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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상중계] 유심시조낭독회 / 오종문 

문근영 2014. 3. 28. 10:44

 

[지상중계] 유심시조낭독회 / 오종문
[50호] 2011년 05월 10일 (화) 오종문 시인

때는 바야흐로 꽃피는 호시절 4월. 연분홍 이야기가 속살거리는 그 봄날, 생강꽃 참꽃 나들이 오시는 길목,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유심시조낭독회 그 두 번째 판이 벌어졌다. 이번 낭독회는 시조시단의 고수를 모시지 않고 열 명의 시인들이 자작 시조를 낭송하는 방식으로 열렸다. 플루트와 재즈가 봄 마중 하는 저녁 일곱 시, 정갈한 소찬을 차려 놓고 여러 시인과 내빈들을 모신 가운데 열린 봄맞이 유심시조낭독회를 지상중계한다.

■ 2011년 4월 8일 오후 7시
■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

 

 

 여보시오 독자님들, 이내 말 한번 들어보소. 시조(時調)가 무엇인고 허니 고려 말부터 현재까지 창작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라.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문학이니 어찌 사랑하고 창작하지 아니하겠는가.


그 형식을 알아볼 제 3장(章) 6구(句) 45자(字) 내외로 이뤄진 정형시라 작품 한 수는 3장으로 이뤄지는디, 1장은 4음보로 되어 있으며, 4음보는 보통 2음보씩 한 단위를 형성하는데 이를 구(句)라고 하는도다. 이 형식이 시조의 기본형이 되고, 그 걸음걸이를 알아보면 이러하겠다.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이 기본이 이상적인 기준형으로 각 음보의 글자 수는 신축성이 있음이니, 초장은 시를 처음 이끌어 가고, 중장은 초장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강조하면서 재미(비약·전환·위기 등)를 맛보며 숨 가쁘게 달려가며, 종장의 첫 음보는 3음절로 고정되는데 여기에서는 격동과 수습이 함께 이루어지는도다. 이때의 종장은 숨을 고르면서 한 수를 마무리하는 장으로, 작자 역량과 함께 작품 성패를 가르는 대목이라.


허허 이내 거동 보소.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시조 따라 봄밤으로 들어갈 제 제 본분 잊고 말았구나. 아뿔싸! 시조낭송회 시간이 눈앞이라. 눈을 들어 좌우를 살펴보니 많은 내빈들의 한담이 분분헐 제, 재즈가 흘러나오니 바로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의 〈Boom Boom〉이라.


흑인의 민속음악으로부터 현대음악이 된 재즈, 약동적이고 독특한 리듬 감각에 좌중에 앉은 이들이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더라. 궁둥이도 흔들 데로만 흔들어 보세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좋을씨고.


그때여 사회를 맡은 정용국 시인, 들어갈 때 엿보다가 음악이 끝나니 옳제, 인자되었다 하고 마이크 잡고 들오난디, “지금부터 제2회 유심시조낭송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그 서막을 열었겠다.


초대의 말로 올린 “복사꽃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앞에 숨어 있는 내용, 에미가 딸년에게 주는 시조로 많은 사람에게 눈물을 글썽이게 한 이지엽 시인의 〈해남에서 온 편지〉 일부를 낭송하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간 끈하다/ 복사꽃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 대목에서 듣는 이들의 눈시울에 눈물을 글썽이게 하니, 좌중의 박수가 담을 넘어 봄밤을 적셨것다. 그도 그럴 것이,


봄빛은 뜰에 기득하야 창호문에 비쳐들 제, 잡새들은 푸른 하늘 높이 떠서 울음을 울고 가니, 종신서원 간 불쌍한 딸년에게 그 어미 편지 일장 전(傳)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디, 한 자 쓰고 눈물짓고, 두 자 쓰고 한숨을 쉬니, 글자가 모두 수묵(水墨)이 되었구나. 편지를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 보니 복사꽃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해놓고 좌중의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하는 말이 병 주고 약 주더라.


이때에 사회자 흥에 겨워 사설을 더하는디, “슬픔은 진실과 순수에 가장 가깝다”면서 시조의 향기로 이 안을 가득 채우고 가슴 뿌듯하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니 이는 지켜볼 일이라.

