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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 인본주의자가 꿈꾸는 ‘빈터’ -정한용 시인 커버스토리 / 박완호

문근영 2014. 1. 29. 17:40

 

  정한용 시인 커버스토리

 

 

 

한 인본주의자가 꿈꾸는 빈터

 

                                                                                                    박 완 호

 

 

 

 

정한용 시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충청도 촌놈이다. ‘진천출생인 나와 충주출생인 그는 둘 다 충청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청주에서 각자의 학창 시절을 보낸 바 있다. 그가 한 대학교의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 나는 같은 도시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 시절 그가 (’)이라는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아직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시를 쓴답시고 온갖 폼을 다 잡고 다녔지만, 세월이 한참 흘러 등단을 하고 난 다음에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삶 가운데 된통 꺾이는시기를 겪는 법이지만, 정한용 시인은 시를 만나 제대로 꺾인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특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제법 독특한 이력을 가진 시인이다. 그의 직업이 교사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국어교사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는 영어교육과를 나온 영어교사이다. 학부에서 영어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까지 땄으니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부와 석, 박사과정을 모두 다른 대학에서 마쳤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스승이 또한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십여 년 가량을 동인으로 함께 활동해 온데다 사는 곳도 지척이니 그와 나는 제법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할 만하다.

정한용 시인은 1980중앙일보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지만, 1985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평론가로 문단에 첫 발을 내딛기는 했지만 그는 스스로 평론가가 아닌 시인임을 단호하게 내세우는 진짜 시인이다. 그 또한 정한용 시인이 지닌 독특한 이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 그를 제대로꺾이게 만든 것은 바로 이다. 그는 지금까지 만나본 어느 누구보다도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지닌, 말 그대로 제대로 꺾인시인이다.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에서 유령들까지

 

그가 문단에 나온 지도 어느덧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는 시인으로,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남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문학세계를 꾸준히 추구해왔다.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를 비롯한 몇 권의 평론집과 최근에 나온 유령들을 포함한 다섯 권의 시집은 그러한 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한 시인이 삼십 년 넘게 걸어온 길을 되짚어 가며 그의 발자취를 헤아려 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이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책꽂이를 샅샅이 뒤져가며 그의 시집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첫 시집부터 최근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모두 갖고 있던 걸 보니 확실히 나는 그의 열렬한 독자임이 분명했다.

첫 시집인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에서 최근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인 유령들까지 오는 데는 이십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시집의 가격도 2,500원에서 8,000원으로 바뀌었다. 고맙게도 정장본인 세 번째 시집부터는 저자의 서명이 붙어 있다. 세월의 때가 묻은 시집들을 다시 펼쳐 읽어 가며 그가 걸어온 길들을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한다.

첫 시집인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민음사/ 1990)자서에서 그는 시가 분명 밥이 되거나 혁명이 되리라는 믿음을 버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언어를 통해 내부의 적들과 만나고 나를 둘러싼 공기의 차가움을 맛보는데 오랜 날들이 흘러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심문에서 출발하여 심문으로 향하는 그의 첫 시집은 시인으로서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보여줄 모습들의 전조를 확실하게 담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나는 누구인가?’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두 개의 문제와 직면하고 있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나는 왜 시를 쓰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이 아프다

청청 하늘 맑은 대낮에

어디 다친 데 없이 눈이 아프다 무얼

잘못 봤는지 모가지를 잘못 돌렸는지

복장이 터질 듯 골통이 뒤집힐 듯

눈이 아프다

 

그렇다 그렇다 그놈의

개새

끼들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 동방의 등불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면사무소 앞에

살을 붙이고 동방예의지국 감히

떨어질 줄 모르는 저

 

개새끼들 때문이다

아 온통 그날은 개새끼들만이 보인다

우리에게 빛과 희망

번영과 안정의 기반 위에 선진조국 창조를 위해

할 일 없이 벌건 대낮에 저

저 개새끼들은 심심풀이로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심지어는

나의 출근길까지 망쳐버린다

 

그러나 온통 들엔 변함없는 봄의

햇살 가득하고 새싹이 솟아오른다 언 땅이 녹아

젖과 꿀처럼 흐른다

분명하다 개새끼들의 눈에 그것이 봄으로 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

봄조차 거부하는 지금은 개새끼들의 세상이지만

 

봄은 온다

사람의 내부로 조용하고도 거세게

우린 시력의 회복을 위해

맑은 바람 꽃향기 한 사발 담아놓으면 된다

봄은 분명히 온다

(‘사람의 표기는 시집에 실린 그대로임.)

                                                               - 개새끼들전문

 

 

 

정한용 시인에게는 모더니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시인의 몸속을 흐르며 시인으로 하여금 형태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눈앞의 것들을 자꾸 해체해 가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절망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끈질긴 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른 외면 속에 숨겨진 그의 눈빛만큼이나 날카롭다.

