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미 개가 첫 새끼를 낳고 있었다. 깊은 밤에 첫눈 소복소복 어둠 속에서 바다의 양수가 터지고 어미 개가 혼자 탯줄을 물어 뜯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꾸역꾸역 탯줄을 삼키며 구멍이란 구멍마다 어미 개가 밤의 밑구멍까지 붉은 혓바닥으로 새끼를 핥고 또 핥고 바다의 밑구멍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푸성귀 같은 질긴 파도 소리가 새벽 문틈 사이로 밤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청음淸音
1974년 <심상>제 1회 신인상을 수상하여 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시인의 추천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한 김성춘 시인의 시집 <물소리 천사>가 출간 되었다. 시력 36년을 넘어서는 김시인의 시에선 군내가 나지 않는다. 지나친 시의 양념을 넣은 결과 한철만 지나면 짓물러 버리거나 시지도 떫지도 않다. 많은 시인들이 등단초기의 시심과 열정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생활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인간에 지치고, 자신에게 지치고, 삶에 지쳐서 마음에 굳은살이 박히거나 안일과 타성에 빠져서는 등단초기의 시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넘어서지 못하고는 자신의 시를 베끼고 베껴 군내가 술술 나기도 하고, 떫고 비린 시를 쓰면서도 자만과 편견에 빠진 채 나이만 먹어가는 시인들도 없지 않는 현실 속에서, 김 시인의 시는 햇빛에 잘 영근 천일염으로만 버무린 채 “웃기 돌” 아래서 발효된 소금 김치처럼 맛깔스러운 시의 맛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다. 구정을 지날 무렵쯤 되면 신기하게도 입맛이 변한다. 입춘이 지나면 아무리 잘 보관한 김치라도 양념이 가득 들어 있는 김치에서 군내가 나며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럴 때 어머니께서는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김칫독 중 겨우내 꼭꼭 입 다물고 있던 저 안쪽에 새로운 김장 김칫독을 여신다. 항아리 뚜껑을 열고 김치를 내리 누르고 있던 “웃기 돌”을 들어내고 여러 겹 덥어 두었던 배추 떡잎들을 걷어낸 다음 현란한 양념은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배추 본래의 모습으로 잘 익은 소금 김치를 헐어내신다. 현명하셨던 우리 조상님들은 알고 있었다. 입맛을 현혹 시키는 현란한 양념은 쉽게 짓무른 다는 것을! 시도 마찬가지다. 한겨울 동안만 먹을 김장 속에는 영양의 균형을 위해 갖은 양념들과 젓갈들과 어육들도 배추 켜켜이 넣었으나 이런 김장은 구정을 전후로 짓물러지고 군덕 내가 나 더 이상 입맛을 댕기지 못했다. 그런데 김장 할 때 보면 양념을 하지 않은 절인 배추에 품질 좋은 천일염으로만 버무려 김장독에 켜켜이 넣고 배추 떡잎으로 여러 겹 덥는다. 그리고는 묵직하면서도 납작하고 둥근 “웃기 돌”로 꼭 눌러 놓은 다음 뚜껑을 닫고 한철 먹을 김장독 그 안쪽에 묻어두면 잘 발효되어 몇 년 후에 꺼내 먹어도 변질되지 않은 맛깔스런 소금 김치가 태어나는 것이다. 입춘도 지나고 양념 김치 맛에 질릴 때 쯤, 어머니께서는 천일염으로만 간이 된 담백한 소금 김치를 꺼내어 배추의 머리만 잘라내고는 두 손으로 주욱 찢어서 따끈따끈한 밥 위에 얹어 주시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손맛이 가득한 소금 김치는 시원하면서도 아작거리고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콤하며 입안에 침이 가득 돌아 밥도둑처럼 꿀꺽꿀꺽 밥을 넘기었었다. 병이 들어 아프고 난 후에 입맛을 잃어도 겨우내 김칫독 속에서 소금으로만 발효된 이 소금 김치로 입맛을 되 찿았으며, 이 김치는 한여름에도 별미일 뿐만 아니라 몇 년을 두고 먹어도 무르지 않고 항상 같은 맛을 지니고 있었다. 김 시인의 시의 맛이 그러하다. “어미 개가 첫 새끼를 낳고 있었다. 