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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읽은 문제작] 시조 / 정수자 - 오래된 것에서 호명하는 새로움

문근영 2014. 3. 28. 10:53

[내가 읽은 문제작] 시조 / 정수자
오래된 것에서 호명하는 새로움
[50호] 2011년 05월 10일 (화) 정수자 문학평론가

1.

시간여행. 과거, 현재, 미래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으로 들어가기 혹은 살아보기. 시인은 그런 꿈에 매혹된 시간여행자이고, 시 쓰기도 그런 시간여행의 하나가 아닐까. 새로운 무엇과의 대면을 찾아 늘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꿈꾸니 말이다. 상상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되 지금 이곳의 삶을 떠나지 않는 여행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고 부르고 되새긴다. 그런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시적 체험인지 발표되는 시편들 거개가 지나온 시공간에서 길어오는 것들이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시인이야말로 일생 동안 유년을 파먹고 사는 존재인가 보다.

많은 시가 그런 시간의 재조직이자 기억의 형상화라 할 때,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적 자원이다. 그러므로 시간여행도 가장 아프고 뜨겁고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의 되읽기일 것은 자명하다. 환상성이 두드러진 시조차 책이나 영화 등에서 얻은 경험(간접)과 영감의 확장이듯, 전혀 새로운 상상의 선취란 매우 희귀하니 말이다. 특히 시조에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있는 것의 재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에 비하면 ‘없는 것의 현시’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문제는 편재한 경험들 속에서 시인이 어떤 발견을 하고 어떤 식으로 재조직하느냐일 것이다. 이전의 것과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새로운 지평을 여느냐일 것이다.

2.

   

윤금초 시인

먼저 잊히거나 희미해진 말들의 새로운 호명을 본다. 우리네 생활 속에서 함께 살았던 옛말을 불러내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다.

 

열은 끝이 있어두 아홉은 끝이 없는 수여.

하늘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민(九旻)이구, 땅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인(九?)이구, 땅에서 가장 짚은 디는 구천(九泉)이여. 그 뭣이다 넓으나 넓은 하늘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구, 넓디넓은 땅덩이는 구산팔해(九山八海)이구, 나라에서 가장 큰 관가는 구중궁궐이구 말구. 또 있다니께. 가장 큰 민가는 구십 구간이구, 집구석만 컸지 살림살이 째고 쪼들리면 구년지수(九年之水)이구, 그 땜시 수없이 태운 속은 구곡간장(九曲肝腸)이구, 수없이 죽다 살았으면 구사일생이구, 그렇게 수없이 넴긴 고비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구, 어찌어찌 셈평이 펴이어 두구두구 먹구 살 만치 장만해뒀으면 구년지축(九年之蓄)이구…… 열버덤 많은 수가 아홉인겨. 아홉은 무한량 무한대 무진장을 가리키는 수가 없는 수니께. 암, 암.

열버덤 열 배는 더 큰 수가 아홉이구 말구, 참말루!

* 이문구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패러디.

―윤금초 〈뜬금없는 소리 3〉 전문(《시조시학》 2011 봄호)

사설의 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사성어의 안팎을 짚고 엮어내는 열거와 반복, 그 입말의 맛이 자별하다. 하지만 더 주목할 것은 ‘구’ 즉 ‘아홉’이라는 숫자에 담긴 다양한 의미의 재발견과 활용이다. ‘구’에 담아온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을 두루 꿰고 엮는 구절들이 환기하는 성찰 때문이다.

