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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골목 심재휘 한 넓은 곳에서 또다른 넓은 곳으로 건너가는 오늘은 골목이 그립다 좁은 밤길 하나를 돌면 전봇대의 흐린 전등 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곳 끝없이 갈라지는 골목길 이리 저리 곧장 갔으나 지나간 길에 다시 와 설 때 문득 담벼락에 비밀의 문이 열려 나를 아주 멀리 데려가 줄 것만 같은 그 곳 뒷골목이 버려진 자전거처럼 하루쯤 메마르게 쉬고 싶은 오늘은 길인 줄 알고 들어갔던 막다른 골목에서 나 한없이 막막해지고 싶다 # 서울 생활을 버리고 시골에 터전을 잡았을 때 맨 처음 부딪친 것은 어둠과 골목길이었다. 시골은 어둠이 빨리 왔다. 해가지면 집들도 캄캄해지고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도 어둠이 되었다. 손전등을 들고 동네 골목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이런 어둠 속에서 어찌 살고 있나 싶었다. 이장에게 가로등 설치를 요청 했더니 동네 사람들 반대로 설치를 미루고 있다고 했다. 밤새도록 가로등 불빛이 켜져 있으면 지붕이나 울타리에 심은 박이나 수세미가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식물도 생체리듬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골 생활 10년차에 접어든 지금은 어둠속에서도 모든 사물이 또렷하게 보인다. 마을 입구이장 집을 지나 스므 걸음을 걸으면 새끼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목줄을 하고 집을 보는 삼각텃밭 할아버지네 담 너머로 하이얀 으아리 꽃이 보조개도 깊게 미소를 건넨다. 나비라도 되고 싶게 가슴이 울렁이는 걸 참고 열두 걸음쯤 걸으면 술고래 아저씨네 착한 며느리가 아기를 재우려 마당에 나와 있고, 그 집 모퉁이를 돌면 부녀회장 집 몸 불편한 아저씨가 돗자리 깐 마당에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속에 홀로 끼어 앉아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작년 폭설에 허물어진 담장 모퉁이를 돌면 농사를 전문가처럼 짓는 김씨 아저씨네 오이 줄기가 바지랑대를 오르고 있다. 올겨울 그만 불이 나는 바람에 아주머니는 아들네 살러가고 진돗개 흰둥이만 빈 마당을 지키고 있는 곳에 이르면 그 건너 편 어둠 속에서 하이얀 찔레꽃 속에 별들이 초저녁 이슬에 눈을 씻는 곳, 백년도 넘은 상수리나무 사이로 달님이 갸웃 고개를 내밀어 어떤 가로등보다도 아늑하고 부드럽게 길을 보여주는 숲속이 나의 안식처라는 걸 눈감고도 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을 손목시계의 초침처럼 빈틈없이 채워 나가다 문득 무엇엔가 걸리는 것 같은 날 “좁은 밤길 하나를 돌면/전봇대의 흐린 전등 하나/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곳”을 마음속에서 불러 내보면 어떨까. “끝없이 갈라지는 골목길 이리 저리/곧장 갔으나 지나간 길에 다시 와 설 때/문득 담벼락에 비밀의 문이 열려/나를 아주 멀리 데려가 줄 것만 같은 그 곳”을 간직하고 있다면, 가끔은 그런 “그리운 골목”길 끝에서 그냥 “한없이 막막”한 시간 속에 앉아 있으면 그동안 잊고 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다가와 손을 내밀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 '문화저널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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