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권갑하/박명숙 시조론] 시조 미학의 미적 갱신과 현재화의 두 방향 - 공광규 시인

문근영 2014. 1. 27. 10:26

 

[권갑하/박명숙 시조론]


시조 미학의 미적 갱신과 현재화의 두 방향

 

공광규



1.

지난 4월 한국작가회의 이사회에서 시조분과 설립이 통과되어, 수년 동안 시조분과 신설에 대한 설왕설래를 마무리 하였다. 이를 기하여 ‘한국작가회의 회보’(제67호)에서는 ‘시조분과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실었는데, 현재 한국 시조단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시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시조분과와 시조에 대한 짧은 소견들을 피력했다. 평론가이자 시조를 직접 창작하는 구중서는 “‘좋은 언어’로 민족문학의 정수답게 빛을 발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하였으며, 윤금초는 “시조의 역사가 유구함에 비해 문단 전체적으로 시조에 대한 관심과 대우가 소홀했음을 느낀다.”고 하고, “시조는 시인의 수와 질적인 면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박기섭은 “‘민족문학’이라는 말을 쓰면서 어째서 ‘민족시’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소홀할 수 있을까” 반문하고, “한국문단에서 시조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며, 또 그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고 밝히는 일이 우선이다.”라고 하였다. 시조에 대한 이러한 현재적 기대와 소홀, 반성, 그리고 과제가 산적한 시점에서 권갑하와 박명숙의 시조를 만나는 기쁨을 가졌다.


2. 

1991년 등단한 권갑하는 『외등의 시간』 등 다수의 시집을 낸 시조단의 중견으로 시조잡지 《나래시조》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이미 명편 「하얀 說法-백담시편2」을 통하여 현대시를 창작하는 필자에게 시조를 읽는 기쁨을 안겨준 적이 있다.


천근 바위를 안고 꿈쩍 않는 산을 보라

한사코 외발로 오르는 등짐 진 소나무들

풍경은 제 가슴을 쳐 저문 절을 깨운다.


밤새 설원을 떠돌다 홀연 등짐 멈춰 선 탑

사무쳐 돌고 돌아도 벗지 못할 緣은 남아

망연히 펼쳐든 하늘 별을 쏘아 올린다.

- 「하얀 說法-백담시편 2」 부분


현대시와 마찬가지로 시조의 성공은 독자가 시조를 읽고 느끼는 쾌감의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쾌감의 정도는 언어를 통한 대상의 감각화에 있는데, 권갑하의 시조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성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 산인데 천근이나 무거운 바위를 안아서라고 하거나 소나무가 외발로 등짐을 지고 산에 오른다는 표현이 그렇다. 절 처마의 풍경은 또 어떤가. 스스로 자기 가슴을 쳐서 소리를 내어 절을 깨운다고 한다. 표현이 독자에게 낯선 감각을 가져다주면서 비상식의 그럴듯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두 번째 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절 마당에 서 있는 탑을 밤새 설원을 떠돌다가 멈춰 선 것으로 묘사한다. 석탑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그럴 리 없다. 또 석탑이 하늘에 별을 쏘아 올린다고 하는데, 거짓말이다. 이런 비상식의 낯선 상상, 그러나 상상이 가능한 이런 상상력이 독자에게 흥미를 자극하고 결국은 쾌감을 주는 것이다.

권갑하의 이런 감각적 표현기법은 “울렁이는 욕망들이 굽은 등마다 흘러나오는”(「외등의 시간」 부분)이나, “그늘진 나를 향해 플래시 펑펑 터지고”(「하오를 반짝이다-종로에서」), “상처도 곰삭으면 가슴 저며 눈 뜨는가/ 훈장처럼 드리운 옹이진 영혼의 무늬/ 나무도 큰 나무들은 눈동자 그윽하다.”(「눈동자」 부분), “다 지운 생이라도 삭은 대궁은 남아/ 희디 흰 기다림으로 네 안부를 묻는다”(「겨울 안부」 부분)를 거쳐 근작에서도 보여준다.


혜원의 민화 속을 빠져 나온 여인인가

눈길 아니 줘도 낭창낭창 휘감겨 오는

가슴엔 초록빛 사연 속삭이듯 매달았다

바람 건듯 불어 치맛자락 솟구치면

속살 드러내놓고 넋을 잃은 청자 백자

추임새 넣던 하회탈 곁눈질도 뜨겁다

이모집 동동주에 능청대는 밤이 오면

허리 배배 꼬던 수도약국 조선 소나무

홑바지 벗어던지고 등 굽혀 다가간다

- 「인사동 수양버들」 전문

 

혜원, 이모집, 수도약국 등 인물과 인사동에 소재한 식당과 약국 이름을 인용한 이 시 역시 감각화가 이루어지는 부분에서 쾌감을 준다. 길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을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비유하거나,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속살을 드러내고, 청자 백자가 넋을 잃거나 하회탈이 곁눈질을 한다는 표현들이 그렇다. 또 이미 등이 굽은 조선 소나무가 홑바지를 벗어던지고 등을 굽혀 다가간다고 진술한다. 이 시의 특징은 이러한 감각화 이외도 표현이 다소 에로틱하고 역동적이라는 데 있다. 인생을 풍유하는 시조 「담쟁이」는 “비워도/ 돋는 슬픔은/ 벽화로/ 그려낼 뿐”이라며 인생의 슬픔을 담쟁이 자국으로 형상하고 있으며, “잎 떨군 가지들이 빈 그늘에 사무친다”(「손금을 따라가며」 부분)며 손금을 나무로 형상하기도 한다.


