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섭 작품론] 타오르는 섬 / 김정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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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힘이 되어
한없는 응시가 어느덧 사랑이 되어
저렇게
활활 타오르는 섬
―〈불타는 섬〉 《강릉, 프라하, 함흥》
시인의 탄생이 반드시 비극적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비극은 사건의 비참함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이는 인식의 문제이다. 여기서 비극적 인식이란 구조 밖에 있는 사건에 대한 의식 혹은 구조에 환원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식이다(柄谷行人, 《언어와 비극》). 오이디푸스를 보라. 고진은 《오이디푸스왕》이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취하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비극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자신이 나는 누구인가를 추궁해 가는 인식의 과정이 비극을 야기한다고 말한다.
결국 밖(外)에 있는 인식의 문제가 비극의 씨앗이라는 말인데, 나는 여기서 하나의 시인이 태어나는 존재론적 비의를 확인한다. 시인은 외로운 섬이 되어, 한없는 응시로 마침내 사랑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때 섬이라는 공간은 밖을, 외로움은 방외자의 인식을 뜻한다. 결국 타오르는 섬이란 ‘나는 누구인가’를 추궁해 가는 국외자의 뼈아픈 정념의 불꽃이다. 이홍섭 시인은 이렇게 섬이 되어 타오른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운명과 싸우며, “바닥을 치는 시”(〈모래무지〉)를 쓴다.
마음이 척추를 다쳤으니
세상이 어찌 그늘이 아니겠는가
함부로 돌아누울 수도 없으니
그대가 어찌 나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대여
머리맡에 놓아둔 물이 다 마르면
내가 그대를 껴안아주리라
마음 약한 별들만 가득한
내 품속 새벽하늘을 보리라
―〈마음은 척추를 다치고〉 전문(《강릉, 프라하, 함흥》)
이렇게 시인은 마음의 척추를 다치고 세상의 그늘을 응시한다. 이런 불구의 마음으로 나는 ‘그대’의 사랑을 받을 수 없고, ‘그대’는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그런 불면의 밤이 지나고 나면, 나는 허물어진 마음 일으켜 세워 그대를 안아 주겠다고 말한다. 내 마음속에는 “마음 약한 별”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품속에 바로 “새벽하늘”이 있다. 무너진 마음 다시 세우고 일어선 그 간절함에 바로 새벽이 있다. 그의 시 쓰기는 통절한 상심의 자리에서 그대를 품고, 마침내 맑은 여명의 시혼을 열어가기 위한 형극의 작업이다.
길 위에 버려진 똥을 보고 있노라면
똥 눈 짐승의 창자가 들여다보인다
놀라워라, 똥 눈 짐승의 내부가 보인다
밤샘 끝의 새벽녘, 거울 속의 너를 보고 있노라면
퍼질러 앉아 멍하니 쳐다보는 너를 보고 있노라면
놀라워라, 세상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시퍼런 멍이 보인다
―〈시인 이솝 씨의 행방2〉 전문(《강릉, 프라하, 함흥》)
시인은 시마(詩魔)라는 천형의 대가로 새로운 눈을 얻는다. 사물의 이면이 보이고 세상의 그늘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길 위에 버려진 똥”에서 “똥 눈 짐승의 창자”를, 그 내부를 본다. 같은 이치로 “거울 속의 너”로 지칭되는 자아를 밤새 보고 있으면, 내면의 “시퍼런 멍”이 보인다. 문화적인 약호 내에서 이해되는 스투디움(studium)이 아니라, 응시자의 주관적 시각인 푼크툼(punctum)이 바로 ‘창자’와 ‘멍’의 세계다. 푼크툼이 날카로운 물체에 찔린 상처와 작은 점을 의미(바르트 《카메라 루시다》)하는 것처럼, 객체적 형상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강렬하고도 아픈 것이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인식의 모진 벼랑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일이다.
