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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인한論 - 긴장의 시학을 견지하는 형형한 눈빛 / 이송희

문근영 2014. 2. 28. 11:36

 

강인한論_ 긴장의 시학을 견지하는 형형한 눈빛 / 이송희

 

 

  바람이 센 날의 풍경

 

    강인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플라타너스는 플라터너스대로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대로

  바람 속에 서서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으려고 떨며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흘러가버린 저녁 구름과 매캐한 소문과

  매연과 뻔한 연애의 결말들은 길바닥에 차고 넘쳐

  부스럭거리는, 창백한 별빛을

  이제는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

  때 이른 낙엽을 떨군다

  조바심치면 무엇하느냐고

  지난겨울 싹둑싹둑 가지를 잘린 나무들은

  눈을 틔우고 잎을 피워서 파닥파닥

  할 말이 많은 것이다 할 말이 많아서

  파닥거린다 춤을 춘다

  물 건너간 것들, 지푸라기들 허공을 날아

  높다란 전깃줄에 매달려 몸부림치고 소스라치는

  저 검은 비닐들을

  이제는 잊어야, 잊어야 한다고

  빗금을 긋고 꽂히고 내리꽂히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부러져버린 진보와 개혁 그 허깨비 같은 잔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비리고 썩은 양심은 아래로 잦아들어

  언젠가는 뿌리 깊은 영양이 되겠지만

  뭉칫돈을 거래하는 시궁 속의 검은 혀

  아무데서나 주무르는 시뻘건 후안무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많아서 상처투성이의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나무들은 바람 속에 아우성치는 것이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이 말은 강인한(姜寅翰, 1944년생, 본명 : 강동길) 시인이 40년 넘게 시를 쓰면서 궁구(窮究)한 끝에 얻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노래하는 대상이 달라지고, 뒤죽박죽이 된 세계에 간섭하면서도 자신의 시가 지탱하는 중심축은 바로 이것이라 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집에서 시인을 읽지 말고 제발 시를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독자들이 자신의 시를 읽으면서, 처음 시단에 섰던 열렬한 청년이었던 자신을 만날 것을 기대한다. 이것이 진정한 그의 삶의 얼룩이며 삶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한(寅翰)’이라는 이름은 습작기 시절 이런 이미지들이 좋아 직접 지은 것이다. 부드러운 외관상의 이미지를 강인한 시로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실제 그의 시에는 “한 시대의 능욕 당한 얼굴”(「겨울․1982년」) 표정과 “동학난리 때 칼 맞아 죽은 남편”(「할멈의 눈」)을 그리워하는 여자 등 사회의 모순과 비루한 현실에 뒷덜미가 많이 잡혔다.

 

   시집 『입술』(시학, 2009)에 들어 있는 위의 시는 우리의 모습을, 센 바람에 상처 입고 바람 속에 서서 아우성치는 가로수에 투사하고 있다. 이 시에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고자 나뭇잎을 파닥이는 풍경과 길바닥에 널려 부스럭거리는 ‘창백한 별빛’의 기억들을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풍경이 나란히 놓여 있다. 가로수가 눈을 틔우고 잎을 피우며 춤추는 것은 할 말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진보와 개혁 그 허깨비 같은 잔가지의 기억”을 잊어야 한다는 몸부림이기도 한다. 이 시는 결국 진보적인 사람들의 기억, 그리움을 파닥거리는 나뭇잎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을 되찾으려 하거나 잊어야 한다며 수없이 파닥거리는 나뭇잎은 여전히 모순으로 뒤덮인 우리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한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는 시인의 눈빛은, 196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1965」가 당선됐다가 사흘 뒤 취소 통지를 받던 그 날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전북대신문에 먼저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취소됐던 이 시는 고교 1년 선배가 재학 중 월남전 맹호부대 병사로 참전하게 된 것을 쓴 작품이었는데, 그와 같은 월남전을 소재로 쓴 시,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가 이듬해인 196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소년시절의 운동회, 월남전 참전, 고구려 시대까지 세 개의 시간을 직조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이미 그 시절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시에 푹 빠져 지내는 시인의 모습은 《푸른 시의 방》이라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볼 수 있다.

 

   2002년에 문을 연 이후 올 해로 꼭 10년을 맞는다. 그는 카페를 통해 공연히 소통이 되지 않는 무잡한 시, 공소한 시 등이 넘쳐나는 요즘에 제대로 된 시, 올바른 시, 참다운 시를 후배 시인들이나 시인 지망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스스로 참다운 시를 찾아 필사하고 ‘좋은 시 읽기’에 올리며 독자들과 만난다. 여기에 바치는 시간이 매일 3~5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라고 한다. 현재 그가 올린 ‘좋은 시’들은 줄잡아 5천 편이 넘는다. 아마도 이 카페의 '비평/에세이' 코너와 '좋은 시 읽기'만 잘 이용해도 대학의 문예창작과 수업 이상의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시를 가려 읽는 밝은 눈과 시에 들이는 열정을 엿보았다.

 

   그는 고교 시절 신석정 시인으로부터 ‘시인은 우선 인간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신춘문예의 선자였던 김수영 시인으로부터 ‘긴장의 시학’을 전수받았다. 형식주의 비평가 김종길 시인으로부터 시론을 익혔다고 한다. “지금도 신석정, 김수영 두 분 시인을 내 시정신의 스승으로 흠모하는 동시에, 김종길 시인을 시론의 은사님으로 마음속에 깊이 모시고 있다.”(「끝없는 도전의 시절」)는 시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목숨을 걸고 문학 수업을 닦는 것이 결국 자기 구원의 길”(「거울 속의 몇 가지 풍경」)이라 했던가. 등단 40년을 넘긴 원로시인이라면 긴장이 풀릴 법도 한데, 아직도 시인은 ‘목숨 걸고’ 시를 쓴다. 시를 이야기하는 그가 내뿜는 형형한 눈빛은 어느새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를 쓰던 청년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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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은

1976 광주출생. 2003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봄의 계단」이 당선되어 등단. 2010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2009 오늘의시조 시인상을 수상했으며, 2010 《서울문화재단》문학창작 활성화 지원금을 받았다. 전남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시집으로 [환절기의 판화]가 있다. 현재 웹진《시인광장》편집위원이며, 전남대와 조선대 국문과 등에 출강 중이다. poetry2003@naver.com

 

 

-http://cafe.daum.net/poemory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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