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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의 모든 시조(2011-2) - 초저녁 / 박명숙 - 이정환 시조시인

문근영 2014. 1. 29. 17:41

 

♠세상의 모든 시조(2011-2)

 

이정환

 

 

초저녁

 

박명숙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 달이 졌다

 

치마꼬리 펄럭, 엄마도 지워졌다

 

지워져, 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

 

 

♠ 감상

 

박명숙 시인은 첫 시조집『은빛 소나기』(2011년《책만드는집》발간)에서 특히 단시조의 전범을 보인 바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초저녁」에 대한 유성호 님의 논지를 보겠습니다.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와 그 안에 농밀하게 축약된 서사(narrative), 그리고 시인의 암시적인 해석적 개입까지 이 시편은 매우 자연스런 시상(詩想)을 통해 단수 미학의 범례(範例)를 보여준다. 초저녁에 얼핏 든 풋잠 사이로, 그동안 시인의 기억을 지탱하던 핀을 뽑아버리기라도 하듯 ‘달’이 진다. 그 순간 치마꼬리 펄럭이며 ‘엄마’도, 혹은 ‘엄마’에 대한 기억도 동시에 지워져 간다. ‘달’과 ‘엄마’가 동시적으로 지워진 뒤 “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에 홀로 남겨진 시인은 이렇게 이울어가고 지워져 가는 존재자들을 통해, 그리고 ‘초저녁’이라는 소멸 직전의 시간을 통해 소멸 지향의 상상력을 완성하고 있다. 이 시편은 지워져 간 ‘달’과 ‘엄마’, 그리고 홀로 남겨진 ‘초저녁’을 통해 우리 삶의 알 듯 모를 듯한 슬픔을 가득 흩뿌려 주고 있다. 아름답고 애잔하다.

 

지나치게 장광설을 늘어놓기보다 본령에 충실한 창작을 통해 이와 같은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단시조 창작에 주력함으로써 시조문단을 더욱 두텁게 하고 윤택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단시조 미학의 심미적 완결성을 위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적 진경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른 창의적인 전략을 마련하여야 하겠지요. 아울러 시간이나 공간의 형상을 가장 구체적이고 독자적인 감각으로 신생시키는 일에 대한 다각도의 노력과 천착(유성호)이 필요한 때일 것입니다.

현대시조가 새롭고 개성적인 감각으로 쓰일 수 있는가를 實物的으로 보여주는 일은 온전히 시조시인의 몫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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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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