거리를 활주로 삼아 휙휙 솟아오르는 빈 봉지들 바다를 활주로 삼아 하얗게 날치떼가 솟아오르곤 했다 날개 달린 물고기…… 시를 쓰는 일은 행복 없이 사는 훈련 같다고 어느 시인은 썼었다 어떤 빙신이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을 한단 말인가 행복이란 대체 있기나 하단 말인가 휙 솟아올랐다가 컴컴한 골목 속으로 사라지는 저 빈 봉지들 헛것인 영혼들
―〈시인 이솝 씨의 행방3 ―1990년〉 부분(《강릉, 프라하, 함흥》)
그리하여 시 쓰기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다. 시인은 어느 “빙신”이 이런 훈련을 하느냐고 자문한다. 날치떼가 하얗게 날아올라도, 그것들의 비상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빈 봉지는 솟아오르지만 사라지고, 날치가 날개를 가졌어도 결코 물을 떠날 수 없다. 《법구경》에 이르기를 방일하지 말고 탐욕의 즐거움에 길들지 말라고 하였으니,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행복을 줍는 것은 휙 솟아올랐다가 사라지는 “빈 봉지”처럼 허망한 일이다. 곧 생의 자각을 얻기 위해, 행복에 대한 몰각에서 벗어나, 행복 없이 사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시인의 길이다.
이렇듯 그의 첫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문학동네, 1998)에는 시의 발생학 혹은 시인의 존재론에 관한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시인의 길은 “외로움을 비수(匕首)처럼 견디는 길”이자 “그대에게로 가는 먼 길”(〈두 갈래 길〉)이다. 이 두 갈래 길은 기실은 바다로 가는 한 길이어서, 어디로 가든 외롭고, 어디로 가든 서럽고, 또 어디로 가든 사랑 아닌 길이 없다.
두 번째 시집 《숨결》(현대문학북스, 2002)에서부터는 구체적인 생의 세목들을 통해, 세계에 대한 통찰과 자아의 재발견으로 나아간다. 숨결이 들숨과 날숨으로 이루어져 있듯, 시인의 투사(projection)는 대상을 맞히는 행위가 아니라 상호 과녁이 되는 행위이어야 한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 손을 잡고, 태어나 처음으로 어린이대공원에 소풍을 갔습니다. 때마침 공작도 활짝 날개를 펴 우리 모자를 반겨주었습니다. “참 먼 데까지 왔구나” 어머니는 이국의 동물들을 어루만지듯 바라보았습니다.
벵골산 호랑이 지나고, 아프리카 어디쯤에서 왔다는 원숭이 무리도 지나 우리 모자는 인도산 코끼리 모자 앞에 섰습니다. 어미 코끼리는 앞에, 새끼 코끼리 뒤에 서서 그 지순한 표정으로 우리 모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끼 코끼리를, 저는 어미 코끼리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참 먼 데까지 왔구나. 그지?” 어머니는 코끼리 모자가 먼 데까지 온 것이 못내 안타까운가 봅니다. 그 순간 하마터면 어머니의 손을 놓칠 뻔했습니다. 어미 코끼리도 우리 모자를 보며 어머니처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끼리처럼 잔뜩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식물원으로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습니다.
―〈코끼리 모자(母子)〉 전문(《숨결》)
“참 먼 데까지 왔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 갔을 때, 이국의 동물들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여러 동물을 지나 마침내 모자는 인도산 코끼리 모자(母子) 앞에 선다. 어머니는 새끼 코끼리를, 나는 어미 코끼리를 한참 들여다본다. 이때,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신다. “참 먼 데까지 왔구나. 그지?” 바로 이 순간, 어미 코끼리도 우리 모자를 보고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상호 응시와 발견의 순간이야말로, 서정의 원리로 받아들여졌던 낭만적 투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더 나아가 코끼리처럼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발길을 돌리는 장면을 통해, 코끼리와 어머니를 하나로 합치시키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분리(splitting)되어 있는 자아와 타자가, 바라봄과 보여짐이라는 상호 투사(projction)로, 다시 투사적 동일화(projective identification)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식의 입체성을 획득한다.