깊은 밤에” 김 시인은 잠 못 이루며 원고지를 응시하던 중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첫눈 소복소복/어둠 속에서/ 바다의 양수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내려서서 첫눈을 맞다가 “어미 개가 혼자 탯줄을 물어 뜯고/(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꾸역꾸역 탯줄을 삼키”는 현장을 목도 하였을 것이다. 인간처럼 출산에 따르는 고통을 소리 내어 호소하지도 않는 어미 개, 의사도 없고 산파도 없고, 간호사도 없고, 아무런 의료 시설도 없는 겨울밤 “첫눈은 소복소복 내려 쌓이고” 있는 데, 하나의 생명을 지상으로 불러내는 어미 개의 눈을 본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조용하고도 엄숙한 출산의 의식 속에서 정신을 추스려 가며 스스로 새끼 개와 자신의 몸으로 이어져 있는 “탯줄을 혼자 물어 뜯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오래된 생존 전략이 염색체 속에 각인 되어있기에 적으로부터 어린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 자기방어로 출산의 힘든 고통을 끌어안고 “구역꾸역 탯줄을 삼키”고 있는 저 어미 개의 곡진한 모습 앞에서 시인은 섬세한 시의 촉수로 듣고 있는 것이다. “붉은 혓바닥으로 새끼를/핥고 또 핥고/바다의 밑구멍까지 내려가고 있었다/푸성귀 같은 질긴 파도의 소리”처럼 새끼를 낳은 고통도 마다 않고 충혈 된 눈,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로 헐떡이며 새끼의 몸에 묻어 있는 끈적하고도 뜨근한 물질들을 “핥고 또 핥는”그 모성의 소리에 가슴을 열고 있는 김 시인은 털이 보송해진 새끼가 여린 울음소리를 내며 어미 품을 파고드는 소리가 “새벽 문틈사이로” 들려 올 때, 그 소리가 지상에서 가장 푸르고 깨끗하고 순수한 소리인 청음淸音이 되어 “밤의 구멍이란 구멍 마다” 가득 채워 주고 있음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김 시인의 시적 청력의 가청 영역이 이리도 섬세하고 깊고도 곡진한지 부럽기만 하다. 시력 36년을 넘어서는 김 시인의 화두는 “웃기 돌”이다. “가라앉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의 길 가라 앉혀라(욱기 돌 중 일부)”라고 자신의 시의 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가무잡잡한 돌의 입술/고행승 같은 돌, 말한다. 끝이 보일 때까지/당신의 첫 걸음 애터지게 껴안아라(웃기 돌 중 일부)” 시에 대한 젊은 날의 초발심을 잊지 않으리라는 결심과 좋은 시를 퍼 올리는 길이 “고행승”의 길이어도 “끝이 보일 때 까지” 최선을 다하리라고 전언하는 김 시인! 그가 지향하고 있는 시의 길을 이처럼 극명하게 천명하고 있는 다짐을 만나면서 김 시인의 시에 대한 순정과 열정과 진정성 앞에서 그저 마음이 숙연해 질뿐이다.
김성춘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출생 하였다. 부산사범대학교와 부산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43년간 교직에 임하였으며 울산 무릉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 후 울산대 사회교육원 시창작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동리목월 문학관”교육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1974년 <심상> 제 1회 신인상에 당선되어 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선생의 추천으로 시작활동을 시작 하였다. 제2회 월간문학 동리상, 경상남도 문화상, 제1회 울산 문학상을 수상 하였다. 시집으로는 <방어진 시편>, <섬, 비망록>,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 <수평선에 전화 걸다>, <비발디풍으로 오는 달>등 10여권의 시집을 출간 하였다. [서정시학] 값,9,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 '문화저널21'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