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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죽음을 통한 삶의 인식 - 강영환 (시인)

문근영 2014. 2. 4. 11:02

 

죽음을 통한 삶의 인식

 

   강영환 (시인)

 

 

 

   노무현 제 16대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이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돌연한 죽음이 우리가 살아가기 바빠서 허둥대며 잊고 산 삶의 목표지점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용산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도 그랬지만 급작스런 대통령의 서거는 메가톤급 핵폭탄처럼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을 강타했다. 최근에 강원도 지역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동반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서거는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오래 가지게 할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화두 하나를 남겼다. 삶과 죽음은 한가지라는 그것이다. 이유있는 대통령의 정치적 죽음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가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삶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보다 먼저 던져진 화두에 대하여 좀 더 고민해야했다. 불교적인 화두는 느끼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지만 이 세상에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죽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범인들이 가질 수 있는 소박한 생각은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 그 자체일 뿐이 아닐까.

 

   아프지 않는 죽음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살 사이트를 통한 이유없는 죽음은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한 어이없는 행동이기에 그들의 선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했다. 점점 사라지는 희망을 앞에 둔 젊은이들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래도 그 선택은 옳지 않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죽음을 부추기는 자살 사이트는 <죽음 엿보기>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누군가는 커튼 뒤에 숨어서 죽음을 엿보며 희열을 맛보는 유희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죽음을 부추기고 그 장단에 따라 춤추는 바보들을 엿보며 성과에 대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사이트를 개설한 본인은 정작 커튼 뒤에 숨어서 타인의 아픔을 즐긴다고 생각해 보라. 죽음 앞에서 웃고있는 그들을 생각한다면 감히 자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죽음은 단순히 생을 마감한다는 의미 외에도 관계하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6살짜리 손녀가 손가락으로 영정을 향해 브이자를 펼쳐 보이며 씽긋 웃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자 사람들은 더욱 슬픈 죽음의 실체에 빠져 들어야 했다. 인식하지 못한 죽음이 인식하는 죽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죽음을 모르기에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어린 아이에게서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인식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때 그의 어린 아들이 거수경례를 붙여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것과 다름없는 천진스런 모습이었다. 검은 상복 속에서 검은 표정으로 일관되어 있는 화면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어린 아이의 미소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극명하게 느끼게 해 준 것이었다.

 

 

   딱지치기

 

 

   아비의 영정 앞에서 여덟 살짜리 상제는 딱지치기를 한다 엉성하게 접힌 딱지 모서리마다 반쯤 남아 있는 그림과 글자들, 잘못 맞춰진 퍼즐처럼 어긋나 있다

 

   딱, 딱, 타닥,

 

   그래 그렇게 넘기는 거다 짜아식!

   뒤집혀지는 삶의 소리란 얼마나 명쾌하냐

 

   철커덕 넘겨지는 딱지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 뒤로

   조용히 신발 끄는 소리

   사그러지다 반짝,

   빛나는 향불!

                          --권애숙 시집 『맞장 뜨는 오후』중에서

 

 

   이 시에서 어린 아이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난 가장이 보인다. 아직 어려서 죽음이란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은 아들은 딱지치기를 한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죽음과 놀이를 대비시켜 슬픔을 극대화 시킨다. 접힌 딱지는 젊은 나이에 죽은 가장의 굴곡진 삶을 상징한다. 엉성하게 접힌 딱지여서 느슨한 모서리이거나 무늬들이 잘 맞지 않은 퍼즐조각처럼 어긋나 있다. 느슨과 어긋남이 이 시에 숨어있는 가장의 운명이며 그것을 뒤집는 아이가 아비의 운명을 거스른다. 경계가 분명한 삶과 죽음은 뒤집어지는 딱지처럼 명쾌한 것으로 비유한다. 이어서 더 구체적인 비유로 몰입한다.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와 신발 끄는 소리는 삶의 모습인 반면에 사그라지다 반짝 빛나는 향불은 죽음의 모습이다. 삶과 죽음의 객관적 대비를 통해서 시인이 가고자하는 세상 속에서 명쾌한 방식에 의한 뒤집기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을 퍼 올리고자 한다.

 

   우리는 삶이 유한하다는 엄숙한 명제를 잠시 잊고 살았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죽음을 보았다.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허상이 아닌 딱지치기와 같은 분명한 뒤집기처럼 딱지의 양면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딱’ 하며 치는 소리와 함께 뒤집혀지는 딱지,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의 무거운 그늘을 떨치고 빛을 향해 나가는 일도 죽음을 향해가는 일부 여정은 아닌가.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집 『등뼈 하나로』, 『카툰세상』을 상재한 권애숙 시인은 소멸과 생성 즉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로 세상을 읽어간다. 그 결과로 얻은 사랑은 시인이 추구하는 생명과 삶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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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 1951년 경남 산청 출생.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공중의 꽃」가작 입선, 1979년 『현대문학』에 「늑대」 등의 시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 『산복도로』외 다수. ‘얼토’ 동인. 《남부시》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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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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