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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어로 만드는 존재의 집 - 김신영

문근영 2014. 3. 21. 10:50

언어로 만드는 존재의 집 

 

홍윤숙, 『쓸쓸함을 위하여』(문학동네, 2010)

문정희, 『사랑의 기쁨』(시월, 2010)

 

  김신영

 

  일상생활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특히 여성들의 신변잡기로부터 시작하여 잔잔한 시상을 펼쳐가는 홍윤숙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문학동네, 2010)는 병상에 서 황혼을 예감하며 쓴 시들이라 하니 더욱 애달프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낙엽의 노래」는 끝내 나를 시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張本)의 시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그 시를 읽으면서 짝사랑의 아픔과 왠지 모를 서글픔에 고이 간직하여 읊조리던 시구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시에 대하여 애틋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와 친근하게 지내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내었다. 가끔 시를 쓰기도 하였는데 친구들은 내가 쓴 시가 아니라며 놀려댔다. 그리하여 한 편의 시는 내 고교시절과 청춘을 아우르면서 성장기를 거치게 하였고 결국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홍윤숙 시인의 시는 내게 특별한 감정을 돋울 뿐 아니라 시심의 모태 역할도 돈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여든 여섯을 넘겨서 출간한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에서 선생님의 시 몇 편을 살펴보니 쓸쓸함의 정점에 와 계시다는 것과 혼자 짊어져야 하는 인생의 무게, 그리고 지금까지 시를 써 온 삶의 의미와 영혼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시인은 쓸데없는 낡은 널빤지에 의미를 두고 그것으로 집을 짓고 싶어 하며, 아직까지 소용이 있는 무엇을, 의미가 있는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게 언어로 집을 짓는 시인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쉬어갈 집을 짓는 것이다. 존재를 현상학적으로 표현해 줄 집을 아직도 골몰하며 짓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그 속을 걸어 다니고 싶다고 한다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도 씌우고 문도 짜 달고

그렇게 집을 지어 무엇에 쓸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

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

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가면 좋겠다

때문에 날마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

-「쓸쓸함을 위하여」전문

 

  사람들을 환영해주는 어떤 집이 있어 그 집에서 편히 쉬어갈 수 있다면, 그 집에서 다리 펴고 쉬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시인은 말한다. 홍윤숙 시인은 이제 그 집을 완성하고자 골몰하고 있다.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사람들은 집이 없는 쓸쓸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한 집을 위해 언어와 수사를 이리저리 맞추어 쓰는 일은 언어의 집을 짓는 것이다. 하이데커가 말한 언어로 짓는 존재의 집인 셈이다. 우리의 현상적 의미는 언어에 의해 구현되며 그 언어로 인하여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은 시의 위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다. 노시인은 시의 형식으로 존재의 집을 완성하고자 하며 완성된 그 집에서 사람들이 발을 펴고 쉬어가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라면 한번쯤 가져보는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물이 없어도 언어는 존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언어는 위대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언어를 통하여 짓는 존재의 집은 아주 튼튼하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

보던 책 덮어놓고 안경도 전화도

신용카드도 종이 한 장 들고 갈 수 없는

수십 억 광년의 멀고먼 여정

무거운 몸으로는 갈 수 없어

마음 하나 가볍게 몸은 두고 떠나야 한다

천체의 별, 별 중의 가장 작은 별을 향해

나르며 돌아보며 아득히 두고 온

옛집의 감나무 가지 끝에

무시로 맴도는 바람이 되고

눈마다 움트는 이른 봄 새순이 되어

그리운 것들의 가슴 적시고

그 창에 비치는 별이 되기를

-「여기서부터는」

 

  이제 전체 인생에서 막다른 외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시인은 여기서부터는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다고 속삭인다. 인생의 여정에서 혼자서 가야하는 길에 들어선 셈이다. 곁에서 늘 가까이 있던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시대의 필수품인 신용카드와 시인에게 꼭 필요한 종이 한 장도 들고 갈 수 없는 곳으로의 마지막 여정이다. 그곳은 지구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이라고 시인은 직감한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전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며, 앞으로도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의 이동이라 할 수 있다. 그 공간의 별 중의 가장 작은 별-물론 과학적인 잣대로 보면 그것은 작아서 작은 별이 아니라 멀리 있어서 작아 보이는 별이지만-로 향한다.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은 그 곳에서 별빛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리운 것들의 가슴을 적시고 창가를 비추는 별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병상에서도 공백을 깨고 시력이 왕성해진 시인은 불교문예 지난 호( 2010 가을 호)에서 신작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겨울」이라는 제목의 시로 ‘아직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동안은’에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음을 알린다. 남은 꿈을 조금만 더 꾸겠다는 시인의 꿈은 무엇일까? 왕성한 꿈의 대미는 찬란한 날개를 파닥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은 찬란한 날개를 파닥이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인생이 무의미하고 슬프고 무가치한 허무나 허공이 아니라 찬란하고 황홀한 잔치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시인은 아직은 꿈을 더 꾸겠다는 의미로 생에 대한 한없는 긍정을 내포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력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긍정은 홍윤숙 시인의 시와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황홀과 찬란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빛 은행잎이

아직 온 천지 마을길에 찬란한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동안은

남은 꿈을 조금만 더 꾸리라

이윽고 황홀한 잔치 끝나고

-홍윤숙, 「겨울」에서

 

  인생에 대한 긍정은 그의 시 전반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는 기독교적인 사상을 들 수 있다. 그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현세는 물론 내세도 긍정하는 태도로 일관된다. 인생을 긍정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찬란하며 황홀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통적인 세계관인 ‘허(虛)’나 ‘공(空)’과는 분명 다른 세계이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을 거친 후 시인은 「길을 걷다가」라는 작품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리고 『쓸쓸함을 위하여』라는 시집을 마지막으로 엮는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만큼 이제 노 시인은 온 생의 길목에서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이 길에 머지않아 겨울 깊어지고 얼음 깔리면