때가 어느 땐고 춘삼월 호시절 봄밤이라. 조명은 점점 분위기를 더해가고, 기대 반 우려 반의 조바심이 온몸의 식은땀을 휘뿌릴 제 무슨 말을 하려는고, 두 발을 여덟 팔 자 뽄으로 하고 두 귀를 두 이 자로 쫑긋 세워 듣는디, 두 번째 유심시조낭송회를 찾아준 내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오프닝을 열 플루티스트 김남미 님을 소개하니 좌중의 박수가 터져나오는고나.


〈수궁가〉 한 대목을 빌어 소개하면, 왕자진(王子晋)의 봉피리 곽처사(郭處士) 죽장구 쩌지렁쿵 정저쿵 석연자(石連子) 거문고 설그덩 둥덩덩 장자방의 옥퉁수 띳띠루 띠루 띠루 해강의 해금이며 완적(玩績)의 휘파람 격타고 취용적(吹龍笛) 능파사(凌波詞) 보허사(步虛詞) 우의곡(羽依曲) 채련곡(採蓮曲) 고 낭자헌 풍악소리도 제쳐두고 플루트라. 이 악기가 무엇인고 하니, 목관악기이면서도 외모는 앙큼스럽게도 금속 옷을 입었더라. 피콜로처럼 악을 쓰지도 않고, 바순처럼 처지지도 않는 아주 편안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악기라, 플루티스트 신명내어 그 첫 연주곡을 뽑으니,


영화 〈타이타닉〉의 OST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내 마음은 계속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이라. 실화를 기반으로 한 로맨스 영화 〈타이타닉〉, 주인공 남녀의 신분 차이, 배의 침몰로 이어진 위기 상황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더 애절하게 해 준 영화, 그리고 또 하나 잭의 죽음,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은 곧 남겨진 여자의 평생 간직할 아픔으로 남겨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관객들의 가슴을 더욱 찡하게 하였던 영화. 팝의 디바 셀린 디온(Celine Dion)의 앨범 〈Let's Talk About Love〉에 삽입된 곡으로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딱 한 번 나오는 이 곡의 가사 뒷부분은 이러하겠다.

내 마음은 한결같이 그대를 향할 겁니다
그대가 여기 있으니 내가 두려워할 게 없어요
내 마음은 항상 그대를 향할 것임을 알아요
우리는 영원히 변함없이 있을 겁니다
그대는 내 가슴속에 살아 있고
내 마음은 변함없이 그대를 향할 겁니다

부드럽고 따듯한 음색을 가진 악기 플루트 연주가 끝나자 사회자 마음이 급해졌는데, 그 다음 첫 번째 낭송하는 이가 사회자라, 리차드 용재 오닐 〈눈물〉 중 12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재즈모음곡 2번, 러시아 분위기의 장중하면서도 색다른 왈츠, 매력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어 사회자 한마디를 더하는디 그 사설은 이렇더라.


“하, 어깨가 들썩들썩하신가요? 지금 세상도 봄이 오느라 생몸살을 앓고 있답니다. 그래서 배경음악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에서 봄에 어울리는 왈츠를 골랐습니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아니고 그 중간 오동통한 비올랍니다. 연주자가 한국 출신의 아주 매력적인 비올리스트인데 오늘 제 시의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한국에서 태어나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미국으로 입양된 소년, 미국의 어머니를 만나 리차드 오닐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줄리아드 음대에서 만난 한국인 스승에게서 용기와 재능을 가지라는 뜻의 ‘용재’를 받아 마침내 리차드 용재 오닐이라는 완성된 이름을 갖게 됩니다. 용재의 비올라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들려줍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와 희망의 메시지도 다 들어 있지요. 용재의 2집 앨범 이름이 제 시 제목입니다.”

길섶 으깨진 머위 대에
천둥 세 근 숨어 있고
겨울난 좀가래 뿌리에
번개 몇 장 박혀 있다

던지면
여섯 점을 꿈꾸는
맹랑한 주사위처럼.

