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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움에 이르는 길-김현정(평론가, 대전대 교수)

문근영 2014. 2. 28. 11:36

 

<우리詩> 2011년 6월호 월평 중에서



 



그리움에 이르는 길



 



김현정(평론가, 대전대 교수)



 





그리움은 언제나 현실을 매개로 한다. ‘지금-여기’의 현실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자신의 경험과 맞물릴 때 그리움은 작동하기 ㅐ문이다. 지나간 아름다운 것들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의 대상도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고통과 슬픔이 시간에 의해 사라진 뒤 그 자리에 그리움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 이전의 현실 속에서의 ‘상흔’은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치환된다. 상흔에 따뜻한 연민이 작동하여 그리움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리움은 ‘지금-이곳’의 현실을 살아가는 고단함 속에 내장되어 있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삶이 힘겨울수록 그리움이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데, 이는 고단한 현실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망을, 고단한 현실을 망각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움은 라캉이 말한 상징계로 진입하기 전의 상상계에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이미 ‘아버지의 법’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질서에 편입된 우리는 그리하여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의 어머니’를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상의 어머니’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려는 것이다. 많은 시인들은 이렇듯 ‘상상의 어미니’를 그리워하고, 이를 끊임없이 현실 공간에 배치하려 한다. 그리움의 대상들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 시적인 삶을 가는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현실에 배치되는 다양한 통로와 방식을 만나기로 한다.



 



어떤 대상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일은 소중하다.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그늘을 읽는 일이고, 자신의 무의식 층위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매개가 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연민의 정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을 표출하는 추동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광기 시인은 들고양이 유모차에 페지를 싣고 가는 어느 여인에게서 어머니를 읽어낸다.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늦은 밤 도로가에 무더기, 무더기 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부서진 유모차에 폐지나 종이박스를 올려놓고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횡단하거나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그녀였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퀭한 눈,



 

리듬도 없고 감정도 없는 거북이걸음,



 

어느 날은 폐지를 가득 실은 낡은 유모차를



 

내 발치에 세워서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그녀이다.



 

아슬아슬한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에도



 

무섭게 다가오는 자동차보다는



 

그 걸음이 더 위태로워 보이는 여자이다.



 

바짝 다가서서 보면 행상에 지친



 

지난날의 내 어머니를 읽게 해주는 여자,



 

신호등 옆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들을 뒤지며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폐지가 아닌 듯하다.



 

대부분의 삶을 거리에서 보내는 그녀가



 

더듬더듬 촉수를 움직이자



 

용도 폐기된 것들이 낡은 유모차에 실리고 있다.



 



- 김광기 「들고양이 유모차」(<우리詩> 2011년 3월호)



 



 

자본주의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잘 형상화하고 있는 시이다. GNP 2만 달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유모차는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이는 아이들을 태워 밀고 다니는 수레의 기능 외에 허리 굽은 할머니들의 이동 수단이 되기도 하고, 위 시에서처럼 노인들의 폐지 운반을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모차는 유아들의 가벼운 몸무게에 맞춘 작은 수레이기에 노인들의 허리 굽은 키에도, 노인들의 부족한 힘에도 무리 없이 이동이 가능하다. 시적 화자에 포착된 유모차를 끄는 여인은 매우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핏기 없는 얼굴과 퀭한 눈도 그렇고, “리듬도 없고 감정도 없는 거북이걸음”으로 위험하게 도로를 횡단하거나 골목을 누비는 장면도 그러하다. 시적 화자는 이 여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폐지를 가득 실은 유모차를 시적 화자의 발치에 세워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모습도 그의 따뜻한 시선에 다 녹아내린다. 그 여인을 통해 “행상에 지친/ 지난날의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여인과 비슷한 삶을 살다간 어머니의 고단한 삶의 이면을 본 것이다. 즉, 나이 들어 건강도, 체력도 안 좋은 상황에서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행상을 나서야만 했던 어머니의 슬프고도 우울한 현실을, 그리고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어머니의 “지친” 모습을 읽어낸 것이다. 삶에 지치고 찌든 유모차를 끄는 여인에게서 행상에 “지친” 어머니를 읽어낸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신은 얼마나‘어머니’처럼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자문한다. 일상적인 무료한 삶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신만을 위한 삶은 아니었는지를 말이다. 이처럼 시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도, 힘들어도 생계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폐지를 줍는 여인을 보며 행상에 지친 어머니의 이면을 엿보고, 나아가 자신의 내면까지 들여다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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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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