 

 

 

검붉게 타던 플라타너스 잎들이

겨우 며칠을 못 넘겨 땅으로 곤두박칠친다

끝에 남은 몇 개의 흔적을

아이들 서넛이, 그 고통과 적막을 달래듯

기어올라 가지를 흔든다 우수수

마른 골격이 드러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시대를 버팅겨 온 힘에 대한

배반이다 풍경이 지워지고

빈 손가락, 구부러진 틈 사이

먼발치로 솟구쳤던 나무와 그 위에 허위로 쌓인

발걸음이 무너진다

 

나무는 이제 꿈꾸지 않는다

몸통에 배어 있던 소리와 향기가 빠져나가고

뿌리에 스며 있던 희망과 절망이 뽑힌다

지금, 거품의 세월

아이들이 깔깔대며 사라진 뒤, 삶이 그렇게 얼어붙듯

나무들이 서 있다

                                                                      - 풍경을 지운다전문

 

 

 

두 번째 시집 슬픈 산타페(세계사/ 1994)에서도 그는 현실이 주는 절망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거품과 환상의 나라”(길 위에서)를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감이 그대로 담겨 있는 시들을 통해 그는 우울한 목소리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좌절에 빠진 내면의 풍경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절망은 주저앉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을 꿈꾸며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눈앞의 허위왜곡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함으로 표출된다. 그가 지닌 현실 비판적인 태도와 문명 비판적인 감각은 세상의 어떤 것도 그의 안목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여전히 날카로우면서도 고집스럽지만,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부드러움과 만나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세 번째 시집인 나나 이야기(민음사/ 1999)는 그런 면을 잘 보여준다. 앞의 두 시집에 비해 서정성이 한결 가미된 이 시집에서 시인은 지금까지 써 왔던 시들과 비교했을 때 형식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상당히 유연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나약함이라기보다는 성숙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깡마르고’ ‘매서운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억새풀 쓸려간 자리

사행천이 되어 구불구불 이어진 바다에

검은 폐선 떠 있다

오래오래 바라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한 무더기의 억새만이 흰 손을 날려

없던 길을 만든다

여기, 여기예요

여기라니깐

이미 딱딱하게 굳고 소금기만이 버캐로 엉킨

길 아닌 길에 나를 눕힌다

누가 버린 것일까

혹시 지나가다 잠시 멈춘 걸까

손톱게조차 살지 않는 갯벌 한가운데

한 포기 참외덩굴 손뼘만큼 뻗어

그 끝에 눈물눈물 꽃 세 송이 매달았다

억새가 길이라면

노란 꽃 또한 가슴 미어지게 길을 트는 것

그곳에 작은 무덤 만들고

나는 불을 피운다

                                                                    - 사리에 눕다전문

 

 

 

 

그러나,

사리 갯벌에는 이제 게가 살지 않습니다.

간척 공사 끝나고 물길 막히고

수백만 평, 허옇게 뱃속을 까고 뒤집힌 그곳에

가끔 나문재풀만이 검붉은 피를 토합니다

그곳은 드디어 빈 곳이 돠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을 더듬어

망태를 들고 갯벌로 나서기도 하지만

황량하고 딱딱한 땅

반월/시화공단 연기만 가득합니다

                                                                 - 사리에서 게 잡는 법부분

 

 

 

 

왜곡된 현실과 삭막한 현대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변함이 없지만, 거기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 버림받은 존재들을 대하는 따스함이 가미된 그의 시들은 전보다도 훨씬 매력적으로 읽힌다. 그렇게 매력적인 목소리로 그는 드디어 사랑그리움을 노래한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 그곳에 닿아

따스한 어깨에 몸을 기댄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냐, 푸른 나무와 풀들 사이 조그만 떨림으로

그저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일찍 아침 새소리에 깨어 창을 열면

밤새 서성이던 꿈들이

돌아간다 가슴팍에 발자국 쿡쿡 눌러놓고

이봐, 다 소용없는 짓 멍청한 짓

이젠 지워버리라니까

 

연둣빛 분홍빛도 아닌 노랑 파랑도 아닌

그저 하얀 꽃 한 송이

그대 마흔의 손가락을 흘러 다시 이십 년

그때도 그 자리에 피어 있을까

눈보다 더

                                                                - 눈꽃전문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며 흔적을 남기듯/ 나나는 울림 속에 지워지고, ‘나나미치도록 그리울 때면그는 한밤 소금창고”(맑은 끝)에 간다. 그곳은 아직도 깨진 타일, 나문재 낮은 키 위로/ 고양이 울음이 바람처럼 떠다니는 곳이며, 거기서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소금밭을 기어가면서 바람 소리와 게 소리를”(‘자서’) 듣는다.