알다시피 사설의 재미는 말의 주워섬김이라는 마당 위에 비판, 풍자, 해학 같은 현실 비틀기를 통렬하게 펼칠 때 증폭된다. 이 작품에서는 “열은 끝이 있어두 아홉은 끝이 없는 수”라는 시적 해석에서부터 현실 비틀기를 시작한다. ‘열’보다 큰 수로 상정한 ‘구’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그 말이 나오게 된 저간의 사정을 일깨움으로써 의미망을 넓히는 것이다. 그중에도 민초들의 애환을 집약하는 표현 “나라에서 가장 큰 관가는 구중궁궐이구 말구”나 “집구석만 컸지 살림살이 째고 쪼들리면 구년지수(九年之水)이구” 등은 그 안팎에 깔린 비판적 정서를 슬쩍슬쩍 짚어 준다. “구산팔해” “구년지수” “구년지축”처럼 판소리 사설 혹은 고전소설에서나 만날 법한 표현들 역시 현실을 비추고 들추는 데 큰 몫을 한다. 게다가 어려운 한자 사자성어를 어수룩한 사투리 말투로 눙치듯 펴는 것은 민중적 정서 전달에 아주 효과적이다. 이렇듯 〈뜬금없는 소리〉는 전혀 뜬금없지 않은, ‘구’에 담아온 우리네 삶의 한 문화사적 고찰이 된다. 오래된 것에서 불러내는 새로움의 즐거운 발명이랄까.

다음 작품도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것을 새롭게 읽어내서 재미를 더한다.

 

   

박옥위 시인

산 밑
마을은 물속같이 고요하다
물속같이 고요하면 우울증이 온다는데
저만치 모퉁이를 돌면 못은 더 고요하다

깊은 대낮 고요의 한복판을 쫙 찢으며
빨간 볏을 쳐들고 수탉이 홰를 친다

“내 꺼다~ 내 꺼다아아아~!
내 꺼다~ 내 꺼어어어~!”

하늘이 놀라 깬다 숨이 꼴깍 넘어갈 듯
말끔한 통유리창이 통째로 금이 갈 듯

나뭇잎 파랗게 웃어재끼고

다시 너울너울

밀물

* “내 꺼다~ 내 꺼다아아아~!” : 수탉이 제 소유 주장하는 소리, 홰치는 소리.

 

―박옥위 〈밀물〉 전문(《시조세계》 2011 봄호)

수컷의 생리를 그것도 웃음을 물고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 핵심은 수탉의 본성을 집약하며 웃음과 의미를 아우르는 “내 꺼다~ 내 꺼다아아아~!”라는 소리다. 제 소유를 과시하는 수탉의 모습을 살짝 비꼬듯 해석한 이 외침으로 다양한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깊은 대낮 고요의 한복판을 쫙 찢으며/ 빨간 볏을 쳐들고” 홰를 치는 모습, 그 위에 얹은 ‘남성성’도 인상적인 부조에 기여한다.

그 힘은 다시 “하늘이 놀라” 깨고 “말끔한 통유리창이 통째로 금이 갈”만큼 마을 전체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일순 반전된 상황이 “너울너울” 밀려드는 새로운 “밀물”을 이루며 “물속같이 고요”한 마을에 봄날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따라서 도입부와 종결부에 똑같이 나오는 ‘물’도 확연히 달라진 의미를 보여준다. “우울증이 온다”고 염려할 정도의 마을을 “홰치는 소리” 하나로 확 바꾸어 버린 것이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과시라는 모든 수컷의 본성, 이를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비틀어 보면서 그 안팎에 깔린 수긍과 비아냥 같은 속내까지 들추면 더 많은 재미를 담고 있다. 그것이 비록 “나뭇잎 파랗게 웃어재끼”는 과시라 해도, 그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긴다 해도, 종족 보존이 그 욕망과 무관치 않다는 암시를 엿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다.

3.

‘폭포’나 ‘달’도 오랫동안 사랑받은 시적 대상이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이란 표현이 보여주듯, 우리 시가에서는 자연을 꾸준히 노래해 왔다. 하지만 오래된 소재도 어떤 시선에서는 새로운 오늘의 자연으로 거듭난다.