리처드 용재 오닐
긴 이름 속에는
머위 대 좀가래 뿌리
통째로 들앉아 있다

눈물을
관(冠)처럼 쓰고
침향(沈香) 내를 풍기며.
―정용국 〈눈물(Lachrymae)〉 전문

아름다운 청년 용재 오닐, ‘감미로운 선율과 완벽한 기교의 균형 잡힌 연주, 강렬한 선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기품 있는 음색의 조화’라고 극찬받았던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슬픔이 비올라의 음색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도다. 바이올린만큼이나 화려한 비올라, 바이올린으로는 절대로 표현하지 못할 축축함, 첼로의 묵직한 선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비올라 음악을 듣는 날엔 포도주 한 잔이 생각나게 하는디,


사회자 왈, 올 1월은 거의 매일 영하 10도였고 폭설도 많았더라 하더라. 하여 눈 내린 숲은 더 고요했고, 눈을 소복이 얹고 생각에 잠긴 겨울나무가 경건해 보였으니, 사람도 허세를 버리면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시를 썼다는 김선화 시인이 우리를 이 봄밤 눈 덮인 겨울 숲으로 안내하는디, 키보디스트 랄프 바흐(Ralf Bach)의 〈Loving Cello〉가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도다.

함박눈 미사포를 쓴
나무에게 배웠네

하늘 향해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을
안으로 아픈 기억을
다스리고 있음을

사나운 비바람에 꺾이며 떨던 시간
인고를 새기던 기나긴 발자국이

옹이진
상처였음이
눈으로 만져지네

화장을 지우고 엉킨 마음 나도 비우니
하늘에 기대어 빚지며 살아온 나날
꽃망울 세우는 핏줄 아프도록 보이네
―김선화 〈숲에 들어〉 전문

하, 배경음악이 더욱 겸손해지고 자신을 비우니 우리 마음도 지극히 편안허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고, 단단히 아문 상처는 다른 상처를 치유해 주는도다. 하여 단단한 나무들은 상처를 입은 나무들이니, 상처를 입은 후에야 더 강인해지는 법.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 주고 사는 꼴이 너무도 안타깝도다. 칼에 베인 육체의 상처는 피가 멎고 시간이 흐르면 낫지만 마음에 남긴 상처는 아주 오래도록 남는 것이니라.


그때에, 어허 저 사회자 거동 좀 보소. 안경테를 밀어올리며 “〈연꽃 우체통〉이라는 작품으로 제 마음을 건들더니, 이번에는 빨간 칸나꽃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어줄 것”이라고 소개할 제, 배우식 시인 〈칸나꽃 남자〉를 들고 나오는디, 제때 나와야 할 음악이 캄캄 무소식이라. 아뿔싸! 톰 존스(Tom Johnes)의 〈pol01〉은 기다려도 아니 나오고, 당황한 장중의 사람들 숨죽이고 지켜보는디, 순간 하날이 답숙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당황스럽더라. 이때에 외모가 출중하시고 아주 점잖은 배 시인, 흥(興)을 돋고 목소리를 돋아 낭송허니,

1
느닷없이
초록의 앞가슴이 팽창한다.
우르르
마그마가 왈칵왈칵 솟구치자
한 사내
울부짖듯이 용암을 토해낸다.

2
바람이
엉겁결에 불꽃 위에 앉으려다
발바닥이
데인 듯 화들짝 뛰어오른다.
그래도
나, 저 불길에 확! 옮겨 붙고 싶다.

3
활화산,
저 사내 시마(詩魔) 걸린 그 마음에
투명한
날개 달자 화르르 날아오른다.
바닥에
몇 줄 남기고 간
붉은 문장,
꽃빛이다.
―배우식 〈칸나꽃 남자〉 전문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라. 〈타이스의 명상곡〉과 함께 칸나꽃 남자의 낭송을 마무리하니, 좌중의 박수갈채가 더욱 요란하도다. 만학도인 시인이 칸나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제, 뜨겁게 타오르는 문학적 열정의 불꽃으로 승화했으니, 그 불꽃 커지지 않고 시심이 더욱더 타오르기를 박수로서 답례하니, 그 누군들 저 불길에 확 뛰어들고 싶지 않겠는가.


