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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리뷰] 키키의 소 떼는 오늘도 경계를 지운다 - <김 산 시집> 키키 / 서대선

문근영 2014. 1. 23. 09:12

[북리뷰] 키키의 소 떼는 오늘도 경계를 지운다
<김 산 시집>-키키
 
서대선
   키키는 파라과이 소년 목동. 빨강 하양 파랑의 소 떼를
몰고 파라나 강을 건넌다. 매일매일 아무 이유 없이 건너는
것이 무의미한 의미란 것을 잘 아는 키키. 녹초를 찿아 녹
초가 되도록 유랑하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참 쓸모
없는 감정이지. 키키는 아무 생각도 없이 국경 수비대를 조
롱하며 전진한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순정한 실천
가의 자세인지 몸소 보여 주듯이, 소 떼의 식사 시간은 아
랑곳하지 않고 따라오라 맹목적으로 맹목적으로. 키키가
조금씩 어른이 되면서 키키의 속력은 주춤한다. 무언가 의
미를 찿아 해독하고 중얼거리는 것은 어른들이나 하는 짓.
그것은 세상에서 최고로 나쁜 버릇임을 깨닫기 시작했지
만 소 떼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그것
은 소 떼들도 몰랐으며 우편배달부도 몰랐으며 치즈 농장
의 농부들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 완벽하게 평온하
기로 하고 평온 했다. 키키는 파라과이 소년 목동. 가끔 배
가 고프고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끔 혼잣말을 하는.
눈이 째지고 검버섯이 촘촘히 박혀 있는. 식민지 시대에서
해방된 공화국의 늙은 어린이. 파라과이 국가는 왜 이다지
도 장엄하고 엄숙한 음률인가. 이 음악에 대해 더 이상 논
하지 말자고 당신은 국가에 대한 맹세. 그것은 키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키키는 파라과이에 산다. 살아서 파라과이
는 존립한다.
                        -키키
 
 
# 김 산 시인의 시집<키키>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국가의 의미이다. 한 개인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이며,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 가이다. 사전적 의미로 국가란 영토, 국민,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어원은 15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를 가리키는 스타토(stato)라는 말에서 시작되었으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ŏ Măchiăvelli, 1469-1527)가 <군주론>에서 사용한 이후로 보편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초기의 국가란 말 속에는 영토와 동일민족과 주권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을 의미 하였으나, 근세에 들어오면서, 미국처럼 복수민족으로 구성된 경우도 있고, 동일민족이 갈라져 구성된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도 있고, 정치시스템의 유형에 따라, 고대 도시국가, 로마제국, 중세봉건 국가, 근세 전제 군주 국가, 근대 자유주의 국가, 현대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김 시인은 자신의 시적 자아로 파라과이 소년 목동 “키키”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것도 “늙은 소년 목동”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파라과이”의 “늙은 소년 목동”이고자 할까? “파라과이”라는 나라의 국호는 이 나라의 북에서 남으로 중심을 지나는 파라과이 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강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과라니어 말 그대로 번역하면 ‘강물의 여러 색깔(햇볓이 수면에 비친 색이나 물가의 앵무새)’로 해석되기도 하고, ‘위대한 강으로 부터’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파라과이는 세상에서 잊혀 진 듯 세계의 중심에서 멀리 비껴져 있는 나라이다. 파라과이의 역사는 공산주의 정부와 정치적 불안정과 내분, 이웃나라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삼국동맹 전쟁에서 5년간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룬 나라이다. 1870년 패배하여 나라가 파괴되고, 이 전쟁으로 남자인구 90%가 목숨을 잃은 나라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점철되었던 가난한 나라 파라과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닮아 있다. 아마도 김 시인이 파라과이의 “늙은 소년 목동”을 그의 시적 자아로 동일시하고 있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짐작 된다.
 
인간의 몸을 구성 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는 완벽하게 하나의 생명체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놀라운 존재이다. C. Jung(Carl Gustav Jung, 1895-1965)의 집단무의식에 의하면 각 개인의 심리 속에는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기억의 본질인 ‘원형(archetype)' 을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른다면 김 시인의 시적 자아인 ‘소년 목동’의 세포 속에는 과거 인류의 목동의 역사와 목동들의 생활사의 모든 원형이 소년 목동의 유전자 속에 각인 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현재의 ‘소년 목동’이란 과거의 모든 목동의 역사와 생활사를 정신의 원형으로 지니고 있는 “늙은 소년 목동”인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 날 것이/다. 그 거리가 팔만대장경이다. 나는 팔만사천 자를 날아/서 왔다./비와 바람과 구름에 새겨진 한 자 한자는 내 주름살로/그대로 판각되었다.(날아라 손오공 중 일부)”에서 그는 자신의 출생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지구별에 오기 전 이미 숫한 전생을 건넜으며 그의 전생의 거리는 “팔만대장경”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그는 분명  아주 오래전 우주의 역사를 거쳐 온 “늙은”자인 것이다. 다만 이 지구라는 별로 옮겨오면서 “잠시 여자의 몸속에서” 살아 지구의 생명으로 다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므로 “소년”의 모습을 한 “늙은이”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이미 그의 무의식 속에 “주름살”로 “판각“되어 있으므로, 그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땅위에서의 삶이나 ”파라과이“에서의 ”늙은 소년 목동“의 삶이 다른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것이다.
 