 

   

정공량 시인

상처가
거느리는
금이 간 우레소리
외마디
탱탱한 전율(戰慄)
천지간(天地間)에 세워놓고

시간은
합장을 할 뿐
기억 속을 맴돌 뿐

 

―정공량 〈폭포〉 전문(《시선》 2011 봄호)


   

홍성운 시인

미루나무
까치집
월세로 세줬나 보다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 둘 지워질 즈음
보름달
떡하니 앉아
우듬지가 휘어진다

오랜만에
찾아온
초등학교 친구 같은
창문을 도닥이는 달빛이 반가워서
말없이 따라나섰다
길모퉁이
호프집

 

―홍성운 〈달〉 전문(《시조세계》 2011 봄호)

오래전부터 불러온 대상도 호명하는 방식에 따라 사뭇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도 〈폭포〉는 감정을 절제한 묘사로 일관하는 데 비해 〈달〉은 일상의 감정을 진솔하게 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폭포〉는 시인이 보여준 그간의 작품과 다르게 이미지의 선명성과 압축미가 두드러진다.

폭포를 “상처가/ 거느리는/ 금이 간 우레소리”로 본 것이나 “외마디/ 탱탱한 전율(戰慄)”로 그린 것은 새로운 시각이자 강렬한 묘사다. 이 대목에서 폭포는 세찬 소리와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양을 아우르며 ‘외마디’의 신선한 울림으로 각인된다. 물이 떨어지는 모양의 포착으로 보이는 “시간은/ 합장을 할 뿐”, 그리고 떨어진 물이 만드는 파문의 형상일 법한 “기억 속을 맴돌 뿐”도 폭포의 모습이며 소리의 여운까지 시각화하려는 의지의 결과다. 객관적 묘사만으로 폭포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얻은 명징성이라 하겠다.

달은 그보다 더 오래 불러온 대상, 이를 새롭게 그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삶 속의 한 풍경으로 달을 자연스럽게 꿰어서 자신만의 새로운 〈달〉을 살려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묘미의 단초는 “보름달/ 떡하니 앉”은 흔한 풍경을 보고 “우듬지가 휘어진다”고 읽은 데서 나온다. 그것이 곧 화자의 마음마저 어디론가 휘청, 휘어지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화자는 결국 “초등학교 친구 같은/ 창문을 도닥이는 달빛”을 정겹게 안고 “길모퉁이/ 호프집”을 찾아 나선다. 이 대목은 우리를 그 호프집으로 “말없이 따라”나서고 싶게 하는 흡인력을 지닌다.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린 생활 속의 정서가 공감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가볍게 소묘한 듯한 일상의 수묵화 한 폭으로 새로운 ‘달’ 하나를 잘 살려냈다.

4.

특정 시간의 호명은 많은 사건과의 중첩이다. 그중 큰 것이 바로 사람과의 관계요 마음일 것이다. 다음 작품들은 그런 일상 속에서 꽃이 되는 시간을 불러낸다.

 

   

권갑하 시인

1
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
눈매가 곱던 누이는 흙을 덮고 누웠다

비릿한 눈물의 향기
양수처럼 풀어놓고

2
잘린 그루터기에서 솟아나는 새순처럼
쪼그라든 시간에도 형형한 눈빛은 살아

끈적한 생의 에움길
꽃을 피워 올렸다

3
허기진 사연들을 차마 말로 못하는데
서늘한 눈매를 닮은 오랜 내력의 깊이

철없이 어린 꿈들은
촉을 자꾸 내밀었다

 

―권갑하 〈누이감자〉 전문(《서정과 현실》 2011 상반기호)

   

우은숙 시인



비 오는 날 앞집 여자 감자전 해놨다고
어색한 손길로 내 발을 끌어당긴다
적당히
못 이기는 척,
벌써 그 집 현관이다

대나무 무늬가 그려진 큰 접시에
따뜻한 속을 열고 쫄깃쫄깃 아린 맛
땅 속에
불 밝힌 이유
여기에 있었구나

고랭지 흙 뚫고 하얗게 핀 감자꽃
꽃향기 여기까지 너울너울 건너와
여자와 나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구나

 

―우은숙 〈못 이기는 인정〉 전문(《시조21》 2011 상반기호)

