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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64) - 분열과 확장의 시

문근영 2014. 2. 12. 07:43

분열과 확장의 시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64)
 
홍일표
주동자
 
                       김소연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어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 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가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은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리고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 시인은 자기가 어디로 이동할지 모른다. 순간, 순간 탈각의 모험을 시도하면서 지루하고 비루한 삶의 전형을 부수고 날아오르고자 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그래서 외롭고 나날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김소연 시인의 새로운 시의 안뜰을 ‘주동자’에서 발견한다. 바깥에 나가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 문학의 최소 조건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현실은 사뭇 구체적이다.

 외로움에서 삶의 탄력을 얻던 시인이 장미의 투신을 목격한다. ‘깨진 꽃잎 조각’을 줍던 화자의 뇌리에 ‘유서’가 떠오르고, 단호한 어조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한다 라고 진술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죽음에 가까운 것이고, 신생과 창조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움직이는 것은 곧 장미이고, 장미는 빗방울과 등가를 이루는 사물이다. ‘그럴 수 없는 일’과 맞서 싸우며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의 고투와 절규는 창문의 바깥쪽에서 밤새 이어진다. 그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던 ‘장미나무’는 빗방울의 행위를 지지하는 동안 수식처럼 달고 있던 꽃잎을 잃고 망연자실 서 있다.

 여기서 화자는 다시 ‘나는 절규의 편’이며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귀한 선물로 인식한다. 결국 통증의 배후에는 ‘선물’이 있고, 이 ‘선물’은 생의 동력이다.

 요컨대 존재의 확장은 자기 분열과 파괴의 과정을 거쳐 획득되는 생의 선물인 것. ‘유서’와 ‘통증’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옹색했던 삶은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되고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김소연 시인은 3인칭의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시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다양한 삶의 풍경들이 앞으로 김소연의 시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즐거운 예감을 갖게 한다. 1인칭의 화자가 사라진 자리에 분열과 파괴의 시간을 거친 제3의 시인이 우뚝 서 있다. 귀를 통해서 눈물을 맛보았다는 시인, 그리고 눈물의 뼈로 생의 지렛대를 삼는 시인이 바로 김소연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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