 내릴 때 나뭇잎을 다 떨어냅니다. 때를 놓쳐 그 후에도 잎을 달고 있는 나무는 한국으로 이주해 와 겨울을 맞는 열대식물들이 냉해를 입는 것과 같습니다. 동지를 지나면서 문득, 시라는 게 어느 골짜기에 한동안 얼음으로 얼어 있는 그 상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 끝에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간다

언 내(川) 건너며 듣는
얼음 부서지는 소리들
새 시(詩) 같은,

어깨에 한 짐 가져봄직하여
다 잊고 골짜기에서 한철
얼어서 남직도 하여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오는 이 또 있을까?
꽝꽝 언 시 한짐 지고
기다리는 마음
생각느니,


―장석남 〈동지〉 전문

 

이렇게 시가 되어 있는데 …… 갑자기 시가, 혹은 저 자신이 그 동지 골짜기가 되어서 얼음을 지고 서 있는 것,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한겨울을 나는 것, 그게 생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간절한 상태에서 물은 얼음이 되고, 말하자면 시는 각각의 이성의 가지고 있는 가장 간절한 결정체일 것이다, 그것이 동지의 상태로 얼어 있지만 어느 순간 독자에게로 가서 풀렸을 때, 비유하자면 시는 언어라는 얼음으로 얼어 있지만 그것이 풀려서 좋은 시는 아무리 독자가 퍼가도 마르지 않고 버티는 것일 테지요. 독자를 만나서 흘러가는 그 물소리, 그 반짝임이 시일 것인데…… 그것은 언어는 아닐 겁니다. 예를 들면 시는 히말라야의 눈이고, 동지의 골짜기와 같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노자식으로 얘기하면 ‘현빈’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시는 시냇물의 어떤 곳에 앉아 있든 간에, 그 물소리로써 목을 축이고 마음의 간절함을 해소하며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샘물에서 솟아나는 물이 물의 최초가 아닌 것처럼, 그런 것을 가장 잘 질문할 수 있는 어떤 근원적인 것이 시일 것입니다. 휴대전화와 우주선도 시심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거창하게 제 시까지 인용해 가면서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시이고, 여러 선배님들의 시를 읽고 모아서 꿀벌이 꿀을 만들듯이 한 편의 시를 씁니다. 꿀벌은 꽃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시인들의 시, 그러니까 꿀을 모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고, 그것을 먹는 이들 또한 꿀을 먹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리로 오는 길에 폭설이 내렸는데, 이 폭설 속에 소 장수가 되어서 소에 큰 방울을 달고 소를 몰고 걸어가면 환상적일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왜, 소 장수는 돈이 있고 소도 있잖아요. 과부 많은 마을을 지나가면 좋지 않을까…… 그 풍경 자체가 절간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국유사》를 보았는데, 기억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경주에는 절이 기러기 떼처럼 많다는 표현이 절묘합니다. 소에 방울은 왜 달까요? 잃어버리면 찾으려고 다는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눈 오는 날 그런 상상을 하면서 글도 쓰고, 방법적으로는 말인데 말이 아니고, 말을 떠나면 무엇 하나도 존재할 수 없지만, 이것을 매달려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비워지는 순간 또 되는 그게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많이 준비했는데, 오는 길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겨울 풍경 4

시에 대한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간단한 질문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토론을 유도한다.

―장석남 선생님의 시 중에 〈속삭임〉 있지요? 시를 읽고 매우 좋았습니다. 언제 뵙나 했었는데, 오늘 뵙네요. 선생님은 시를 쓰는 시인이자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도 하고 계신데요. 저는 문창과에서 시인들과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칭찬을 잘 못하는 편인데…… 학생들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 (웃음 띤 얼굴로) 재량껏 못하는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강의 계획서를 미리 제출해야 하고 수업도 계획서 그대로 해야 하더라고요. 저는 그날그날,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강의실 밖으로 나가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더니 제일 좋아합니다. 이런저런 문학 관련 얘기하면서 자유롭게 하고 그랬더니 나중에 수업 안 했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모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처음에는 조금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니 요령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다르고, 칭찬은 좋지만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뭣부터 얘기해야 하는지…… 지나가겠습니다.

이어지는 질문.
    
―이십여 년 전부터 장석남 시인을 좋아해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그런데 시를 잘 쓰시는 분들이 말씀은 잘 못해요. 먼젓번 정현종 시인도 말씀 잘 못하시지요. 고은 선생님은 말씀 잘하시는데요. 시도 좋고, 말씀도 잘하시지요. 각설하고, 장석남 시인의 데뷔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그때 저는 이렇게 젊은 친구가 무슨 시를 그렇게 잘 쓸까 했었지요. 장석남 시인은 5, 6년 전부터 언어로 미당을 넘어설까 말까 하는 모종의 모색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 물 흐르듯 하는 시가 나오는데, 물어볼게요. 미당의 시를 베끼다 보면 허점이 나름대로 보일 텐데, 시인이 아무리 좋아하는 시인이라도 방법론적으로 넘어서려는 모색을 어떻게 하시는지?


▼ (대답하기 곤란한 듯 잠시 뜸을 들인다.) 새로운 시에 대해서, 어떤 게 새로운 시인가? 아방가르드? 전위? 아니면 그 어떤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해서 새로운 것을 쓰면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때 글씨 공부를 아주 게으르게 했지요. 어떤 분에게 글씨를 공부한다고 했더니 그분이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 하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게 그게 모더니즘이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 말을 듣고 오랜 강박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소재를 다루면 새로운 시인가요? 미래를 얘기하는데 가장 큰 미래 산업은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가장 큰 미래 산업은 가장 오래된 산업이 아닐까요? 시도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것인데 개별자들은 또 하는 것이지요. 내 것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지요. 어떤 책을 보니까 개성을 착각하는데…… 모든 것을 똑같이 하는데, 조금 더 나아가는 것, 어떤 연주가가 연주할 때 신명이 조금 실리는 것, 그게 첨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누가 누구를 넘는다기보다는 그분들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나름대로 피워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겨울 풍경 5

질의 응답이 마무리되자 사회자가 다시 나선다. 이상으로 장석남 시인 초청 2011년 1월 ‘문학의 현장’ 행사를 마치겠습니다. 광고 말씀 한 마디하겠습니다. 다음번 문학의 현장은 3월 8일에 열립니다. 우리가 만나뵙게 될 분은 황동규 시인입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앉아 계신 자리에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으니 담소 나누시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최 준(시인)

- 유심(http://www.yousim.co.kr)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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