나 죽으면
한 마리 열목어가 되리니
핏발 선 두 눈을 식히지 못해
차디찬 물 속을 헤매다니는 눈먼 고기
어제는 밤새 전화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산다
밀물이 왔다 갔는지
방안은 온통 뻘밭이니
창밖에서는
붕대를 감은 목련이 터지고
오동나무는 자기를 붙잡고 운다
울어본들
이 세상 울음을 다 가질 수는 없는 일
나 죽으면
한 마리 열목어가 되리니
핏발 선 두 눈
온몸에 핀 울음꽃
차디찬 물 속을 헤매다니는
눈 먼 고기
―〈열목어〉 전문(《숨결》)
“핏발 선 두 눈”을 식히려 찬물 속을 헤매 다니는 “눈먼 고기”. 시인은 죽으면 이런 열목어가 되겠다고 말한다. 응시를 통해 독한 회의를 구한 시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다. “방안”으로 상징되는 시인의 자리는 온통 “뻘밭”이다. 바깥세상도 붕대를 친친 감은 채로 목련이 터지고, 오동나무는 제 설움에 운다. 이렇게 운들 세상이 내 것이 되겠는가. 일평생 울음 울어 온몸에 울음꽃이 피고, 두 눈엔 핏발이 선다. 적안(赤眼)! 이는 시인이 스스로 짐을 져 온 천형의 뜨거운 증거다.
세 번째 시집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세계사, 2005)으로 가면, 이제 시인은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으로, 울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당신들을 껴안으며 위로한다. 그 따뜻한 위무의 정점에 〈서귀포〉가 놓여 있다. 이 시야말로 그를 우리 시대 빼어난 서정시인의 반열에 당당하게 등재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 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서귀포〉 전문(《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나도 누군가처럼 이 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생의 헐벗은 순간을 견딘 바 있거니와, 이처럼 이 시는 무수한 사람들의 쓸쓸한 마음자리를 보듬어 주었으리라.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다. 이런 당신에게 시인은 말한다.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라고. 그러나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섬 속에 숨고, 또 섬 밖으로 떠돈다. 당신이 응시하는 곳은 언제나 서쪽이다. 가도 가도 서쪽. 그 피안을 찾아 당신은 계속 헤맨다. 서귀(西歸)란 기실 불귀(不歸)의 지점이다. 시인은 그런 당신을, 어디서도 만날 길 없는 당신을 거듭 위무한다.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느냐고. 존재의 고통과 그 운명적 엇갈림이 울혈 진 언어의 빛깔 속에 곡진하게 스며 있는 이 작품에, 응당 느꺼워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연민이 많아 스승도, 친구도, 연인도 모두모두 가난한 자들이었으니 그게 병이라면 병이었다. 벼슬살이하다 천성을 이기지 못할 때는, 조롱에 갇힌 새처럼 남쪽가지를 그리워하였느니* 그게 병이라면 병이었다. 마음 둘 곳 없어 시대를 거스르며 운수납자들과 어울리고, 벽에다 유마거사의 초상을 걸기도 하였으니 그게 병이라면 병이었다. 시를 쓰되 시로써 무엇을 구하지 않고, 다만 지극히 간절하고자 하였으니 그게 병이라면 병이었다.
바라건대, 여기 심히 병든 자가 묻혔으니, 지나가는 자들 중 병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곡(哭)도 하지 마라.
* 허균의 시 〈억감호(憶鑑湖)〉에 나오는 구절.
―〈許筠 略傳〉전문(《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시인은 여기에 ‘허균 약전’을 적고 있지만, 허균이라는 인물의 초상은 결국 시인이 삼은 참된 문사의 본(本)이다. 높은 자는 들이받되, 낮은 자를 연민하는 시인의 마음은, 벼슬살이도 천성처럼 이겨내지 못했다. 시대를 거스르고, 도를 찾는 이들과 벗하며, 유마거사를 숭모했다. 유마거사는 내 본디 병이 없지만, 중생이 앓기 때문에 보살도 아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나가 일체이고 일체가 하나(一卽一多卽一)로 연결되어 있는 불이(不二)의 지평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를 썼지만 이를 통해 명예를 탐하지 않았고, 다만 지극히 간절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여기서 ‘병(病)’이라는 것은 세상을 열렬하게 사랑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마음의 병이다. 그러니 무병(無病)은 유병(有病)이요, 유병은 오히려 무병인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병이다.
평자로서 나는 최근 몇 년, 이홍섭 시인의 신작에 주목해 왔다. 그 작품들 중에서 〈한계령〉(《미네르바》, 2009년 가을호)은 단연 발군이다.