이때에 바깥세상은 앞내 버들은 푸른 빛깔의 베를 두르고 두시내 버들은 유록색의 베를 둘러 한 가지는 찢어지고 또 한 가지는 늘어저 봄이 날아갈 듯 봄날 흥에 못이기여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흔들흔들 흔들 흔들 흔들 흔들 노닐 적에, 사회자 더욱 신이 나 목소리 높여 사설 이어가는디,
세 분의 시조 낭송을 들었으니, 이제 고조된 열기를 식히기 위해 다시 플루니스트 김남미 님을 모셔 연주를 청하겄다. ‘찬조출연’보다는 ‘어울림 공연’이 더 어울린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진중허게 한마디 뱉고 박수를 유도해 연주를 부탁하니, 〈기다리는 마음〉과 〈마블 홀스(Marble Halls)〉를 연달아 연주하니 좌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더니라.


〈기다리는 마음〉은 분신자살한 김민부가 작사를 쓰고, 장일남이 곡을 붙인 가곡이라.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리네”란 이 가사는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외로운 산모퉁이에 홀로 서 있는 망부석에 관한 슬픈 사연을 지니고 있음이라. 일본 왕이 귀화하기를 권할 제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신하는 되지 않게다” 허니, 이 아니 충신인가.


이러할 제, 두 번째 연주곡 알레드 존스(Aled Jones)의 피아노 4중주 〈마블 홀스〉, 결혼식 화촉을 밝힐 때 연주되는 곡이니, 오늘 플루트 연주로 감상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도다.
플루트의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청중 정신 차리고 열광의 박수 함성이 이어지고, 사회자 번거롭고 힘든 무대에 흔쾌하게 응해주신 김남미 님께 힘내시라고 뜨거운 박수 다시 부탁하니, 그 소리 봄밤을 다 울리고도 남으렷다.


이리 한참 노닐 적에 첫째 마당이 그 막을 내리고, 좌중의 관객들 마련한 음식과 술로 그 목을 축이더라.
이어 사회자 둘째 마당을 열고 그 대목을 넘어가는디 이러했다.


배도 출출할 시간인데 차려진 음식 맛있게 드시라 권하고 나서, 시장이 반찬이라 했으니 이제 시장기를 돋궈 볼까요? 경기도는 순대국밥, 부산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는 돼지국밥, 전라북도 전주는 콩나물국밥이라. 아니 따로국밥, 소머리국밥, 계란국밥 등등 지방마다 특색 있는 국밥이 있는디, 이번에는 이남순 시인의 국밥 이야기를 듣자 헌다. 시인 친구를 따라 천오백 원짜리 국밥집에 갔다가 국밥 한 그릇, 깍두기 한 사발, 왕소금 한 종지가 전부인 음식을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몇 날을 새워 뽑아낸 작품 〈소문난 국밥집〉…… 과연 민병도 시인이 눈물로 먹었다던 청도 장날 〈장국밥〉 그 맛을 이어갈 수 있을지 박수로 청했것다. 이어 잔잔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햇살이다, 어디라서 이토록 쟁쟁하랴
말뚝잠 지친 아침에 제집처럼 찾아드는
허기진 사내들이 있다 하얀 입김 쏟으며,

국밥집 앉고 보면 너나들이 곁이 된다.
가마솥을 달궈내는 불꽃처럼 타는 이야기
가뭇이 잊었던 꿈이 마음껏 뜨거워진다.

천오백 원 나물국을 화로같이 마주하여
바람에 묻어온 소식 추적추적 풀어놓고
익명의 동병상련도 한 잔술에 이웃 된다

버릴 수 없는 그 꿈을 서로에게 심어가며
시릴수록 정은 깊어 차운 손도 잡아주고
새아침 넘치는 정에 국솥 한껏 끓어오른다.
―이남순 〈소문난 국밥집〉 전문


사회자 왈, “큰 가마솥에 끓어 넘치는 국은 분명 한국인 힘의 원천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국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겁니다. 오죽하면 ‘너 국물도 없어!’라는 말을 할까요. 그 국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것’이라는 비장감이 스민 말이죠.” ‘너 국물도 없어’라는 사회자 말에 웃음이 진동허고, 사회자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또 한 시인 소개허니, 권갑하 시인이라.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중년의 신사가 애인에게 들려주는 속삭임 같은 〈물방울 속의 사랑〉, 그대의 마음에 마음이 가 닿은 길을 내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디, 이때에 크리스 스피어리스(Chris Spheeris)의 〈카리노(Carino)〉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것다.

