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입실入室
이 광 석
‘노인’ 참 편안한 강물이다
입동 앞에서도 나이를 버린
늦가을 은빛 햇살이다
이제 더 늙을 시간도 이유도 없는
저문 강기슭에 나앉아
갑골문자 같은 물의 사유를 읽는다
비틀거리는 물의 의자에서 내려와
난생 처음 삶이 ‘아픈 꽃이었다’고 말한다
보아라 사람들아
가는귀 흐린 눈 몇 잎 안 남은 백발
그 누구도 검문 못하는 자연의 주민등록증을,
오늘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고독의 칼날 같은, 고요의 별빛 같은
저문 생애의 아랫목 한 자락도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참 잘 익은 사리다
마침내 ‘노인’이라는 유기농 영혼이
제 몸에서 완전히 견인되어 나갈 때
그때 비로소 강물의 어머니인
거친 바다 그 운명 같은 깊이에
하얗게 투신하는 섬 하나 보리라
물의 변증법
임 윤
생명이 시작된 애초부터 인간의 고향은 바다였다. 인간의 DNA와 가장 가까운 생명체가 물고기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는 바다에서 왔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광석 시인은 인간의 삶을 말할 때 샘물에서 태어나 강물을 거처 물의 어머니인 바다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평생을 경남과 마산지역에서 살아온 시인에게 바다의 존재는 어머니일 수밖에 없고 바라만 봐도 평온한 안식처일 것이다.
육신의 나이 팔순을 바라보며 펴낸 시인의 6번째 시집『바다 변주곡』전반부에서 보듯 삶과 바다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시간, 육신의 나이가 다하면 돌아갈 어머니의 품인 것이다. 하여 퇴출되는 그날을 예감하며 “아직도 버거운 세상의 등짐을 진 채/나는 낙화처럼 펄썩 주저앉았다/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빼 낼 차례다/대문 밖엔 119 사이렌 소리가 수시로/기웃거린다/다행히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꽃잎 하나 내려놓기 위해/평생 스스로 몸을 낮추는 나무처럼/내일은 또 다른 아름다운 퇴출을 꿈꾸리라”하며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삶은 세상의 이치와 동행이며 동반자이기에 “늙는다는 것은 세월과의 약속입니다/슬퍼할 일도 아쉬워할 일도 아닌/물 흐르듯 그냥 흘러가는 것입니다”라 말하며 “이제 더 기다릴 눈발도 아쉬움도 없는 허허한 생의 종점에서 하루 종일 기침과 바둑을 둔다 저 눈이 사랑의 기척이었을 때, 저 눈발이 시의 작은 예감이었을 때를 모두 내려놓고 오늘은 끝내 한 송이 눈발도 거부하는 사막 같은 겨울바닷가에서 어눌한 몸짓으로 눈 대신 백발의 비를 맞고 있다”며 어머니가 찍었던 거룩한 마침표처럼 시인 자신도 마침표를 찍으려 마음을 가다듬는다. 시인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내죽어 땅에 돌아가는 날은/흰눈이 펄펄 내렸으면 좋겠다.//쏟아지는 눈발은/생애의 빈 가지 끝에 남기고./꿈결처럼 잠든 겨울나무들처럼//그렇게, 이승의 강을 건너갔으면 좋겠다.” 라고 고백한다.
시인의 말 중에서 “바다는 내 시의 무슨 변용인가를 자문해 본다. ‘어머니’라는 원초적 해명을 내놓는다.”라 하면서 심신의 고뇌,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려 수련하는 스님들처럼 그도 물이 되기 위해 아니 처음부터 물이었기에 “물의 몸짓으로 다가오는 사람아/물길보다 더 밝은 길을 여는 사람아/내가 물이 될 때까지/물이 내 이름 한자도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푸른 해일로 너의 바리게이트를 넘는/아, 나는 너의 새벽별이 되리라”하며 물의 변증법을 완성한다.
몽테뉴(Montaigne, M.)의『수상록』에는 “죽음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주변 어디에서든 기다리지 않을까.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것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하지 않고, 죽음을 깨달으면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시문학』5월호에 발표된 이광석 시인의「노인 입실入室」은 생의 종점을 향해 떠나갈 막차를 기다리는 시인 자신은 물론 모든 생명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저마다 살아온 질곡의 세월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실버인구가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소외계층이 형성되었고 변두리로 밀려난 노인들의 쓸쓸한 삶을 세월 탓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진정 삶의 깊이는 무엇인가 수리적인 바다의 깊이는 물리학으로 해결하겠으나 형이상학적 깊이는 무엇으로 측정할 것인가.
결국 삶과 죽음 이라는 명제를 놓고 종교와 철학, 과학 지식을 동원해도 아직 명확한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는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어서(生死一如) 죽음도 삶의 연장선이기에 그 경계는 이미 허물어지고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허물어진 경계 언저리에 도달한 나이, 즉 ‘노인’은 “참 편안한 강물이”며 “입동 앞에서도 나이를 버린/늦가을 은빛 햇살” 같은 존재이다.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깨달은 나이기에 물 흐르듯 살아온 날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이제 더 늙을 시간도 이유도 없는/저문 강기슭에 나앉아/갑골문자 같은 물의 사유를 읽는다”
산골짜기 샘물의 발원지부터 대양에 이르기까지 때론 거친 계곡의 물살과 사투를 벌이며 일생을 흘러와 하류에 다다를 즈음 “비틀거리는 물의 의자에서 내려와/난생 처음 삶이 ‘아픈 꽃이었다’고 말한다”
꽃을 피우고 씨앗을 거두기 위해 모든 생명은 거친 풍파 속에서도 삶을 꿋꿋이 견뎌내며 그 세대를 마무리 한다. 마침내 “보아라 사람들아/가는귀 흐린 눈 몇 잎 안 남은 백발/그 누구도 검문 못하는 자연의 주민등록증을” 펼쳐 보인다. 햇살 쟁쟁하던 날을 미련 없이 버리고 열매를 맺은 뒤 사라지는 꽃의 내력을 읽어보면 “고독의 칼날 같은, 고요의 별빛 같은/저문 생애의 아랫목 한 자리도/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참 잘 익은 사리다”라는 잠언을 찾아낼 수 있다.
물의 여정은 “마침내 ‘노인’이라는 유기농 영혼이/제 몸에서 완전히 견인되어” 잔잔한 포구에 다다르고 유기생명체의 근원이었던 바다로 흘러간다. 가깝게는 몇 년 뒤, 멀리는 수십 년 뒤에도 우리는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갈 것이다. 앞서 간 선배의 흔적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 젊은 강물들도 시간의 보폭에 맞춰 포구에 닿을 것이다. 그런 뒤에야 “강물의 어머니인/거친 바다 그 운명 같은 깊이에/하얗게 투신하는 섬”이 써내려온 바다 변주곡 한 소절을 조용히 경청할 수 있으리라
2011년 시평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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