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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침의 시 / 나희덕 -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문근영 2014. 3. 21. 10:51

이 아침의 시 / 나희덕
 
서대선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편지 2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만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 <인간의 대지 : Terre des homme>의 저자 쌩땍쥐베리(Antoine de Saint-Exupry)는 우편비행기 조종사였지요. 비행중 방향감각을 잃고 이집트 사막에 불시착하게 되는 일이 발생되었답니다. 그와 동료는 낮에는 막막한 사막을 향해 최대한 멀리 걸어갔다가, 밤바람이 모래위에 발자국을 지워버리기 전에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합니다. 밤 동안 낙하산 헝겊위에 받아 놓은 오염된 이슬을 마시고 담즙까지 토해내기도 합니다.
 
갈증으로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쌩땍쥐베리는 사막의 모래 속에 쓰러져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그가 사막 위에 누워 아내와 동료들을 떠올리자 오히려 사막에 불시착한 자신과 동료가 구조대원이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이상한 주객전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보이고, 구해달라고 외치는 아우성으로 들려서 더 이상 눈감고 잠들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쌩땍쥐베리와 그의 동료로 부터의 무소식과 침묵이 오히려 그의 가족과 동료들의 정신을 위협하고, 불길한 생각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마지막 힘을 내어 사막으로 걸어 나아가 베두인에게 구조됩니다.
 
그래요.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갑자기 날아온 새는/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지게 되는 거지요. 강남 갔던 제비는 추운 겨울이 지나면 지도도 없고 차편도 없는 데도 다시 돌아오지 않나요? 밝은 햇살 속에 아직은 싸늘한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봄날의 하늘을 날렵하게 나는 제비를 여러분의 마음속 처마 밑으로 들여 보세요. 자신의 생을 저리도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연의 생명 앞에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당신에게도 쉽게 해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오래 오래 가슴에 품고 다시 일어나야하지 않을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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