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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집을 놓치다>
식기들이 서둘러 몸 부딪는 소릴 듣고 별들도 서로서로 몸을 끌어당긴다 분주한 저 인력 속에 빈곳들이 환하다
당기는 게 하나 없어 나는 내 소슬한 공복 빌수록 커지는 어둠만 끌어안다 못 떠난 바람 한 끝에 끝내 마음 잡히다
지상의 모든 창이 따뜻한 길이 되어 지친 발들 당기며 안으로 빛나는 녘 오늘도 먼 길에만 끌리다 나, 또 집을 놓치다
<정수자 시인의 약력> 1957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84년 세종대왕숭모네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허공 우물』,『저녁의 뒷모습』,『저물 녘 길을 떠나다』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김춘식 평론가의 해설을 본다 이 시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시인의 내면 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식기들이 서둘러 몸 부딪는 소릴 듣고” 별들이 서로 몸을 끌어당기는 “분주한 저 인력”은 일상적인 관계 속에 놓인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나타낸다. 반면 “빈곳들이 환하다”라는 표현이나 “소슬한 공복”을 느끼거나 “빌수록 커지는 어둠만 끌어안”는 화자는, 그러한 관계의 공허함 속에서 어떤 결핍감을 느낀다. 이런 느낌의 자각은 곧 일상 저 편의 생,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생을 꿈꾸게 한다. 관계 속에 안주하지 못하는 시적 자아의 내면은 이 시에서 “당기는 게 한 없어” 자꾸 “먼 길에만 끌리”고, 그래서 저물 녘 지친 발들을 당기며 안으로 빛나는 창문들을 버리고 집을 놓치고 만다. “집을 놓치다”라는 표현은 결국 시인의 내적 자아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일상적인 것의 확인으로서의 지친 발들을 당기는 집과 빛나는 창문이 아니라 바람을 따라가는 시인의 마음은 ‘생은 다른 곳에’라는 시적 동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주인뉴스 윤종남논설위원> -'세계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인뉴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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