두 작품도 같은 소재인 ‘감자’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고 있다. 먼저 〈누이감자〉는 감자를 ‘누이’로 보는 데서 새로움을 확보한다. 감자는 싹이 잘 나올 만한 실한 눈을 쪼개서 재를 발라 심는다. 그런 과정을 세밀히 살핀 데서 “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라는 도입이 가능했다면, 이 모티프로 인해 “끈적한 생의 에움길”이라는 감자의 시간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네 ‘허기’를 많이 감당해온 감자의 한살이를 통해 집안을 위해 희생하기 일쑤였던 ‘누이’들의 ‘내력’을 짚어낸 덕에 얻은 심화다. 나아가 감자 전분의 “비릿”한 맛에서는 “눈물의 향기”를, 썩어 문드러져 새싹을 밀어 올리는 만신창이 몸에서는 “양수”의 힘을 읽어내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런 유사성의 활용 위에 ‘누이’들의 표상으로 제시된 〈감자〉는 가난한 시절의 여운을 씁쓸하게 남긴다.

한편 감자전은 비 오는 날이면 문득 생각나는 정서적 감염력이 큰 음식이다. 특히 “쫄깃쫄깃 아린 맛”이 유혹적인 ‘감자전’은 강원도의 힘을 연상케 한다. 그것을 “땅 속에/ 불 밝힌 이유”로 짚어본 것은 앞집 여자와 이어지는 어떤 느낌 때문에 가능한 확장이다. 이 대목은 지상의 모든 존재란 서로 엮여서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또한 이웃도 모르고 사는 현대의 아파트 삶은 ‘국경’이지만(박주택), ‘감자전’ 하나로 문을 열고 하나가 되는 “못 이기는 인정”도 있음을 일깨운다. 물론 감자와 전이라는 둥근 생명의 힘에 마음이 더 둥글어진 덕분이겠다. “고랭지 흙 뚫고 하얗게 핀 감자꽃”이 “너울너울” 불러낸 비 오는 날의 정감, “앞집 여자”와의 마음을 잇는 “꽃향기”가 훈훈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5.

호명은 특정 상표의 풍경을 데려오기도 한다. 상표의 수명은 효용가치에 따라 달라지지만, 시인의 뇌리에 깊이 박힌 어떤 상표는 삶의 한 표정을 오래도록 담고 있다.

   

손영희 시인

1.
2차선 국도변 민무늬 다후다 이불
장롱이며 냉장고 이삿짐 보듬고 와

순순히 자리 내어주고
비탈 한 뼘 딛고 있다

저 남루 끌어다가 한잠 푹 자고 싶다
누벼온 생의 이력 비록 한 줄뿐이라도

누군가 성긴 잠들을
꼭꼭 다져 꾸려왔을,

2.
수척한 가로등이 제 발등을 찍는 저녁
도시의 칼바람을 맨몸으로 맞고 있는

뜯겨진 저 실밥들의
무료배식 긴 행렬

―손영희 〈다후다 이불〉 전문(《시조세계》 2011 봄호)


   

배경희 시인

아침부터 저녁까지 떠드는 금성라디오
천위에 노래소리 주름주름 잡다가
재봉틀 박음질 따라
밀물지고 썰물진다

한낮의 양철지붕 늘어지게 졸고 있다
지칠 법도 하건만 물레처럼 계속 돌고
어머니 손길을 따라
실들도 늘어진다

같은 음표 제자리표 되돌이표 가물가물
꽃들도 어머니도 잠자리표 꾸벅꾸벅
이 세상 제일 긴 라디오
내덕상회 그 뒷집

―배경희 〈라디오집〉 전문(《열린시학》 2011 봄호)

