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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종남의 시읽기 93>정원 시인의 “나를 폐업하고 싶다”

문근영 2014. 2. 6. 12:13

 

 

<윤종남의 시읽기 93>정원 시인의 “나를 폐업하고 싶다”
편집국, 2011-10-20 오전 10:10:44  
 

<나를 폐업하고 싶다>

한평생 서릿발 치는 벌판에서
황소바람 막아 주던 당좌를
해약하던 날
마지막 어음 한 장 회수해 왔다

이젠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겠지
햇살 뛰놀던 날의 푸른 암호들이며
부르고 싶은 눈망울들도
안개 덮인 빈 화면이 되었으니

다섯 살에 천자문을 달달
행자스님 염불도 졸졸 흉내내던
오동골 신동은 어디로 가고
출처를 모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내 하드디스크는 이제
폐기 처분 해야 한다

하지만
한때는 우수고객이었던
내 기억의 당좌를 해약하기 전
마지막 남은 어음 한 장
동그라미 넉넉히 그려 넣어
활인이라도 해둘까

<정원시인의 약력>
경기도 안성 출생
중앙대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월간문학으로 등단
혜산박두진문학상 수상
국가보훈처, 서울신문주최 호국문예백일장 최우수상(97)
만해시인학교 시낭송대회 장원
토지문학관 시사랑학교 시낭송대회 장원
실버넷 뉴스 기자, 동화구연가
강동노인복지관, 송파노인복지관 문예강사
서울시 문화해설사, 숲생태해설사



<시인의 말>
바람처럼 구름처럼
청산에 구르는 물소리처럼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습니다.

깊은 산골짜기 옹달샘에 비친
산노루의 영롱한 눈빛!
그 눈빛의 심오한 의미를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이고자 합니다.

 

 



이근배 시인의 해설을 본다
사람이 사는 일을 생업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일거리가 있고 그 어느 것이든 주어진 일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이루는 자와 못 이루는 자로 갈린다. 폐업은 크거나 작거나 장사를 하다가 문을 닫는, 곧 도산을 뜻한다. 아니 더 나아갈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벼랑이다.
화자는 “다섯 살에 천자문을 달달/ 행자스님 염불도 졸졸 흉내내던/오동골 신동”이었다. 그의 미래는 누구에게도 담보할 수 없는 확실한 당좌어음이었고 그의 설계는 당대에서 후대까지 높이 우러를 다락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제는 ‘해약한 어음 한 장’을 들고 욕심껏 숫자를 써서 할인이라도 해 보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이다. 분명 은행과 당좌 거래를 하면서 얻어낸 글감을 아프게 쓰고 있다. 굳이 절망이나 고통 같은 낱말은 쓰지 않으면서 차갑게 쏟아내는 산 체험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제주인뉴스 윤종남 논설위원>
-'세계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인뉴스'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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