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 없는 삶의 보법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46) | ||
| 무심풍경 복효근 겨울 감나무 가지가지에 참새가 떼로 몰려와 한 마리 한 마리가 잎이 되었네요 참, 새, 잎이네요 잎도 없이 서 있는 감나무가 안쓰러워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앉으며 작은 발의 온기를 건네주기도 하면서 어느 먼 데 소식을 들려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나무야 참새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것 같아도 안 자고 다 듣고 있다는 듯 가끔씩 잔가지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나무가 그러든지 말든지 참새는 참 열심히도 떠들어 댑니다 모른 체 하고 그 아래 고양이도 그냥 지나갑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두 다 무심한 한 통속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제 길 갑니다 연말인데 벌써 몇 개월 전화 한 통 없는 친구에게 한 바탕 욕이나 해줄까 했다가 잊어버리고 저것들의 수작을 지켜보며 이 한나절에 낙관 꾹 눌러 표구나 해뒀으면 싶었습니다 # 복효근 시인은 뭇 생명들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는 여러 편의 시에서 생명의 가치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 시도 예외가 아니지요. 겨울 감나무는 헐벗은 알몸으로 혹한을 견딥니다. 그것이 안쓰러웠는지 참새 떼들이 몰려와 잎이 됩니다. 참새가 잎이 되는 찰나 시인은 “참, 새, 잎”이라고 말합니다. 쉼표 하나가 한 순간 참새를 잎으로 만들어버렸네요. 아름다운 상상, 그 푸른 이파리들이 겨울 감나무를 싱그럽게 감싸고 있습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우리네 비루한 삶이 잠시 환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벌거벗은 감나무가 안쓰러웠던 참새들은 부지런히 가지를 옮겨 다니며 “작은 발의 온기”를 전하면서 먼 데 소식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감나무는 잔가지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합니다. 감나무와 참새의 경계 없는 삶의 울타리가 정겹습니다. 참새는 열심히 떠들고, 나무 아래로 고양이는 무심히 지나가고 “모두 다 무심한 한 통속”으로 아름답습니다. 유교는 천지를 인간의 모범으로 이해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지요. 공존의 자연관은 조화로운 삶을 지향합니다. 노자 역시 상생을 말합니다. 이보다 쉬운 말이 없고, 이보다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혹자는 공존과 상생은 패자의 자기 방어 논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크게 생의 무대를 조망한다면 나눔과 분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눈앞의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보면서 전화 한 통 없는 친구를 떠올립니다. “한 바탕 욕이나 해줄까 했다가 잊어버리고” 참새와 감나무의 아름다운 수작에 취합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황홀한 경지에 넋을 놓고 있던 시인은 “낙관 꾹 눌러 / 표구나 해뒀으면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살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지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상처로 들끓는 가슴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있지요. 그때 이 시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가만히 시를 읊조려 보십시오. 머잖아 쓰린 가슴에 새잎이 돋고, 목청 고운 새들이 날아와 한 줌 온기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한 통속”이니까요.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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