樓蘭에 서다
이정원
단산한 여자처럼 누워있는 새만금 개펄
퇴박맞고 나뒹구는 몸뚱이 여기저기 마른버짐 피우고 있다
죽은 농게 눈에 화석처럼 박힌 갯내, 무딘 게걸음으로 걸어와 코 끝 지분거리는데
잘못 왔다, 길을 잘못 들었어,
빈 부리 치켜든 청둥오리가 개펄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뻘 속에 묻혀 살다 뻘이 되어버린 아낙들 속 빈 백합을 캐고 있다 끊임없이 헛손질만 하고 있다
갈고리를 물고 늘어지는 뻘의 입 옥니처럼 꼭 다물고 놓지 않는다 무언가 단단히 하소연할 게 있다는 눈치다
먼 서역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누란은 있다
소실된 왕국의 유적처럼 쓸쓸한 패총만 남은 마른 개펄 위
자멸하듯, 석양이
아낙들 등에 칼을 꽂는다
- [시와 시] 2011년 여름호
-----------------------------------------------------------------------------------------
떠날 수 없는, ‘누란’의 운명
바야흐로 ‘개발’의 시대가 왔다. ‘생명’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시대의 흐름이 무분별한 ‘개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파헤쳐진 자연이, 자연 속의 무수한 생명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이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어디 4대강 뿐이랴! 이 땅 곳곳이 그렇게 파헤쳐지고 있다.
오래 전 ‘갯벌은 살아 있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를 보면서 개펄 속에 숨겨진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였던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생명의 보고라고 할 개펄을 보존하기보다는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하게 파헤치고만 있다. 선천적 생명론자인 시인의 눈에 그러한 현실은 당연히 불행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시인은 지금 새만금 개펄을 바라보고 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를 이어 생계의 원천이 되어주는 곳. 그러나 시인의 눈에 비친 새만금 개펄은 이제 “소실된 왕국의 유적처럼 쓸쓸한 패총만” 남아 있는 곳일 뿐이다. 무지막지하게 파헤쳐진 개펄은 더 이상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아니다.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단산한 여자처럼 누워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생명은 보이지 않고 다만 “퇴박맞고 나뒹구는 몸뚱이”들만 마구 널려 있을 뿐이다.
개펄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아낙들은 “속 빈 백합을 캐”며 “끊임없이 헛손질만 하고 있”을 뿐, 생명력을 잃어버린 개펄은 더 이상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잘못 왔다, 길을 잘못 들었어,”라며 개펄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청둥오리들과는 달리 그들은 그곳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허나 어쩌랴! 아무리 하소연을 한다한들 세상은 이미 끝장나버린 것을.
“먼 서역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누란은 있다”는 목소리는 얼마나 절망적인가? 진정 이 세상이 송두리째 ‘누란’이 되어버리고 마는 뼈아픈 현실을 기어이 불러들이고야 말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의 옆얼굴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의 눈에 새겨지는 “자멸하듯, 석양이// 아낙들 등에 칼을 꽂는” 풍경이 내게 고스란히 옮아온다. 시어들이 지닌 강렬한 이미지만큼이나 되게 아프다. (박완호)
- [문학과 의식] 2011년 가을호
-http://blog.naver.com/parkwanho/20103240063 에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4 / 간장 - 하상만 (0) | 2014.02.06 |
|---|---|
| [스크랩] 울림을 주는 시 한 편-29 / 단디해라-권혁재 (0) | 2014.02.05 |
| [스크랩] 이창수 시인의 詩, `기연(奇緣)` / 박완호 (0) | 2014.02.05 |
| [스크랩] 이창수 시인의 詩, `기연(奇緣)` / 박완호 (0) | 2014.02.05 |
| [스크랩] <윤종남의 시읽기 97>김광순 시인의 “고래가 사는 우체통” (0) | 2014.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