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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32) - 존재의 구각과 탈각의 지점

문근영 2014. 4. 17. 19:13

존재의 구각과 탈각의 지점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32)
 
홍일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수명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 기존의 시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외계의 방언처럼 보이는 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령부득의 알아들을 수 없는 시로 규정하고 아예 읽기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그런 시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시인들 중에는 전대의 언어와 미학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시를 쓰고자 분투하는 시인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이수명 시인은 비교적 명징한 이미지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인이지요.

 ‘나’는 ‘나’인지 가끔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사뭇 쓸쓸하거나 어둡습니다. 화자는 지금 창 앞에 서서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그는 곧 ‘나’이겠지요. 그런데 화자는 여기서 하나의 형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생각을 바라봅니다. 현재 눈앞에 있는 존재는 누군가의 생각에 붙들려 있는 타자화된 객체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아가 아니고 관습과 제도와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그 범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라고 화자는 고백합니다. 창문과 같은 하나의 틀에 포박되고 정형화된 주체는 규격화된 사고의 액자를 부수지 못하고 그 안에 하나의 그림처럼 갇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각성은 ‘나는 그를 멈춘다.’는 행위로 전화됩니다. 일단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존재의 구각을 깨고 탈각의 지점에 발을 내딛습니다. 그 순간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날아가고, 바로 코앞에서 명료하게 드러난 부정적 실체를 대면합니다. 깜짝 놀라면서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자기 부정의 몸짓이 보입니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는 겁니다. 찢어짐은 곧 새로운 생성의 징후요 모태입니다. 길들여지고 익숙한 획일적 사고의 틀을 부수는 자기 갱신의 몸부림인 것이지요. 신생과 창조적 변화는 이처럼 고통스런 파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가장 어둡고 외진 곳에서 별이 반짝입니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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