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의 배면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56) | ||
| 컷! 김혜수 담장 안 죄수들이 축구를 한다 내기 축구다 인생은 포기해도 담배 한 갑과 초코파이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사생결단이다 담장 밖 나무들도 내기중이다 누가 먼저 탈옥해 꽃 피우나 옥신각신이다 사식 넣어주듯 담장 밖에서 안으로 가지를 들이밀어주고 있는 저 나무 가만, 이름이 뭐였더라 그깟 이름 따위 잊어버리고 내기에 열중인 익명의 사형수, 장기수, 무기수…… 냅다 축구공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 꼭 누군가 컷! 하고 외칠 것만 같고 # 삶은 입체이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지극히 단순하여 때때로 비감해지는 것. 쓸쓸한 생의 한 풍경을 경쾌하게 그려낸 시가 「컷!」이다. 이 시는 교도소 담장 안과 담장 밖의 풍경을 대비하면서 명료하게 생사의 배면을 심도 있게 드러낸다. 생의 막장에 다다른 죄수들이 기껏 ‘담배 한 갑과 초코파이’를 놓고 사생결단의 내기를 한다. 우습지만 이것이 인생인 걸 어쩌겠나. 너나없이 이런 우스운 내기를 하며 사는 것. 담장 밖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무들도 매순간 다투어 꽃피우기 위해 옥신각신한다. 화자는 잠시 나무의 이름을 더듬어보지만 금방 생각이 나지 않고, 죄수들은 그런 이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내기에 목숨 걸고 뛰어다닌다. ‘축구공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 화자는 슬며시 하늘 저편을 보고야 만다. 죽기 전 신현정 시인이 그러했듯 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만 것이다. 우스운 내기에 목숨 걸고 뛰지만 결국 어느 한 순간 ‘컷!’하면 끝이다. 유한자로서의 씁쓸한 삶의 풍경은 모두 외면하고 싶은 것. 움직이는 영상이 리모컨 작동으로 일시에 정지되듯 기운 좋게 펄펄 뛰어다니는 목숨들도 ‘컷!’하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어야 한다. 죽음은 예외 없이 찾아오고, 생의 흔적은 허공에 흩어져 순식간에 무화되는 것이다. 또 사설이 길었다. 대책 없이 흘러넘치는 허공을 제대로 경작하지 못한 탓이다.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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