 

 

 

흰 꽃이 피었습니다

보라 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뒤 터에

꽃들이 화들짝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먼저 길 떠난 內子를 여름빛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보던 할애비도

슬며시 보랏빛

물이 듭니다

                                                                  - 도라지꽃전문

 

 

 

지금/ 어디 있는지/ 천만 리 먼 길에/ 상처에 핀 등꽃이 된다면/ 어둠 속에서/ 당신/ 환한 몸/ 만져볼 수 있다면

                                                                    - 상처 맑은 집부분

 

 

 

만 리 밖 당신 귓가에 작은 떨림으로 닿는다면/ 내 울음이 당신 뺨을 쓰다듬어/ 당신 환하게 빛난다면/ 거기, 그렇게 가만/ 가만히 있어도 좋겠지요, 당신 자리/ 어둠에서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어도

                                                                      - 흰 꽃부분

 

 

 

네 번째 시집인 흰 꽃(문학동네/ 2006)에 이르면 세 번째 시집에 비해서도 한층 서정성이 두드러진 시들을 만나게 된다. 중세의 사랑」 「운명 X파일」 「오래된 사랑노래처럼 해체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흰 꽃에 실려 있는 시들은 대부분 서정성을 강하게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중에도 그의 시는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며 이 땅이 아닌 먼 땅을 응시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2003년 아이오와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만난 외국 시인들과의 직, 간접적 교류는 그의 시가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유령들(민음사/ 2011) 은 시인 개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한국시에 있어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정한용 시인은 이 땅이 아닌 다른 먼 땅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고통을 다룬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해 왔다. 그것들은 다른 곳의 이야기이지만 곧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intro]

당신들, 역사를 믿는다고 했던가, 웃기지 마,

이건 아주 슬픈 얘기야, 황금 해안으로 당신을 데려다 주지,

피도 눈물도 모두 메말라, 심장이 콱 멎어 버리는 얘기,

아주 오래된, 아니 시퍼렇게 살아 있는, 먼 앞날의 이야기

 

……

 

[hook]

I have a dream! You have a truth!

믿지 마, 믿을 수 없어, 역사는 강자들의 강간이야,

믿음과 불신의 경계를 건너, 차이와 분영의 장벽을 넘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 황금 해안부분

 

 

 

1980[2005]5, 마침내 불꽃이 타올랐다. 대한민국[우즈베키스탄] 남쪽[동쪽], 광주[안디잔]의 봄은 참혹했다. 총성이 울리자 금남로[바부르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공수 부대[특수 부대]를 피해 흩어졌다. 총알을 맞고 넘어졌다 다시 대검에 찔리기도 했다. 무기를 든 시민군들이 주먹밥[호밀 빵]을 먹으며 버텨 보려 애썼다. 하지만 군부[독재 정권]는 민주화 요구가 확대될 것을 두려워해 무자비한 진압을 결정했다. 결국 피비린내가 휩쓸고 지나갔다. 상황은 끝났다. 전두환 계엄 사령관[카리모프 대통령]은 일부 극렬 용공 폭도[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국가 전복을 기도했으나 진압되었고, 이 과정에서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피해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보유(補遺):

안디잔 학살 당시 노무현은 카리모프를 만나고 있었다

샴페인을 마시며 자원 외교의 성공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안디잔 학살 4주년이 되던 날 이명박은 카리모프를 만나고 있었다

샴페인을 마시며 자원 외교의 성공과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는 사진을 찍었다

죽음과 혁명에 대해서는 약속처럼

침묵했다

                                                                       - 광주 안디잔전문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이곳저곳’,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왜곡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용기 있게써내려간다. 거기에는 서정이 끼어들만한 자리는 없다. 단지 잔혹에 당당히 맞설 정도로 깡마르고 단단한 표현이 존재할 뿐이다. 많은 시인들이 밖으로 향하는 눈을 감는 대신 자기 자신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고 있을 때 그는 자기 밖의 넓은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남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남들이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찾아 떠나고 있던 것이다. 그는 타고난 모더니스트이면서 또한 통 큰 휴머니스트이다.

 

 

 

 

빈터’, 그가 꿈꾸는 또 하나의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빈터(PoemCafe)’이다. 2000년도에 시작한 빈터는 그가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세계화를 목표로 몇몇 젊은 시인들과 함께 시작한 인터넷 시 동인이다. 인터넷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공동체의 실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인터넷 사이트 운영을 통한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앞장섰던 빈터는 국내 시인은 물론 다수의 외국 시인이 포함된 말 그대로 글로벌한시 동인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했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정한용 시인은 시에 의해 제대로 꺾인삶을 살아온 시인이다. 여러 권의 시집을 내며 삼십여 년을 시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크고 작은 변화를 보이기는 했어도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언어를 대하는 태도 등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깊고, 더 넓게 변화해 왔을 뿐이다. 통 큰 휴머니스트인 그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꺾여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꺾여도 그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가 닿고자 하는 지점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다.

 

- [현대시] 2011년 11월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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