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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강인한 내 어린 날의 몽당 크레용을 주세요. 까실까실한 흰 빛 도화지에 나를 그리고 싶어요 밤 검은 산에서 혼자 돌아오던 아홉 살의 보랏빛 산길을 비 갠 날 거미줄에 걸리어 잉잉 거리던 방울 무지개와 연잎에 돌돌거리는 누나 고운 눈빛이랑 등나무 아래로 등나무 아래로 어룽지던 연두빛 일요일의 심심한 하모니카 소리도 그리고 싶어요 내 어린 날의 색종이를 주세요 불쌍한 네로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의 그 붉은 풍차를 오려 붙이겠어요 바람 부는 날 팔랑거리는 옥색 대님도 내 손바닥을 간질이던 눈 까만 강아지 이름도 인젠 다아 기억 할 수가 있어요. 소아과 병원에 끌려 들어가면 싸아하니 밀려오는 하이얀 병원 냄새 뺨 비빌 때 쿡쿡 찌르던 아버지의 턱수염도 안 잊혀요, 영영 안 잊혀요 내 어린 날의 몽당연필을 주세요. 나는 적고 싶어요. 양지바른 골목길을 졸랑졸랑 달려오는 기쁜 발소리 이이는 사, 이삼은 육....이이는 사 이삼은 육 등에 멘 책가방 속에서 잠자리표 연필이 꽃구슬과 만나는 소리 곱셈과 나눗셈이 밤 늦도록 소곤거리는 소리를 내 어린 날의 좋은 기억을 주세요 그 어려운 병이래도 좋아요, 아주 다 주세요. # 1996년에 상영 된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La Citĕ des enfants perdus :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마르크카로 감독)에는 외로운 어떤 과학자가 만들어 낸 기계 인간 크랭크가 태어날 때부터 꿈을 갖지 못해 순식간에 늙어 버리게 되지요. 그러자 젊음을 되찿으려 아이들을 유괴해서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답니다. 꿈을 꿀 수없는 기계인간들의 세상은 암울한 배경 속에서 바람 속에 쓰기들만 굴러다니며, 마치 샴쌍둥이처럼 복제된 행동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인간인 작살잡이 원과 소녀 미에뜨의 대화 속에 희망의 전언을 찿아 볼 수 있었답니다. “원은 차력사 하기 전에 뭘 했어?”“원은 어부 였어 고래를 잡는” “고래? 근데 왜 그만 두었어?” “원은 언제나 고래를 잡았어. 날이면 날마다 작살을 던져서 고래를 잡았지” “응”“그런데 어느 날 원은 고래의 노랫소리를 들었어” “노랫소리?” “그래, 노랫소리, 그날부터 원이 던지는 작살은 언제나 빗나갔지” “비 갠 날 거미줄에 걸리어 잉잉 거리던/방울 무지개와/연잎에 돌돌거리는 누나 고운 눈빛이랑/등나무 아래로 등나무 아래로 어룽지던 연두빛“을 초롱초롱한 두 눈 속에 담아내던 어린 날, “등에 멘 책가방 속에서/잠자리표 연필이 꽃구슬과 만나는 소리/곱셈과 나눗셈이 밤 늦도록 소곤거리는 소리를” 그 흠 없는 순수의 세계를 기억의 수첩에 그려두고 어른이 되어서도 꿈속에서 불러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고 고단해도 “꿈을 갖지 못한 기계 인간 크랭크처럼 순식간에 늙어 버리게“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가끔은 유년의 “몽당 크레용”을 꺼내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그려보면 어떨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신구대학교수 dss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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