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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창수 시인의 詩, `기연(奇緣)` / 박완호

문근영 2014. 2. 5. 09:40

 

 

이창수 시인의 詩, '기연(奇緣)' / 박완호


 

기연(奇緣)

 

                              이창수

 

 

 

 

 

눈 덮인 무덤에 손자국이 나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득한 높이에

자리 잡은 봉분 위

따뜻한 손가락이 녹고 있을 때

선연한 무엇이 이마에 와 닿는다

저기 무어라 할까

이울어진 목울음으로만 흐르는

애잔한 강바람 소리라고나 할까

산그늘 배웅해주는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라고나 할까

무덤 위의 두 손 맞잡아 들이는

이 마음을 무어라 부를까

 

            - 이창수 시집귓속에서 운다(실천문학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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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의 두 손 맞잡아 들이는 마음이라니!

          -이창수 시인의 , 기연(奇緣)을 읽고

 

                                                                                  박완호

 

 

 

 

새로 나온 시집의 첫 페이지를 펼쳐 읽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붙들고 있던 마음자락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그냥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 시 한 편을 만났습니다.

 

이창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울다의 첫 페이지에 실린 기연(奇緣)이라는 시를 읽는 동안 나는 백곡저수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솟은 작은 무덤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뒤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세월이 거꾸로 흘러갑니다. 삼십 년도 넘는 까마득한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다시 천천히 오늘을 향해 시계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눈 덮인 무덤에 손자국이 나있습니다. 어느 겨울이었을까요. 모진 눈바람 속을 걸어 산중에 다다른 아버지의 손바닥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다녀간 발자국을 한발 한발 짚어가며 걸어온 나의 손바닥이었을까요. 무덤에 누운 이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세상에! “지상에서 가장 아득한 높이에/ 자리 잡은 봉분 위에서 녹고 있는 따뜻한 손가락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시인이라니요. 그가 이마에 와 닿는 선연한 무엇을 느끼는 그 순간 이 세상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태어납니다.

 

나는 그의 시선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백곡의 물길과 산자락을 끼고 나 있는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내 발길이 다다른 곳에는 작은 봉분이 하나 솟아 있습니다. 그해 겨울 이곳을 찾아와 무덤에 지워지지 않는 손자국을 남겼을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봉분 속에서는 두 분이 나누시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도 같습니다.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낮은 봉분이지만, 이 시인의 말처럼 저곳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득한 높이일 것입니다. 아무리 오르려 해도 가 닿을 수 없는 그곳을 나는 얼마나 많이 꿈꾸었던가요. 그 절망감이, 그 그리움이 바로 한 명의 시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겠지요.

 

이울어진 목울음으로만 흐르는/ 애잔한 강바람 소리”, “산그늘 배웅해주는/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에 한순간 우주 구석구석이 환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울음 한 조각이 시나브로 허공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따라 무덤 위의 두 손 맞잡아 들이는/ 마음을”, 이 황홀한 심정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아버지.

                       -계간 [주변인과 시] 2011년 여름호 

 

 

 

-http://blog.naver.com/parkwanho/20103240063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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