사랑하라 하였지만
나 이쯤에서 사랑을 두고 가네
길은 만신창이
지난 폭우에
그 붉던 단풍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집도 절도 없이
애오라지 헐떡이는 길만이 고개를 넘네
사랑하라 하였지만
그 사랑을
여기에 두고 가네
집도 절도 없으니
나도 당신도 여기에 없고
애간장이 눌어붙은 길만이
헐떡이며, 헐떡이며
한계령을 넘네
― 이홍섭 〈한계령〉 전문(《미네르바》 2009 가을)
이홍섭 시인의 〈한계령〉은 황폐하고 고적한 시인의 영혼이 시리도록 아프게 빛나는 시다. 그의 시는 산문적으로 변환이 불가능한, 오로지 시 자체로서만 읽고 음미해야 할 작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슬픔의 시큼한 침이 입안 가득 고이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이 시에 내재하고 있는 고독의 빛깔이며, 유려한 율(律)의 언어에 혼을 담고자 한 시인의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다. 여기엔 한 치의 언어적 잉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적한 슬픔의 빛깔만이 가녀리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졸고 〈진흙 속에 핀 연꽃〉 부분(《내일을 여는 작가》 2009 겨울)
이렇게 유려한 언어로 고적한 영혼을 담아내는 시인이 이 땅에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감히 그의 시혼이 저 멀리 김소월에게 가 닿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소위 국민시인으로 지칭되는 김소월의 시가 이미 낡은 서정의 문법으로 평가절하되거나, 겉멋 들린 수사학적 포즈로 빈약한 사유를 덧칠하고 있는 젊은 시단의 현실을 생각할 때, 그의 시 쓰기는 그 자체로 활활 타오르는 섬이다. 그의 언어가 강고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스스로가 ‘안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는 툭 하면 차를 바꾼다. 몸이 차의 안락에 적응하면 자기 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귀화 요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조국 웨일즈를 고수해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툭 하면 차를 바꾸며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가난한 나는 차 대신 툭 하면 의자를 바꾼다. 기어코 딱딱한 나무의자로 되돌아와 척추를 곧추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나에게 귀화해달라고 애걸하는 나라는 없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 남루한 조국을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대신 툭 하면 의자나 바꾸며 살아가려 한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다.
―〈나무의자〉 전문(《시와 사람》 2010 겨울)
운동선수에게 안락은 자세를 무너뜨리고, 시인에게 인식의 나태는 시의 파탄을 가져온다. 축구선수 라이언 긱스가 툭하면 차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몸이 차의 안락함에 젖으면 “자기 폼”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뿐인가. 그는 잉글랜드의 귀화 요구를 거부하고 조국 웨일스를 버리지 않았다. 월드컵에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신념을 지킨 명예로운 현역이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도 툭하면 의자를 바꾼다. 결국 “딱딱한 나무의자”로 돌아와 척추를 곧추세운다. 시인은 말한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라고. 의자가 나를 안으면, 그 안락 속에서 의식의 긴장이 풀어져 언어와 맞설 힘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딱딱한 의자에 자신을 앉히며 부단히 시혼을 벼릴 그의 모습을 믿는다. 차고 매서운 언어로 잠자는 의식을 깨우고, 섬세하고 따뜻한 언어로 울고 있는 수많은 당신들을 위로할, ‘서귀포’의 또 다른 시업(詩業)을!
수족관 유리벽에 제 입술을 빨판처럼 붙이고/ 간절히도 이쪽을 바라보는 놈이 있다// 동해를 다 빨아들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입술에다 무거운 자기 몸 전체를 걸고 있다// 저러다 영원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리를 잘라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시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꼭 저 입술만 하지 않겠는가
―〈입술〉 전문(《시인시각》 2011 봄)
시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 몸 전체’를 걸어야 한다. 유리를 잘라내야 할지언정, 그가 입술을 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시에 오체투지 하는 자다. 온몸으로 시인이다.
김정남
1970년생. 200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소설 부문) 수혜. 문학평론집《폐허, 이후》, 소설집 《숨결》 상재. 제1회 김용익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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