이 작품에서 “다후다 이불”은 밀려난 것들의 대명사다. 잠이라는 휴식 그리고 반려와의 시간을 감싸주는 따뜻함의 상징인 이불. 그런데 방 안에 있어야 할 이불이 “2차선 국도변”에서 “이삿짐”들과 함께 있는 장면은 스산하다. 또 다른 정착을 향해 가는 “이삿짐” 모습이 이후 곤고한 여정의 암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도 “저 남루 끌어다가 한잠 푹 자고 싶다”며 넉넉지 않은 삶을 품어온 이불의 시간을 헤아리는 것이겠다. 하지만 이불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한 줄뿐이라도” 의미 있는 나날일 수 있다. “누군가 성긴 잠들을/ 꼭꼭 다져 꾸려왔을” 밤은 누군가(의) 재기를 도와주는 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2.에서 이불은 “뜯겨진 저 실밥들”로, 그들의 “무료배식 긴 행렬”로 환치된다. 이불은커녕 신문지나 겨우 덮는 노숙자들의 ‘무료배식’ 연명. 하지만 이들의 암담한 오늘을 덮어줄 ‘이불’은 없으니, 두 장면의 대비가 작금의 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라디오집〉은 ‘라디오’가 유일한 낙이요 세상과의 통로였던 시절의 재현이다. 낡은 풍경에서 새로움을 이끌어내는 것은 리듬을 입힌 다양한 표현들이다. “천위에 노래소리 주름주름 잡다가”부터 펼쳐놓는 음악적 요소로 “같은 음표 제자리표 되돌이표 가물가물/ 꽃들도 어머니도 잠자리표 꾸벅꾸벅” 같은 율감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주름주름” “가물가물” “꾸벅꾸벅” 같은 의태어는 고단한 노동을 시각화하고, 동화적 요소의 가미는 그 장면을 아프지 않은 수채화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사실 “금성라디오”는 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고단한 어머니의 반려이자 표상이니 즐거운 기억은 아닐 것이다. 쉴 새 없이 일하는 어머니 곁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떠드는”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논 것도 유쾌한 추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회한 어린 사모곡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감각적 표현들과 “금성라디오” “내덕상회 그 뒷집” 같은 구체적 이름들의 실감 덕분이다. 그런 호명이 “세상에서 제일 긴 라디오집”이라는 명명도 가능케 한 것이다.

6.


어떤 이론이 현대시조를 온전히 규명할 수 있을까. 글을 쓸 때마다 고민스럽고 어려운 숙제를 안은 기분이다. 이론 개발 자체가 지난한 일인 데다 ‘현대’와 ‘시조’가 안고 있는 특성 때문에 더 그러하다. 자유시 대부분이 서구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 정합성을 다듬는 판에 현대와 시조라는 두 특성을 아우르는 이론적 틀이 쉬울 리는 결코 없다.

고전시가 이론과 현대시 이론을 섞어 적용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의 시조 읽기란 늘 난제 앞에 작아지는 형국이지만, 성실한 선정과 읽기로 짧은 능력을 에우고자 했다. 그래도 준비한 주제에 따른 선택 과정에서 더 좋은 작품을 제치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기존의 작품에서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간 시조에 주목하고자 했지만, 때로는 조금 편하게 감겨드는 시조를 찾아 쓴 적도 있다.

가끔은 문제적 작품이 적다는 문제를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미적 새로움이라는 즐거운 충격만 아니라 세상의 여러 문제를 뜨겁게 파고드는 새로운 인식에 대한 기대가 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으로 터뜨릴 새로운 시조들의 비약. 정형시에서는 그게 얼마나 큰 고투인지 알지만,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주문이다. 그럼에도 시조의 다양한 변화, 진화 가능성을 만나는 즐거움이 컸다.

정형 안에서의 변모가 제한적임을 인식하고 형식을 더 견고하게 다지면서 미적 완결성을 높이는 작품들이 여전히 든든한 지주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소통 불능의 자족적 시에 대한 지지와 지탄의 다른 편에서는 시의 근본에 대한 추구도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니 말이다. 전쟁을 비롯해 온갖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세상에서 지친 영혼을 위무하고 정화하는 일은 앞으로도 시가 담당할 아름다운 소임일 것이다. 그리하여 오래된 것들도 보편 속에 편재한 새로움의 발명, 그것의 미적 구현 끝에 더 오래 살지 않을까.

 

정수자 | 시인. 1984년 세종숭모제전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시집으로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 녘 길을 떠나다》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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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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