“늙은 소년”의 의식으로 바라보는 지구인은 “불쌍해서 하나도 불쌍하지 않은 피/전복을 꿈꾸지만 만날 잠만 자는 피/개념을 상실한 잉어 같은 잉여의 피/땟국이 줄줄 흐르는 추악하고 추잡한 피/제국을 사랑하지만 실패한 형제의 피(지구인 중 일부)”를 가진 존재로 인식 된다. 그런 지구인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평시인 것도 아니며, 준전시 상태인 것도 아니며, 전시인 것도 아닌 상태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이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의식된다. 프랑스의 정치 사회학자 R. Aron(Raymond Aron, 1905-1983)의 표현에 의하면 ‘국가가 무력을 독점함에 따라 전쟁과 평화란 국가 간의 전쟁과 평화’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국제관계가 긴밀해진 시대에서는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만이 아니라 지구 어느 일각에서 일어나는 한 국가 내부의 내란, 내전, 시민전쟁 등은 곧 국제전쟁의 불씨가 될 확률도 크게 잠재요인으로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알라 성전의 수호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니 인자하신 알라는 우리에게 척박함을 주셨다./우리의 영토는 먼저 간 총칼의 피땀 위에 세워졌으니 그들/은 죽어 신비한 검은 물을 주셨다. 보아라! 사막을 순례하/는 저 단봉낙타를. 일평생 혹을 짊어지고 경배를 드리는 늙/은 꼽추는 얼마나 거룩한가. 그리하여 우리의 다른 이름은/구도자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평화를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기관총을 메고 다닌다. 들어라! 탕탕(탈레반 교육 헌장 중 일부)”를 읽어 내려가면 현대의 국제 관계는 곧 우리의 오늘과 내일의 관계인 것이다. R. Aron의 지적대로 전쟁과 평화라는 게임의 주체자들인 각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목적과 수단에 따라 심각한 이념의 대립, 적대감, 냉혹하기 그지없는 잔인한 행동들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은 그러한 국가 간의 게임에 국가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구성분자인 한 개인의 안위와 행복은 그 개임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현상은 “늙은 소년”인 김 시인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예외는 아니 것이다.
 