다시 구석진 골방 흰 벽에 갇혀서

공허한 허기를 삭을 등뼈로 버티겠지

오늘 아직은 남은 길에서 햇살 따스하니

하루를 천 년처럼 누리며 간다

-「길을 걷다가」

 

  노시인이 느끼는 시간은 예전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를 내고 있다. 곧 멈추어 버릴 것 같은 시간은 소중하기 짝이 없는 안타까운 의미이다. 남은 시간에 시인은 무엇을 할까? 남은 시간마저 다 가버리면 어떻게 할까? 분주한 시인은 ‘오늘 아직은 남은 길에서 햇살 따스하니’라고 오늘을 만끽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또한 ‘하루를 천년처럼 누리며’라며 자신의 삶의 태도를 표현한다. 짧은 시간이 남아 있지만 하루를 아주 길게 천년처럼 누리며 살다 가겠다는 낙관적인 태도인 것이다. 삶에 대한 관조나 낙관은 연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오래 살아 온 과정으로 말미암아 여유가 생긴 것이다.

  존재에 대한 확인은 언어를 통하여 그 가능성을 보인다. 특히 사랑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존재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이 한 권의 시집 속에 면면히 채워져 있다면 그 감수성과 연민에 대하여 궁금해진다. 여기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지독하고 격렬한 의미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문정희 시인의 시가 활판시집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그간의 시들 중에서 사랑에 관한 시들을 모아 시선집의 형태로 출간한 본 시집은 인쇄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느림의 미학의 일환이라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바다. 문정희 시인의 사랑에 대한 시가 한 권의 활판 시집으로 묶여 한정본만 출간되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식자 시집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영구보존이 가능한 형태이다.

  사랑에 관한한 시쳇말로 ‘화끈한’ 용어와 의미를 구사하는 이 시집은 의미가 남다르다. 일반적인 의미의 흔한 사랑이 아닌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운명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사랑은 개인이 거부한다고 하여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은 그 상대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지는 일대일의 지독한 사랑이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일한 사랑이라는 의미가 된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하여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기쁘고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을 때에는 이 세상은 온통 절망과 슬픔과 미움과 증오와 불행이 있을 뿐이며 자신의 존재의미조차도 없어지게 되는 절대적인 사랑인 것이다. 시를 통해서 그 사랑의 의미를 짚어가도록 하자.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목숨의 노래」전문

 

  사랑의 정도가 깊어서 목숨을 내걸고 죽어도 좋은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드라마, 소설, 영화에서도 이러한 목숨을 내건 사랑이 등장을 한다. 위의 시에서도 목숨을 내걸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기막힌 사랑의 의미가 등장하고 있다.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처음과 끝‘이요,’천국에서 지옥까지’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지고지순의 사랑이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며, 어떤 불가항력이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도발적인 사랑이다.

 

꽃아, 너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어제 그 모습은 무엇이었지?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붉은 입술과 향기,

오늘은 모두 사라지고 없구나.

꽃아, 그래도 또 오너라.

거짓 사랑아.

-「오라 거짓 사랑아」

 

  그러나 ‘절대’나,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거짓으로 판명이 되고 말았다. 위의 시 「오라 거짓 사랑아」에서 ‘꽃’도 거짓말을 한다고 탄식을 하고 있다. 오직 진실과 위대한 정직과 운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절대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그 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꽃’의 모습이 바뀌었다. 이에 시인은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그래도 ‘또 오너라’라는 인고를 견디어 낸다. 이것은 꽃으로 표상되는 대상은 거짓을 말하였으나 사랑의 상대였던 시적 화자는 어제의 사랑을 진실과 절대의 표상으로 삼고 그래도 오라고 초월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제시한다. 사랑은 변질되기 쉽고 부서지기 쉬우므로 유리병 속에 보관하여 오래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는

고독이라는

유리병 속에 담아 둘까.

 

사랑은 너무나도 순간적이어서

마치 미세한 향기 같아서

그대와 잠시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연기처럼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지기도 한다.

 

정략이 조금 개입된 결혼이

좋은 결혼이듯이

인생은 투명한 순도만으로는

오히려 부서지기 쉽듯이

사랑에는 약간의 허영과 가식이 섞여야

더욱 설레이고 뜨거운 것일까.

 

아낌없이 훌훌 태우되

모두 다 들여다보진 말 것.

 

거기엔 뜻하지 않게도 화상 같은

애증이 끼어들고

권태와 변질의 낭떠러지가

눈앞에 당도하느니

 

아름다운 사랑의 등성이에

한나절 외줄을 타고 오르다 보면

거기엔 바람만 쓸쓸히 불고

바위틈엔 에델바이스 대신

이런 난해한 악마가 기다리고 있느니.

 

사랑을 유리병 속에 담아 둘까.

-「사랑을 유리병 속에 담아 둘까 」

 

‘고독이라는 유리병’에서 유리병은 보호와 보존을 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달콤하기에 만지거나 먹어버리거나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물과 접하지 않도록 홀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인의 걱정이다. 오래 기억되고 길이 남을 사랑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쉽게 부패하고 쉽게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랑을 완전하게 오래 보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안전장치로서의 고독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개입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순도가 높은 사랑은 애증과 권태, 변질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정희 이 시집에서 남녀 간의 사랑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자녀, 인물, 부부, 연인 등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김신영/충북 중원 출생. 94년 《동서문학》등단.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불혹의 묵시록』,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 현재 홍익대 강사.

 

 

- '계간 불교문예'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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