갈 수 있겠니, 둥글게 지붕을 얹고
벽조차 문이 되고
문마저 하늘이 되는
빈속이,
헛것이 아닌,
사라져도 다시 뭉쳐질

얼마나 좋겠니, 물방울처럼 투명하게
우리 하나로 맺혀질 수 있다면
서로가 제 얼굴처럼 비춰질 수 있다면

만날 수 있겠니, 다시
설렘만으로
세상의 그 곳, 그 눈빛 맑은 곳으로
길 하나 낼 수 있겠니

마음에
마음이 가 닿는
―권갑하 〈물방울 속의 사랑〉 전문

뉴에이지 기타리스트인 뮤지션 크리스 스피어리스 앨범 〈Eros〉에 수록된 카리노는 바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렸다. 남국의 태양과 같은 열정과 따사로움, 고요한 명상적 울림과 무지갯빛 신비로움 등등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애수라. 그가 만들어내는 하나하나의 선율에는 알 수 없는 아련한 슬픔이 배어 있느니, 그 음악들이 우리 몸뚱아리에 부딪고 순간의 감성을 살며시 애무할 때의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도다.


이리 한참 사랑의 설렘에 빠져들 제, 그때여 사회자 또 한 시인 소개코자 마이크 앞으로 다가오난디,
평상심에서 일탈할 때마다 내 안에서조차 의견 충돌을 일으켜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을 때, 그럴 때마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언어의 지각변동을 꿈꿨다는 김선희 시인이 〈종이새〉를 낭송하기 위해 무대 앞으로 나아가니, 즐겁고 경쾌한 우리 귀와 마음에도 늘 가까이 와 닿는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의 〈A Morning In Cornwall〉이 배경음악으로 납시신다.



난지도 하늘공원 누가 연을 올리나
줄에서 벗어나려 우쭐우쭐 기우는 연
얼레에 묶인 줄 모르고
허둥대는 나처럼,

직유로 번져있는 하늘길을 밀고 간다
구름을 등에 업고 바람에 맞서가며
종이새 훨훨 날듯이
날, 당겼다 풀어주오.
―김선희, 〈종이새〉 전문

 


서정적인 분위기와 화려한 멜로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음악, 이 뮤지션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세대 간의 격차나 국적과 인종까지도 초월해 버린 음악인으로 최고의 명성을 쌓은 〈콘월에서의 아침〉이 끝나감에 사회자 하는 말,


난지도 하늘공원에서 한나절이나 연 날리는 모습을 보고 우쭐우쭐거리는 연들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겠지요. 연줄이 끊어지면 난감해지는 ‘연날리기’처럼 내 삶의 날실과 씨실이 얽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김선희 시인……, 그 연줄이 끊어지지 않고 연이 하늘 높이 잘 날아서 원하는 대로 맘껏 날기를 기원하겠다는 너스레와 함께 갈 길 바쁜 사회자 또 한 시인 소개헌다.


부모님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나갔다가 얻은 시라. 효도하면 부모님께서 시까지 주는 갑다. 효자 이승현 시인과 함께 봄이 준 밥상을 받아보자고, 이렇듯이 말을 허니 배경음악과 함께 이 시인 내다르며 〈봄빛 밥상〉으로 낭송을 허겄다.

우수쯤 오는 빗소리는 달래빛 소리 같다
그 파장 촉촉함에 환해지는 동강할미꽃
온 들녘 향긋한 밥상 받아 안는 시간이다

몇 차례 마실 오실 꽃샘추위 손님꺼정
서운치 않게 대접하려 분주한 새아씨 쑥
제 몫의 밭두렁만큼 연두 초록 수를 놓고

웃방에서 아랫방으로 겨우내 몸살 하시던
팔순이신 어머니도 냉잇국에 입맛 다시며
쪼로롱 구르는 물방울 봄 소리 품어 안는다.
―이승현 〈봄빛 밥상〉 전문


이렇듯이 어머니 생각이 지극허니, 어진 마음 뉘 아니 칭찬하랴. 행간에 오가는 부모 자식 간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더라. 부모 생각 네 마음은 성효지심(誠孝之心)이 기특허다. 봄나들이 나와서도 효성이 지극헌 것 뽄께 쪼로롱 구르는 물방울 봄 소리 품어 안는구나. 그중에 사회자 또 나서면서 다음 낭송 작품을 소개허는디 이렇게 하더라.


