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머니를 잃은 김영재(金永在, 1948년생) 시인이 그리움에 사무쳐 쓴 '콩눈'이라는 시다.
객지에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며 전화를 걸 때면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이겨내야 한다고'('어머니') 독하게 울지 않으셨던 어머니. '언제부턴가 고향이 객지로 변해'버리자 외롭게 늙으신 어머니를 그리워해야 했던 시간을 행간에 옮긴다.
그는 "어느 한 가지 내세울 것이 없어/ 지도책에도 빠져 있는/ 전남 승주군 송광면 월산리"('다시 월산리(月山里)에서')에서 태어났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물이 맑은/ 섬진강 상류/ 보성강이 합수(合水)되는 곳'이라는 것뿐이다.
바로 그 고향에 댐이 들어차고 삶의 터전이 고스란히 물속에 잠겨 버렸지만, 시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유년의 추억과 어머니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삶의 뿌리이다. '어디 사는 누구냐고 따져 묻는다면/ 얼굴 돌리고 할 말을 잊어야' 하는 고향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그는 고향 상실의 아픔을 오래 전부터 시로 노래해 왔다.
김 시인은 외롭고 고단하면 걷는 버릇이 있다. 걷는 일이 자신을 통제하고 규칙적으로 살게 하기 때문이다. 시를 쓸 때도 그는 손을 깨끗이 씻고, 산길이나 시내를 걸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를 음미한다. 그러다 버릇처럼 외우게 되면 옮겨 적을 정도이니. 그의 시는 길에서 태어난 셈이다.
요즘 그는 어느 한 월간지에 '눈에 밟히는 옛길'을 연재하면서 걷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이미 관광지가 된 옛길부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진 옛길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은 그립고 외로운 것들을 향해 늘 분주하다. 그는 옛길 답사를 하면서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하고, 고맙다고 한다.
눈 덮인 죽령 옛길, 한없이 굴러갔던 대관령 옛길, 어느 것 하나 눈에 밟히지 않는 풍경이 없다고 한다. 시인은 그 옛길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람들의 맑은 눈빛을 만나고, 여러 편의 시를 낳았다.
그는 '외로우면 더 걸어라'고 했다. '내가 비에 섞인 것인지/ 비가 내게 스민 것인지' 모를 외로움이 가슴으로 파고들수록 그는 더 걸으라고 했다. '어두워지는 시간에, 더욱더 어두워지면서'('지워지는 슬픔') 길에 난 상처와 슬픔마저도 결국 지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집 《홍어》(책만드는집, 2010)에는 그동안 시인이 길에서 얻은 작품들이 시조의 정형양식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호우 시조문학상을 수상한 이 시는 고통스런 삶을 극복해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지독하지만 아름다운 땀 냄새를 ‘북한산 향로봉 및 칼끝 같은 바위 길’에서 만난 ‘절면서 산길 오르는 장애인 사내’에게서 맡는 시인.
불구의 다리로 산행하며 힘겨운 삶을 극복해 가는 모습은 시인에게 스스로 세상의 벽을 뚫어야 하는 쿠데타로 인식된다. ‘누군들 성한 다리로 온전히 걸어왔는가’라는 말은 외면상으로 성한 다리를 가진 우리 역시 내면적으로는 성하지 못한 삶의 길을 걸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사람도 비탈을 닮아/ 직선으로 下山’(‘비틀대며 소백산을 내려와서’)하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안고 끝없이 걸어가야 한다. 땀 냄새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열악한 상황에도 주저앉지 않고 극복해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우리는 단단해지기 위해 ‘우리 앞에 가로막는/ 절벽’(‘절벽’)이 오히려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오히려 ‘바람에게 뺨 맞고/ 쓰러져/ 기댈 수 있는/ 막막함’ 순간을 기다리는 이웃들을 바라보며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유연히 낭창거리지 못할 그 적막의 시간을’(‘외로우면 더 걸어라’) 두르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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