2. 

1993년에 등단한 박명숙 시조의 특징은 행의 배열을 변화시켜 외형적으로 낯설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박명숙은 전통적 외형을 고수하고 있는 작품보다 행을 변화시킨 작품들이 오히려 시적 긴장이 높다. 이러한 외형 변화 의도는 낯설기를 통한 독자의 관심 불러일으키기이다. 아주 오래된 민족형식으로 민족 집단이 오랫동안 읽고 읊어온 시조 제재들이 그만그만할 바에야 이렇게 외형의 변화를 통해 독자의 눈을 끄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이것은 창작자가 오래된 형식에서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갖게 되는 일탈 욕구일 가능성도 있다. 이미 김소월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며 7/5조 율격에 갇힌 민요형식을 행 바꾸기만을 통해서 자유시로의 감행을 시도했던 것1)처럼 박명숙 역시 행 바꾸기를 통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보려는 욕구가 발현한 것일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박명숙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당신 이름은 언제든 ‘홀딱 벗고’이다


이맘때쯤 샛길 몰래

잔바람 기어들어도


무성히

껴입은 외로움

그만, 홀딱 벗는다


홀딱 벗고, 네 박자로 다급하게 울음 운다


된비알 높은 목청

무시로 무너뜨리며


귀먹은

열두 폭 청산

홀딱 벗고, 달아난다

- 「검은등뻐꾸기」 전문


이 시조는 검은등뻐꾸기를 대상화하여 형상하고 있다. 우선 새 이름과 첫 연을 읽어가면서 ‘홀딱 벗고’라는 새 울음소리를 의성하여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 새는 높은 나무에서 망을 보다가 때까치나 멧새가 둥지를 비우면 슬쩍 알을 낳고 도망간다는 새이다. 그래서 남의 둥지에서 부화한 이 새는 집주인의 알이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혼자 남아서 의붓어미 덩치보다 더 커질 때까지 먹이를 받아먹다가 인사도 없이 줄행랑을 놓는 새로 알려져 있다. 이 새의 동물학적 특성은 시조에서 인간을 풍유하기가 아주 좋은 소재이다. 그러나 이 시조에서 풍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의 감정이입이 “외로움”으로 나타나며, 심리적 자아는 그 외로운 감정을 이 새를 통해 홀딱 벗는다. 이 시조의 백미는 마지막 6연에 나타난다. 검은등뻐꾸기가 “귀먹은/ 열두 폭 청산/ 홀딱 벗고, 달아난다”는 해방감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물론 그 새가 날아가면서 버린 것은 청산만이 아닐 것이다.


귀두라미가 돌아왔다

못갖춘마디로 운다


허물 벗은 첫 소절이 물먹은 어둠을 파고든다


낯익은 

울음을 만날 때도

모노드라마로 운다


가슴에 목젖을 묻고

초사흘 달처럼 운다


덜 여문 곡절들이 풀씨보다 쌉싸름하다


가다가

낯선 울음 채이면

귀청을 딸각, 끄기도 한다

- 「처서」 전문


이 시는 여름이 지나고 신선한 가을이 와서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처서는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으로 양력 8월23일 경이다. 이때 울기 시작하는 귀뚜라미는 못갖춘마디로 울거나, 모노드라마나 초사흘 달처럼 울음을 변주하기도 한다. 울음은 덜 여문 처서의 풀씨들과 비유되기도 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낮선 울음에 “귀청을 딸각” 끈다는 감각이 살아나 처서의 풍경을 환기시킨다.

더하여 박명숙은 「사랑 짜기」처럼 고전에서 소재를 가져와 사랑을 형상하거나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 달이 졌다”(「초저녁」 부분)라고 감각화하거나, “오장육부/ 활처럼 끌어안고”(「여름우포」 부분)나 “엄마를 받아 안고/ 북망은 만삭인데”(「엄마 생각」 부분)처럼 적절한 비유로 시를 형상한다. 그의 시조 가운데 「그해 입동」은 “수인선 협궤열차 열세시 반 차표 한 장/ 대합실 휑한 속을 갈바람만 뒹굴었던가/ 개찰구 문이 열리자 내 오후도 개찰되었다.”라며 전통적 시조형식으로 건축한 수작이다.


4.

권갑하와 박명숙은 전통적이고 안정된 형식에서 시조 쓰기를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외형상 길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이번에 게재되는 작품들만 한정한다면, 권갑하가 전통형식에 충실하면서 표현의 감각화 또는 에로틱한 표현전략을 통해 인생의 비의를 밝힌다면, 박명숙은 현대 자유시에 가까운 외형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풍경과 기억, 그리고 관념을 형상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보에서 오종문이 말했듯이 시조는 “한국시의 종가”이며 우리 “민족문학의 정수”이다. 그럼에도 “문학 예술인은 물론 일반 독자도 현대 시조에 친근”(김일영)감을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런 지점에서라도 김일영이 말한 시조의 역할과 과제가 부여되는데, 그 역할과 과제 수행의 선두에 권갑하와 박명숙이 놓여있다. 이 두 사람의 시인이 “치열한 자기갱신”(정수자)과 “미적 개진”(정수자)을 통하여 우리 고유의 시가 형식인 시조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미적으로 갱신하고 현재화 하는데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나래시조/2010) 

 

-http://blog.daum.net/funandcool/(말똥 한 덩이)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