이번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라. 사춘기 아들을 보며 신호등에 걸린 버스처럼 빨간불에 멈춰 선 아들의 모습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건널목’ 발견하는 엄마는 지루하지만, 파란불의 신호가 켜질 것을 믿는다며 권영희 시인을 소개할 제, 권 시인 앞으로 나아간다. 덩달아 〈대황하〉 OST 중 〈The Great Yellow River〉도 따라 올라가니,

오일장 따라 나서 깎지 마라 훈수 두고
또래하고 놀기보다 책보기를 즐겨하던
아들은 어디쯤에서 나의 손 놓은 걸까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빨간 불이 켜진다
건너오지 말라는 사춘기 아들처럼
한동안 나는 파란불을 기다리는 버스다
―권영희 〈건널목에서〉 전문

일본 최고의 오카리나 장인이면서 연주자인 노무라 소지로, 맑고 청아한 오카리나의 소리에 신시사이저의 신비한 소리를 더하여, 칭하이 성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서해와 만나는 산둥 성의 하류까지 총 5,645킬로미터 전 지역을 촬영하며 노무라 소지로가 연주하는 오카리나 선율과 함께 펼쳐진 황허(黃河)의 풍경을 잠시 머릿속에 그리니, 사회자 임채성 시인을 시조단의 얼룩말로 소개헌다.
오랫동안 기다린 임 시인 헛기침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시조 낭송을 시작혀는디, 뉴 트롤스(New Trolls)의 〈Adagio〉가 흘러나오것다.

 


앵돌아진 음표 같은
동물원 옆 미술관 길
도시의 소음에 맞선 뼈만 남은 한 거인이
노랜 듯, 속울음인 듯 허밍을 토하고 있다

반올림한 꿈일수록 어깨는 더 무거워져
한 음 내린 하늘 아래 허리가 굽어진다
반주도 갈채도 없는 는개 속의 저 아리아

삼십 촉 별은 뜬다,
눅눅해진 가슴에도

가단조로 울려오는 무채색 저녁 앞에
어느새 조명을 밝힌 가로등이 환하다
―임채성 〈노래하는 사람〉* 전문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 잔디밭에 서 있는 조너선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움직이는 조각 작품.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뉴 트롤즈(New Trolls)란 이름, 오케스트라 편곡과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밴드의 화려한 연주와 화음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클래식과 록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라는 찬사를 받은 앨범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의 〈Adagio〉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디, 그 가사의 내용은 마치 조각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은 것 같아 그 내용은 이러하더라.

당신이 내 옆에 가까이 있길 바란다만/ 나에겐 고독만 남아 있구나/ 다시 태양이 빛나길 기다려보지만/ 태양은 너무 멀리 가벼렸어./ 죽는다는 것과/ 잠을 자는 것은/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꿈꾸는 것일지도……

이때에 사회자 임 시인에게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Singing Man)’의 설명을 짧게 부탁하니, 이렇게 설명하더라.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커다란 설치 조각 ‘노래하는 사람’은 모터를 이용해 ‘우우~ 우우~’ 하고 노래하는디, 소리를 내는 만큼 그 소리가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개인의 몽상과 인간의 노동을 창조적 에너지로 간주한 환경조각의 대표작을 꼽히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라.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한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그의 작품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를 잠시나마 생각하게 해 준다고 마무리하고 내려가니, 유심시조낭송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시인을 소개하니 김일연 시인이라.
김 시인 앞으로 나와 낭송할 작품 〈별〉의 시작 배경을 설명허니 이렇겄다.