“공일의 대부분은 비가 오고, 공일의 엄마는 왜 쉬지 않나요, 공일의 신/작로엔 씀바귀도 없고, 공일이 지나면 월요일, 우리는 모두/ 학교로 가네, 양말을 꿰메 신고, 구름사다리를 타고, 바닥/엔 양초를 칠하고, 지우개 따먹기를 하고, 삼각 우유를 마/시며, 반공일을 기다리네, 즐거워라 반공일, 화창한 반공일,/비가 오지 않는 반공일, 체육관에서 이승복 영화를 보고,/ 마을 회관 국기봉에 매달려, 맴맴 매달려 외치네, 나는 나는 반공일이 좋아요, 내 입을 쫙 찢어 주세요(반공일의 아이들 중 일부)”의 시를 읽으면, 아직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분단 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의 정신세계에 이데올로기 교육이 어떻게 정보처리 되는가를 확인 하게 되면서 가슴 밑에 서늘한 슬픔이 밀려온다. 이쯤에서 평화란 것은 R. 아롱의 지적처럼 ‘정치적 단위간의 대립적 폭력형태가 어느 정도 계속적으로 정지되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 확 다가온다. 그렇다. 6.25전쟁을 치루고, 아직도 이데올로기로 대치하고 분단 된 조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평화시대인가, 아니면 전시상태일까, 준 전시상태일까에 대한 극명한 각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이 아직도 지속 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늙은 소년”인 김 시인 의식의 앵글에 비치는 현실은 아프다. “저기, 스테이지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근육질 외계인이/끌리신다고요, 죄송해요, 저분은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별/남자예요. 참 보는 안목이 없으시네요, 쉿, 단골이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 남자는 우주폴리스들이 주목하는 연쇄 절도범이랍니다, 혼미한 마음을 틈타 기억을 분산시키는 악독한 놈(화성 관광 나이트 중 일부)”들이 넘쳐나고 “...설거지를 하고 가계부/를 쓰고 지겨운 남편과 똑같은 체위로 섹스를 하고 가만/히 누워 부울, 하고 부르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오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는 곳, 어금니/ 꽉 깨물고 눈 떴다 감으니 어머나, 벌서 도착하셨네요, 이/곳은 불의 별, 정열적인 아낙들이 요술공주 밍키처럼 사자/로 늑대로 승냥이로 변신하는 (화성 관광 나이트 중 일부)” 소돔과 고모라의 세상에서 마치 다른 별에 사는 외계인처럼 삶을 탕진하고 있는 인간들을 목도하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스므 살의 전경과 스물두 살의 전경이 은박 방패를 바닥/에 깔고 앉습니다. 삶은 계란도 먹고 칠성사이다도 마시고/오물오물 김밥도 나눠 먹습니다. 매일매일 금요일이 되면 우리는 광장으로 모여듭니다. 광장은 시청에도 없/고 용산에도 없습니다. 광장은 철거됐고 우리의 광장은 크/레인 위에서 휘영청 서치라이트를 켭니다.(랄랄라 집시법 중 일부)“에서 보듯 한참 청춘의 야망과 꿈을 펼쳐야 하는 시기의 젊은이들이 분단국가에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의무제도인 국방의 의무로 전경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적을 향해 국가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인 우리의 이웃과 대치하여야 하는 가혹한 시간에 처해 있는 상황을 ”늙은 소년“의 시각으로 예리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소년 목동 키키”인 김 시인은 젊은이의 치기와 패기로 세상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그의 시적 자아는 수백 살, 수 천 살을 거쳐 왔다. “은하를 떠돌던 별은 각자 울음주머니를 갖고/태어 났(플라즈마-1985 중 일부)”기에 지구별의 그 모든 상황을 만나고 바라보면서 “나는 풍부한 울음 주머니를 가진 소년으로 늙어 갔(플라즈마-1985 중 일부)”으므로 그는 “늙은 소년 목동”의 자세로 지구별 세상에 대처한다. “키키는 파라과이 소년 목동. 빨강 하양 파랑의 소 떼를/몰고 파라나 강을 건넌다. 매일매일 아무 이유 없이 건너는것이 무의미한 의미란 것을 잘 아는 키키. 녹초를 찿아 녹/초가 되도록 유랑하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참 쓸모/없는 감정이지. 키키는 아무 생각도 없이 국경 수비대를 조/롱하며 전진한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순정한 실천/가의 자세인지 몸소 보여 주듯이(키키 중 일부)“에서 김 시인이 전언 하는 것은 명백하고도 명쾌하다. 지구별은 하나의 지구 가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제도를 만들어 지구라는 땅에 금을 그어 놓고 그 경계를 무장한 군대가 지키며, 국민을 무시한 채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국가라는 시스템이 자신들의 게임 법칙에 의해 전쟁을 벌이고, 무장을 하고, 다른 나라를 넘보고, 인간을 마구 죽이고, 허망하기 그지없는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속박하는 이 모든 행태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키키“가 모는 소 떼는 인간이 만든 국경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푸른 풀이 가득한 녹초지대를 찿아 풀을 뜯어 먹으면 되는 것이다. 무슨 이데올로기도, 국가 간의 이해타산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키키”가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순정한 실천가의 자세로” ”국경 수비대를 조롱하며” 파라나 강을 건너 소 떼를 몰고 녹초를 찿아 전진하는 행위의 의미가 얼마나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인가.      
 
“키키는 파라과이 소년 목동. 가끔 배/가 고프고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끔 혼잣말을 하는/눈이 째지고 검버섯이 촘촘히 박혀 있는. 식민지 시대에서/해방된 공화국의 늙은 어린이. 파라과이 국가는 왜 이다지/도 장엄하고 엄숙한 음률인가. 이 음악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말자고 당신은 국가에 대한 맹세. 그것은 키키에 대한/최소한의 예의. 키키는 파라과이에 산다. 살아서 파라과이/는 존립한다.(키키 중 일부)” 국가를 구성하는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이토록 극명하게 전언 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의 조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전언하는 “늙은 소년 목동” 김 시인의 강한 메시지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 온다. 

김 산 시인은 197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007년 <시인세계>신인 작품 공모에 「날아라 손오공」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총체적예술동맹 「인디」에서 언어를 맡고 있다.[민음사] 값, 8,000원.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서대선 (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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