타관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병을 홈시크니스(home-sickness)라고 하고,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노스탤지어(nostalgia)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가난하고 구슬프고 비극적인 세상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곳 중에서도 가장 오지였다. 해가 지면 동물들이 나타나는 오지,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에는 초등학교 시절 미래를 준비하는 아버지가 계셨고 어머니가 계셨다. 해가 지면 별들이 쏟아지는 아득한 세상, 전쟁이 끝났지만 육군 보병으로 근무하셨던 곳, 사립문을 여는 소리, 마당의 연못에 물뱀들이 기어 다니는 곳, 밤이면 유난히도 깨끗한 별들이 하늘에 총총 박혀 있던 아버지가 계시던 고향은 세상을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직스러울 만큼 단순한 사람, 아버지……. 아버지의 그 사랑, 아버지가 깎아 주신 키대로 잘 정리된 연필 등등 이들이 나의 노스탤지어였다. 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단순한 강렬한 이미지가 오늘의 나를 살게 해 준 것이라는 고백이 끝나자 배경음악인 심태환의 〈그대의 손을 잡고〉의 리듬을 타며 〈별〉을 낭송하였겠다.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다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던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엔 흑연 빛 어둠을 벼리는 별이 내렸다

총알 스치는 소리가 꼭 저렇다 하셨다
물뱀이 연못을 들어 소스라치는 고요
단정한 필통 속처럼 누운 가족이 있었다
―김일연 〈별〉 전문

우리 모두에게는 삶의 고비마다 떠오르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있다. 자식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울 수도 없으며, 항상 말없이 사랑하고 말없이 걱정하는 사람이 아버지라.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며, 생시의 그 말씀이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람으로, 바위 같은 이름이며, 당산나무 같은 거대한 이름이렸다. 헌데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족과의 단절 때문에 상처받고 방황하며,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과 소중한 역할을 상실한 채 위기상황에 놓였도다. 아버지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답기는 어려운 세상, 아버지의 위치는 존경받는 지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책임과 도전이 따르게 되는 것이 곧 아버지가 아닌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시간으로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지니,


이때에 사회자 시간이 여덟 점 반이라 시조낭송회 파루 시간이 됐는지라 급히 분위기를 바꾸난디,
이렇게 시조 낭송을 다 마치고 나니 가슴이 뿌듯하고 눈시울도 뜨거워집니다. 그것은 시조가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로 시작해서 겨울, 칸나, 국밥, 물방울, 부모, 아들을 돌아 돌아온 곳은 역시 가족의 품이었습니다. 나가시다가 오늘 하늘에 별이 떠 있다면 필통 속에 나란히 누워 자던 식구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큰 절로 하직하는도다.


이후 자유 시간으로 시와 시조 낭송이 더 이어지고, 노래 한마당으로 어울려 노니는 사이 밤 적적 깊어지는구나. 이 마당에 오늘 유심시조낭송회 주요 얼굴들을 중중모리로 소개하는디 꼭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저기 저쪽 오른짝 편으로 김영재, 김일연, 신필영, 임채성 시인이 진중하게 앉아 있고, 그 옆에서 왼짝으로 돌아 문숙, 이승현, 임연태, 배우식 시인이 있고, 무대 왼짝의 한 가운데 둘러앉은 서덕, 권영희, 김선화, 김선희, 이남순 시인이 보이고, 그 뒤로 이승은, 권갑하, 이태순, 유명자, 유정이, 천숙녀 시인이 있으며, 맞은편으로 이준섭, 홍성란, 김영정, 송윤아 시인이 보이고, 그 외에도 많은 내빈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난디, 오늘은 생중남생중녀(生重男生重女)이었도다. 얼씨구나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서로 주고받고 한담을 나누는 사이 저 밖의 달은 더욱 높이 떴으니 어서 권주가나 불러봐라. 오냐 가자 어서 가자 갈 시간도 늦어가고 먹을 시간도 늦어간다.


벗님네들 잘 가거라. 봄날 너도 잘 있거라. 우리 이제 헤어지면 춘추가절에나 만날지니 어이 가리 어이 가리, 이 흥을 두고 어이 가리. 다리 아파 못 가게거든 쉬었다 가시옵고, 내 다리로 가기 싫으면 날개 돋친 학이나 되어 수루루 펼펄 날아 가시옵소서.


이러할 제, 이제 흥도 사그라져 조명은 시간을 쫓고, 명월은 하늘 높이에 잠겼도다. 어기야 어야 어야 어기야 어야야, 좋은 흥을 이제 묻노라. 짧은 봄밤 모든 이가 제집 찾아 도용 도용 떠나간다.

 

정리/ 오종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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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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